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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소설/군사·전투·모험

성웅 충무공의 위대한 삶의 흔적(사주해석)

聖雄(성웅) 忠武公(충무공)의 삶

 

출처: http://www.iconsumer.or.kr/news/articleView.html?idxno=24960

 

한반도의 역사 오천 년(또는, 구천 년)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인물에 대한 여러 가지 조사내용을 보면 조사대상의 군집형태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와 일반 시민, 기업을 운영하는 CEO, 가정주부, 군인, 노인, 남자, 여자로 구분하면 더 다양한 인물들이 뽑히겠지만 이러한 군집 별 대상에서도 항상 TOP 3을 차지하는 역사적 인물이 바로 임진왜란의 성웅 충무공 이순신과 세종대왕이다. 어느 분이 더 위대한 것인가를 논하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그분들이 남긴 업적이나 공덕을 어찌 현대적인 가치관 기준으로 순서를 매길 수 있겠는가?

 

청허가 이 분이 더 위대하다고 주장한들 만인들에게 공통적으로 공감은 갈지언정 개개인이 생각하는 기준과 100% 일치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늘 청허가 겸허하고도 공손한 마음으로 충무공의 사주를 풀이해보고자 한다. 이미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위대한 인물이시기에 그 세부적인 내용보다는 이런 사주를 가진 사람이 앞으로 살아가는 방향과 지향해야 할 가치관을 살펴보는 시간이 더 유익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철저하게 충무공의 사주를 정통명리학적 관점에서 풀이해보고 배울 것을 채워나가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충무공과 관련된 영화, 드라마, 책자, 영상, 역사적 기록물은 차고도 넘친다. 청허가 어릴 적 보았던 문화 단체 관람영화에서도 충무공은 늘 살신성인의 모습으로 도탄에 빠진 조선을 기사회생시켰던 영웅이었으며 근래에 들어서서도 노량, 명량, 한산대첩 등의 단기적 전투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영화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으며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임에도 충무공과 관련된 영화나 드라마는 늘 대한국민들의 가슴 속에 명화 중의 명화로 각인되고 지금도 꾸준하게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런 충무공의 가치관을 100분의 일만 지금의 위정자들이 제대로 따라 한다면 정말 지금의 지리멸렬한 정치풍토가 훨씬 더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을 중심으로 한 살기 좋고 경쟁력 뛰어나며 전 세계에서 존경받고 사랑받는 국가로 거듭날 터인데, 식민지 사관의 잔재나 친일파에 대한 제대로 된 정리과정 없이 현재에 이르러 차라리 구석기 시대의 토테미즘이나 샤머니즘이 오히려 과학적으로 느껴질 만큼 지지부진한 국가로 빠르게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에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인물 중에 늘 거론되는 충무공의 인생을 잠시나마 다시 되짚어 보면서 대한민국이 다시 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진입하게 되는데 작으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충무공의 탄신 일(4월 28일)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저명한 역사학자가 세밀하게 분석하여 공표한 생신을 기준으로 하면 충무공의 탄신 일은 양력 기준으로 1545년 4월 18일이며 생시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으나 밤 10 시로(亥時(해시)) 보았다. 그러면 충무공의 사주팔자 구성은 다음과 같이 풀어낼 수 있다.

 

 

 

충무공의 일간은 庚金日生(경금일생)인데 日柱(일주)가 같은 金(금) 오행으로 구성되어 比和(비화)의 힘을 가지고, 月支(월지) 偏印(편인)의 도움과 命宮(명궁) 己丑(기축)의 도움마저 가지고 있으며 일간과 같은 月干(월간)으로 구성되어 매우 강력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庚金(경금)의 특징인 義(의)를 중시하는 마음가짐과 추상같은 맺고 끊음, 강력한 주관과 목표를 달성하려는 의지 등이 일반인과 사뭇 다른 깔끔하고도 독립적인 성향을 나타낸다. 다만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려는 기상이 남달라서 주변 환경에 따라 원치 않는 불이익을 당하거나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는 약점도 눈에 보인다.

 

격국용신에 의한 用神(용신)은 偏印格(편인격)이 되는데 일반적으로 편인이라고 하면 龍頭蛇尾(용두사미), 有頭無尾(유두무미)성향으로 貶下(폄하)하기 쉬운데 편인이 가지는 장점은 임기응변으로 주변의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대응하는 능력과 새로운 것을 남들보다 빠르게 익히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장점이 더 많다. 물론 偏印(편인)이 너무 강하거나 일간이 약할 경우, 위에서 언급한 단점이 두드러지기도 하는데 충무공의 경우 워낙 탄탄한 일간의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해당이 되지 않는다. 月支(월지)에서 나온 偏印格(편인격)이므로 편인의 힘도 적절하다.

 

충무공의 사주를 보면 한가지 선천적 문제점이 보이는데 바로 乙庚庚(을경경) 爭合(쟁합)이 형성되어 있다. 만약 생시가 乙酉(을유)라면 이 문제는 해결이 되는데 지금 정확한 시간을 알 수는 없으므로 그런 가능성만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爭合(쟁합)이 비견과 正財(정재)와 엮어져 있으니 재물이나 여색을 탐하면 반드시 곤란한 경우를 당하게 되어 있는데 타고난 성향이 워낙 청렴하여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행 구성을 보면 木(목) 1, 火(화) 2, 土(토) 1, 金(금) 3, 水(수) 1개로 되어 있어 일명 통변 주류, 오행 주류 사주가 되는데 흥미로운 것은 官星(관성)에 해당하는 火(화) 오행이 偏官(편관)과 正官(정관)으로 구성되어 太過(태과) 하지 않은 상태에서 文官(문관)의 성향과 武官(무관)의 성향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점이다. 즉, 용맹함과 주도면밀한 지략을 동시에 지닌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편관이나 정관만으로 구성되었다면 각각의 장점이나 단점으로 나타나겠지만 적절한 형태와 힘으로 무관과 문관의 기질을 동시에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충무공의 경우 항우나 장비와 같은 일기토의 절대적 무술이나 무력을 기반으로 나라를 구한 것이 아니라 철저한 대비와 주변 자연, 기후 환경을 최대한 활용한 제갈량의 지혜와 때를 맞이하면 죽음을 불사하고 싸우는 용맹함을 같이 보여준 역사적 사실을 볼 때 참으로 아름다운 구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충무공 사주에서 좋은 역할을 하는 喜神(희신) 오행은 단연 水(수), 木(목) 오행이며 火(화), 土(토) 오행은 閑神(한신) 오행, 金(금) 오행은 忌神(기신)으로 해로운 작용을 하는 사주이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적합한 직업은 물을 바탕으로 하는 무역 통상, 예술과 체능 분야, 유통 분야도 좋고 문인으로서 글을 중심으로 하는 학자, 교수, 아카데미와 관련된 분야도 좋으며 새로운 것을 디자인하고 만들어내는 분야도 매우 좋을 것이며 이 부분은 木(목) 오행에 해당한다. 군인이 적합한 분야로 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지만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나 민생을 돌보는 경찰을 한다면 해군이나 해양경찰 분야가 그런대로 적합할 것이다. 충무공이 임진왜란 당시 지금으로 치면 해군인 水軍(수군)에 계셨다는 자체가 나라의 흥망을 좌지우지하는 중차대한 시기에 신의 가호가 있었음이 틀림없다. 물론 전라 좌수사로 임관하기 이전에 북방의 여진족들을 상대로도 충분히 좋은 성과를 내셨지만 말이다.

 

성장 과정에서 나타난 충무공의 여러 가지 부침은 그의 대운 흐름과 사실상 무관하지 않다. 처음 벼슬을 내디딘 3 대운은 丁丑(정축)으로 한신에 해당하는 시기이며 남들처럼 혜성처럼 나타나서 벼슬을 얻는 시기는 되지 못한다.

 

4 대운(37~46세)은 丙子(병자)인데 地支(지지) 子(자)가 들어오면서 선천 사주의 辰(진), 申(신)과 결합하여 申子辰(신자진) 壬水(임수)의 힘이 매우 강해지면서 食神局(식신국)으로 변화한다. 워낙 일간이 강하기에 큰 문제는 없지만 食神(식신)이 너무 강하게 나타나면 능력이나 재능에 비해서 실제로 얻게 되는 명예, 승진, 관운은 기세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혁혁한 공을 세웠음에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시기이다. 실제로 별다른 벼슬 상으로 출세는 하지 못하고 오히려 상사의 모함으로 인해 백의종군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게 된다.

출처: 국민일보, https://m.kmib.co.kr/view.asp?arcid=0006700332

 

 

그리고 5 대운(47~56세)이 되면 충무공에게 최대의 喜神(희신)인 乙亥(을해) 대운이 된다. 오행으로 보면 목과 수 오행이 채워지는 시기이며 선천 사주에서 나타났던 乙庚庚(을경경) 쟁합이 천간 乙(을)이 하나 추가되어 해소되는 시기도 매우 좋은 구성이라고 볼 수 있다. 충무공이 47세가 되는 해에 진도 군수로 승진하고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서서히 그의 진가를 인정받게 된다. 충무공이 48세가 되는 해가 바로 임진왜란이 발발한 시기이다. 당연히 충무공의 기세가 대운에서도 뒷받침되고 年運(연운)에서도 살아난다. 그리고 壬辰年(임진년), 癸巳年(계사년), 甲午年(갑오년)까지 승승장구하게 되는 황금기가 전개되는데 충무공의 경우 운세의 흐름만 좋은 것이 아니라 치밀하고 전략적인 분석을 통해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전투에만 출정하는 주도면밀함을 보이면서 이런 상승세를 더욱더 끌어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대운의 흐름이 좋았음에도 52세, 53세에는 閑神(한신)이었던 화 오행이 강해지면서 부침을 겪게 되는데 53세에는 선조가 파직을 내리고 원균이 바통을 이어받으면서 무패의 조선 수군이 하루아침에 몰락하게 되고 아들마저 전투에서 잃게 되는 슬픔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 역사상 최고의 명 전투였던 명량해전에서 남아 있던 12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는 드라마 같은 역사를 펼쳐내기도 한다. 여기에서도 충무공의 강한 일간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새삼 명리학자로서 깨닫게 된다. 아무리 관성의 힘이 나를 짓눌러도 내가 강하면 능히 그 기세를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스스로 끊임없이 단련하는 自强不息(자강불식)의 지혜를 전해주고 있다.

출처: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627801

 

 

그리고 1598년 戊戌年(무술년), 정유재란 이후 일본으로 퇴각하려는 일본군의 본진을 결코 살려 보내지 않겠다는 정신으로 참가한 노량해전에서 적의 흉탄을 맞고 서거하시게 되는데 이후 역사가들이 ‘의도한 죽음이었다’, 이후에 살아서 천수를 누렸다는 얘기들이 많으나 충무공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을 맺는다. 戊戌年(무술년)은 충무공에서 閑神(한신)역할을 하는 토 오행이지만 용신이었던 편인과 冲(충)을 하게 되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전쟁 이후 당파싸움이 치열한 상태에서 충무공을 늘 탐탁치 않게 생각했던 선조의 성향이나 과거 행적으로 봤을 때 충무공에게 명예로운 죽음이었다고 청허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유방이 항우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던 일등 공신이었던 韓信(한신) 장군을 삶아 죽인 비극적 결말이나 과거의 역사를 봐도 너무나 뛰어난 장수는 반드시 당시 정치권 기득권 세력의 질시를 받게 마련이고 험한 꼴을 당하기 쉽다는 것을 그토록 지혜로웠던 충무공이 몰랐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충무공의 삶에서 당장 처한 현실에서 안위나 부와 명예를 누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처절한 자기와의 싸움에서 스스로 단련하고 지혜를 습득하고 신기술을 도입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진취성, 혁신성을 갖춘 위대한 인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태어나면서 형성된 일간의 힘이 약하다면 그 사실에 좌절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자기를 단련하고 수련을 통해 강한 인격과 육체로 거듭난다면 그것이 바로 사주명리학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개개인이 배우고 취해야 할 바를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