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점점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
이를 우주의 가속팽창이라고 한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던 과학자들은
암흑에너지라는 게 있어
우주를 팽창시키고 있다는 이론을 세웠다.
아직 암흑에너지가 대세긴 하지만
한편에서는 암흑에너지란 없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중력이론을 수정하면
충분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일까.
2지구에는 위도와 경도가 있다.
이 둘을 이용하면 내가 지구 위에서
어느 지점에 있는지 알 수 있다.
과거의 뱃사람들에게 위도는 어렵지 않았다.
낮의 길이나 태양의 고도,
별자리의 위치로 측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가 동서방향으로
움직인 거리를 의미하는
경도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경도 측정에 실패하면 위치를 몰라
항해가 길어지거나 느닷없이
눈앞에 나타나는 육지에 충돌하는 사고가 날 수 있었다.
17세기, 국가의 명운이 걸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과 스페인은 경쟁적으로 큰 포상금을 걸었다.
결국 영국의 존 해리슨이라는 기술자가
흔들리는 배 안에서도 정밀성을 유지하는
시계를 만들어 경도 문제를 해결했다.
21세기가 된 지금 우리는
우주에서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인류의 우주항해를 가로막는
또 다른 경도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적색편이다.
암흑에너지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는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암흑에너지=진공에너지?
1998년 우주의 가속팽창이
처음 발견되고서 15년이나 지났다.
2011년에는 노벨 물리학상까지 받았지만,
우리는 우주의 표준 모형이 제시하는
물질과 에너지를 모두 동원해도
우주 가속팽창의 원인을 설명하지 못한다.
과학자들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암흑에너지라는 가설을 도입했다.
그러나 암흑에너지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여전히 모른다.
● 우주는 갈수록빨리 팽창한다
우주는 약 138억 년 전 빅뱅으로부터 시작됐다.
우주는 엄청나게 뜨겁고
밀도가 높은 상태에서 태어났다.
우주에 있는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하나의 작은 점에 갇혀 있었고,
빅뱅과 함께 폭발해 나온 이 물질과 에너지는
현재 우주의 천체를 만들었다.
현대 우주론으로 알 수 있는
빅뱅 이후의 우주는 10-43초 이후다.
10-43~10-34초에는 우주가 급격하게 팽창했다.
이후에도 우주는 꾸준히 팽창해
현재 우주의 지름은 900억 광년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허블의 우주팽창 발견 이후 과학자들은
우주의 팽창이 이대로 유지될지,
혹은 가속되거나 감속될지 궁금해 했다. 7
0년 정도가 지난 1998년 마침내
우주가 약 50억 년 전부터
가속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우주의 팽창을 가속시키는 원인을
모르는 과학자들은 정체를 모르는
암흑에너지라는 존재가 있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암흑에너지의
정체와 성질을 알기 위해 막막한 우주를 헤매고 있다.
현재 가장 유력한 후보는
우주의 표준모형과 가장 잘 들어맞는
진공에너지 이론(우주상수)이다.
진공에너지를 가장 먼저
우주공간에 적용한 사람은 아인슈타인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이었다.
우주가 팽창하지 않는다면
은하는 서로 중력에 의해 가까워지고,
궁극적으로는 대충돌을 일으킨다.
당시에는 우주가 수축하지 않고
안정을 유지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수축을 일으키는
중력에 대항하는 척력(밀어내는 힘)인 우주상수를 도입했다.
이후 허블이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우주상수도 필요 없어졌다.
그러자 아인슈타인은 우주상수가 없어도
정상우주가 될 수 있다며
미래는 우주의 근원적인
곡률에 의해 결정된 다고 견해를 수정했다.
그런데 1998년 우주가 그냥 팽창하는 게 아니라
점점 빠르게 팽창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러면 우주의 곡률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이 이미 폐기했던 우주상수처럼
반중력 현상을 일으키는 존재가 다시 필요해진 것이다.
그게 바로 진공에너지다.
진공에너지 이론은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공간에
서로 밀어내는 에너지가 존재한다는 가설이다.
아무것도 없는 진공에
어떻게 에너지가 있을 수 있을까.
여기서 진공이라는 개념을
양자역학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양자역학이 태동한 뒤 100여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크기가 작은 영역에서
물질의 요동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 양자요동은
진공에너지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공간에서 입자의 소멸과 생성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과
텅 비어 있다고 생각했던 공간이
실제로는 무언가로 가득채워져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입자 가속기 실험을 통해서 밝혀졌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공간에서
입자가 끊임없이 생겨나거나 소멸하고
이러한 운동이 진공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 만이라도 알아두자.
진공에너지는 다른 물질과는 다르게
부피가 증가해도 밀도가 작아지지 않는다.
즉, 부피가 증가하면 진공에너지도 커진다.
그런데 왜 진공에너지는 우주의 팽창을 촉진할까.
방의 벽이 움직여서
공간을 확장했다고 가정해 보자.
방의 부피가 증가한 만큼
내부에너지의 손실이 있을 것이다.
내부 에너지는 손실되므로,
일은 압력과 부피증가량의
음수를 곱한 것이 된다.
그런데 방의 부피가 증가하면서
증가한 진공에너지의 양은 균일한
밀도와 부피증가량의 양수를 곱한 것이 된다.
두 에너지가 같으므로,
내부의 진공에너지는 음의 압력을 지닌다.
따라서 음의 압력은 중력에 반하는
척력처럼 우주의 팽창을 촉진하는 것이다.
수식으로 쓰면 다음과 같다.
● 우리는 중력을 완벽하게 알고 있을까?
지구와 달 사이에 중력이 작용하듯
수백, 수천만 광년 떨어진 은하 사이에도 중력이 작용한다.
지구와 달은 우리 곁에 있어
이 둘의 중력에 대해서는 꽤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와 비교할 수 없는
은하 규모에서도 중력이 똑같이 작용한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만약 아주 먼 거리에서는 중력이
우리가 아는 것보다 약하게 작용한다면
우주의 가속팽창을 설명할 수 있다.
암흑에너지는 없다?
이 이론대로라면
진공에너지로 우주의 가속팽창을 설명할 수 있다.
설명도 가장 간단하고
우리가 아는 기초과학과 잘 맞는다.
그러나 약점은 있다.
기초과학의 핵심인 입자
표준모형으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표준모형에도 진공에너지는 있지만,
이론값이 너무 크다.
만약 진공에너지가 암흑에너지의
답이 아니라면 문제는 더 커진다.
현재의 기초과학이 뿌리채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에 봉착하자
2000년대 초반부터 우주론자 사이에서는
암흑에너지의 존재에 대해 회의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가속팽창은 기존에 알고 있던
중력만으로도 충분히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여기에 착안해서 암흑에너지 없이도
우주의 가속팽창을 설명하는 새로운 방법이 나오기 시작했다.
흔히 수정중력 현상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수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확히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근거한
중력이론이 태양계 정도의 작은 크기에서는 잘 맞지만,
수많은 은하가 모인 은하단 이상의
거대 규모에는 잘 안 맞기 때문에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정중력을 설명하기 위해
새로운 5차원을 도입해
중력이 다른 차원으로 빠져나간다고 보거나
중력이 차단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이론이 나오기도 했다.
정확한 원리가 무엇이든 간에
거대 규모에서 중력이 약해지면
암흑에너지 같은 미지의 존재가 없어도
우주의 가속팽창을 설명할 수 있다.
암흑에너지와 수정중력,
둘 중 어느 것이 우주를 가속팽창시키고 있을까.
우주 전체에 반중력이 작용하는 걸까,
아니면 거대 규모에서는 중력이 약해지는 걸까.
설마 우주의 최대 수수께끼로 불렸던
암흑에너지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단 말인가.
지구와 은하의 거리를 알려주는 적색편이
여기서 우주의 경도 문제인 적색편이가 등장한다.
가속팽창의 원인이 어느 쪽인지 알아내려면
우주에 널려 있는 은하의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
암흑에너지가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
우주지도가 전혀 다른 모습이 되기 때문이다.
즉 우주지도를 만든다면 암
흑에너지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여부를 알 수 있게 된다.
우주지도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은하가 우리에게서 얼마나 가까운지
아니면 먼지 알아야 한다.
팽창하는 우주에서는 은하의 적색편이가
은하와의 거리를 알아내는 수단이 된다.
적색편이는 움직이는 물체에서 나오는 빛이
물체의 움직임에 따라 파장이 변하는
도플러 효과에서 나온다.
물체가 관측자를 향해 다가오면
파장이 짧아져 푸른빛에 가까워지는
청색편이 현상이 생기고,
멀어지면 파장이 길어져
붉은빛에 가까워지는
적색편이 현상이 생긴다.
즉 멀리 떨어져 있는 은하일수록 적색편이가 크다.
미국 포츠머스대 연구원으로 재직하던
2007년 필자는 산타페에서 있었던 학회에서
적색편이를 이용해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을 검증할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불과 6년 전이었는데도
수백만 개의 은하 적색편이를 정밀하게
관측할 필요가 있다는 부분에서
흄 펠드만 같은 전문가도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수천 개의 광섬유를 집적해,
수많은 은하의 분광을 동시에
관측하는 광섬유 분광학이 등장하면서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 신기술은 앵글로-호주천문대(AAO)의
윌 사운더스가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고,
2005년을 전후해서 중국과 일본도
호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아 스
바루PFS 같은 독자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있다.
존 해리슨의 해상시계가 경도 문제를 해결했듯이,
분광광시야 관측도 암흑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리라는 전망이다.
분광광시야 관측의 목적은
흔히 중입자음향진동(Baryon Acoustic Oscillation)이라는
방법을 써서 은하 사이에 숨어 있는 표준자를 찾는 것이다.
표준자는 이미 길이를 알고 있는 대상으로
관측점에서 양쪽 끝을 잇는
직선 사이의 각도를 측정하면
그곳까지의 거리를 알 수 있다.
우주의 구조가 열쇠
그러나 은하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는 것만으로는
아직 암흑에너지와 수정중력 중 어느 것이 답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2004년부터 5년여 동안은 두 시나리오를
궁극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연구가 활발했다.
실마리는 은하의 분포에서 나왔다.
수정중력 이론에서는 중력 차단 효과 때문에
암흑에너지 이론에서 볼 수 있는
은하의 분포와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만일 거리와 구조를 동시에 관측할 수 있다면,
이 우주를 암흑에너지의
창문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
혹은 수정중력의 창문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의 거대구조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우리는 그 해답을 똑같은
분광광시야 관측에서 얻을 수 있었다.
은하의 적색편이는
우주의 팽창에 의해서 결정되기도 하지만,
그 고유속도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초기에 우주팽창에만 관심이 있었을 때만 해도,
이 고유속도는 제거해야 하는 귀찮은 존재였다.
그런데 2009년부터 진행된 연구를 통해
이 고유속도를 우주팽창에서 분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는 현재 한국천문연구원이나
다른 주요 우주론 연구기관에서 연구하고 있는 주요 과제다.
적색편이를 측정한 결과를 가지고
우주팽창과 은하의 고유속도를
분리하는 작업이 쉬운 일은 아니다.
각 기관마다 서로 다른 해결책을 내놓고 있기는 하지만,
천문연도 일본 교토대와 공동연구를 통해
현재까지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이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경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유속도를 분리하고 나면,
분광광시야 관측은 은하와의 거리정보뿐만 아니라 우
주의 구조 정보까지 모두 제공해준다.
이 두가지 관측값을 비교하면,
이 우주에 암흑에너지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가 있다.
우주의 경도에 대한 탐험은
우주의 진리에 대한 열쇠를 가져다줄 것이다.
● 천문연, 암흑에너지 탐사에 나선다
현재 한국천문연구원은
미국 UC버클리를 중심으로
30여 개 기관이 참여하는
암흑에너지분광계(DESI) 계획에
참여의향서를 제출한 상태다.
2014년 1월에 최종 결정을 앞두고
현재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천문연은 BAO를 이용한 거리
관측, 적색편이 왜곡을 이용한 구조 관측,
라이만-알파선을 이용한 중성미자 관측에 참여할 생각으로,
현재 필자는 적색편이 분야의 이론 집필을 책임지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관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일정 금액 이상을 낼 수 없다.
특정 기관이 관측자료를 독점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참여 기관은 모두 관측 자료를 공유해야 하며,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서로 무한경쟁을 펼쳐야 한다.
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성과를 올리기 위해
천문연은 2014년부터 우주론 그룹을 발족시켜
체계적으로 지원할 준비를 마쳤다.
송용선_ysong@kasi.re.kr
미국 UC데이비스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시카고대 연구원, 포츠머스대 선임연구원을 거쳐 현재 천문연구원에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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