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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봉정암 가는 길

 

황토 불빛 깜빡이는

짙은 어둠의 오색에서

버스에서 시달린 다섯시간의

지루함을 털어내고

털털한 피로감을 아스라히 느껴본다.

 

가야 할 된비알 세시간의 힘듦에 한 숨 토해보고

이리저리 쭈삣쭈빗 망설임에 마음을 다 잡아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선행자에 용기를 내어

스틱 거머쥐고 첫 발자욱 내딛는다.

 

돌길 마디마디 느껴지는 설악의 완고함에

조심스런 발자욱은 가련하게 비틀대고

온 몸에서 쏟아내는 뜨거운 열기가

달빛아래 수증기를 피워낸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나를 지켜주는 사람들,

내가 지켜내야 할 것들, 내가 풀어내야 할 것들,

실타래 엉킴처럼 복잡하던 상념들이

근육마디의 고통스러움에 연기처럼 사라진다.

 

거칠게 토출하는 숨소리와 입안 가득한 건조함에

후회와 욕심사이 그 틈에서 헉헉대는 온몸이 애처롭다.

 

잠시 숨돌리고 고개들어 하늘보니 휘영청

한가위의 보름달이 정겹기 그지없고,

寅시를 지나 卯시에 접어드니

대청봉의 억센바람 온 뺨을 쳐내린다.

 

대청의 대찬바람 서러워서 숨 죽이고

 

중청의 어스럼한 여명 빛에

꼬여 있던 갈등들이 녹아내려 흩뿌리고

이윽고 뚜렷한 만상의 형상들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봉정의 목탁소리 계곡에서 낭랑하며

이슬가득 풀잎사위 청초로움이 새롭다.

 

힘찬 근육 하늘이 감싸안고

사이사이 뿌리내린 소나무의 생명력이 새롭다.

 

정갈하되 부드럽고 수려하되 튀지 않는

하늘아래 첫 암자의 다소곳한 숙진 모습에

내려서는 발 길 숙연하여 조심스럽다.

 

자연이 만들어낸 여래상이

인위적인 불상보다 더 신심을 일으키고

 

옹찬 바위군들 듬직하게 굽어치니

명멸하는 인생살이 조각하나 실어본다.

 

실재하는 모든 것을 가리는 것이 바로 구름과 비와

인간의 좁은 시야와 탐욕 때문이리니

보이지 않는다고 믿지 않는 옹졸함과

현실 지상주의의 무력함을 다시금 깨닫고

 

비록 내 안의 틀에서라도 저 푸르름을 노래하고

진실와 진리를 가리는 구름이라도 이토록

아름답게 여겨가면서 한 숨 제대로 쉬어 간다면

 

본류의 흐름과 자아 깊은 곳에 나만의 법을

수호하는 공간과 무소유의 진리가 담겨 있음을 알아가면서

 

상선약수上善若水가 우리에게 주는 작은 깨달음이라도

낮은 곳으로 흘러보며 몸소 실천하고

 

주위와 조화롭게 엉키면

하나의 경건한 아름다움으로 승화될 수 있네

 

나 죽어 영혼의 쉼터를 향해 가는 그 날까지

굳굳하게 억겁의 세월을 바람과 비와 세파에

나 자신을 던지듯이 맡겨 두면

고통이 나를 본 모습에 가깝게 깍고 다듬으며

완성의 틀로 인도하리니

 

진신사리가 품은 저 사리탑과

수백 세월 버텨 올려낸 저 소나무가

다를바 진배 없는 녹임과 융합과 토출의

연속되는 구도의 길일지라

 

먼 발치의 저 형상이 나의 거울이 되어 비추고

내가 저 삼라만상을 비춰내는 속세의 업경 되어

 

고집스런 바위가 흙으로 바스러져

인내로운 소나무의 양분이 될 수 있음이라.

 

헌걸찬 저 용아의 용맹함과 겁없이 도전하는 

인간의 기상과 기백이 곧 나의 바램이다.

 

내가 나를 알게되고 너가 너임을 알게 됨이

바로 절대적 반야의 진리구나

 

마음에 휘둘려 망부석이 되고

성기석이 되는 상대적 진리가 판치는

현세의 물리적 현상에 순응하되

 

내 가슴 속 옹골진 바램 하나를

끝끝내 놓지 않고 매달려 가다보면

 

언젠가는 저 절경의 일부가 되어 전체도 되고

한 부분으로도 늠름히 존재한다.

 

바위와 구름과 나무 한 줄기라도

이토록 아름다운 모습으로 엉키어

도우며 끌어 내는 것이

이 세상에 몸을 빌어 애면글면 살아가는

나만의 구도적 진리를 담아낸다.

 

비로소 관조하여 내가 인드라의 그물처럼

무량수로 얽힌 세상의 운행원리 속의 당당한 힘이 되었음을

 

내려서는 구름이라 탓하지 말고

개여지는 하늘에 탄복하지 말며

어둠에도 진리는 그대로 있음을 자각한다.

 

설악과 지리가 다르다 하나

느끼는 매 감흥은 근본에서 함께 하니

각각의 장점을 인간에서 바라본다

 

목마른 거북은 영겁의 세월을 들이키고

허위허위 내 삶도 지치도록 끈질기다.

 

시리도록 푸른 물에

텁텁한 내 삶이 정제되어 흘러간다

 

지쳐가는 인생 마디 그 고통스러움 속에서도

간신히 뿌리 뻗쳐 아름다움 토해내니

비참하다 포기했던 내 인생도 힘을 얻네..

 

 

 

 

 

 

 

출처 : 월간 모던포엠
글쓴이 : 淸虛(김태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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