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군 가수리 하가마을
▲ 마을 한가운데를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하가마을.
시냇물 따라 흰 구름 흘러간다. 마을 한가운데를 휘감아도는 냇물이다. 화순 동복 가수리 하가마을. 마을 집들을 양팔로 품고 길게 흐르는 시냇가를 따라 간다. 집 대문 한둘마다 냇물에 이르는 야참한 층계가 반드시 나 있다. 집집이 대문간에서 냇물로 이어지는 길이다. “또랑에서 칼칼이 씻거 불어야 개안해” “우덜은(우리는) 여그가 정지(부엌)고 시암(샘)이여. 오만 것을 다 해.” 짓가심(김치거리)으로 솎아낸 열무잎을 씻고 있는 할머니. “나가 누구냐고? 나는 아름다운 가수리에 사는 할매제!” ‘아름다운 가수리’를 특별히 강조하는 한삼순(68) 할머니. 순천 주암 기산에서 시집 왔으니 ‘기산떡’이란다. “그저 뭣됐든 욜로 갖고 와. 또랑에서 칼칼이 씻거 불어야 개안헌께. 가직허고(가깝고).” 삼시 세 때 끼니 끓여 먹느라, 식구들 빨래하느라, 호미며 낫 씻으랴 하루에도 열두 번씩 오르락내리락 하는 층계다. “흘러가는 물이라 시상 깨끗해.” 우옥희(71) 할머니는 조기를 씻고 있다. “항! 시한(겨울)에도 얼음장 깨고 일해. 장갑 끼고 허믄 암시랑토 안해.” 누구는 징검다리에 앉아, 누구는 제법 널찍한 너럭바위에 엉덩이를 대고, 누구는 된장국에 넣을 감자를 깎고, 누구는 조구새끼를 씻고, 누구는 그 물에서 행주를 빨기도 하고 혹은 방망이 팡팡 두들겨서 걸레를 빨기도 한다. “자석들 속 썩이고 서방이 부애(부아) 지른 날에는 방맹이질이 씨어져(세져). 얼매나 시칼히(세게) 뚜둘어 분가(두드리는지) 난닝구에 구멍이 뚤어져 분당께.” 할매들 웃음 와크르르 흘러가는 시냇가. 더러운 것과 조금 더 더러운 것, 깨끗한 것과 조금 덜 깨끗한 것의 경계도 구분도 없다. ▲ “우덜은(우리는) 여그가 정지(부엌)고 시암(샘)이여. 오만 것을 다 해.” 누구는 된장국에 넣 을 감자를 깎고, 누구는 조구새끼를 씻고, 누구는 그 물에서 행주를 빨기도 하고 혹은 방망이 팡팡 두들겨서 걸레를 빨기도 하는 하가마을 시냇가.
“물은 앞만 보고 묵는 것이여.” 기산떡 할머니의 명쾌한 답이다. “이날 평생 촌에서 썩어빠지게 일이나 허고 땅이나 파묵고 살았다”는 할머니에게서 인생의 진리를 듣는다. 지금 내 앞으로 흘러온 삶의 장면들에 충실하면 그만인 것 . 빨래하고 일어나 허리 한번 두들기는 기산떡 할머니. “당아(아직) 밥 안묵었지멩?” 묻는다. 할매 따라 졸래졸래 고샅길을 걷는다. 가을이라고, 냇가 옆으론 빨간 고추며 토란대들이 널려 있고, 돌담엔 조르라니 기대앉은 깻단이 말라가는 중이다. 저렇듯 가지런한 성정을 가진 어르신의 솜씨일레라. “구식 사람들이 신식 사람들 따라가야제” 햇살 청량한 마루에 금세 걸디 건 상이 차려진다. 솥에서 방금 쪄낸 뜨거운 감자, 막 헹궈 온 열무잎에 풋고추에 된장, 고봉밥 한 그릇, 그리고 일요일날 아들네가 가져왔더라는 거봉 포도까지. 뉘기(누구)집 손님인가 묻던 김창주(71) 할아버지는 막걸리 한 병을 내오신다. “마느래(마누라) 기운 딸릴 때 묵으라고 상비해 두요. 내우 간에 살다가 먼저 가 불믄 어짤 것이요.”
▲ “또랑에서 칼칼이 씻거 불어야 개안해.”흐르는 시냇물에 어린 열무잎 씻어 징검다리 건너는 할머니. 졸래졸래 따라가서 걸디 건 상을 받았다. 솥에서 방금 쪄낸 뜨거운 감자, 막 헹궈 온 열무잎에 풋고추에 된장, 고봉밥 한 그릇…. “아, 언능 묵으란마시. 미느리맹키로 딸맹키로 묵 어.”
달큼삼삼한 동복 막걸리에 인이 박혀 다른 데서 나오는 막걸리는 입에 안 붙는다는 할매. 한 잔 주욱 들이키시고 “하이고, 인자 살겄네!” 그런 할매 바라보는 할배 눈길 보드랍다. “나가 일을 잘헌게 이삐겄제. 눈만 벌어지믄 밭에 가서 엎어져 있은께.” 이제 밭고랑처럼 주름진 할매는 꽃같은 열 일곱 살에 시집을 왔다. 저어 만수동 장골재를 넘어오는데 간밤에 눈이 왔더란다. “재를 빨딱 넘어 온디 파딱 자빠져 불어. 보듬고 오던 참지름병이 도그르르 굴러서 깨져 불었어.” 참지름병이 깨져서 울면서 시집 온 어린 신부하고, 20년 이상을 화순 탄광 광부로 일하면서 줄줄이 8남매를 장성시켰다. “아그들이 잘잘헌디 어디 한피짝에서라도 나쁜 맘 먹으믄 아그들한테 죄로 갈까니” 항상 조심하는 심정으로 살았단다. “인자 다 지 앞가림은 허고 산게 잊어 불고 사요. 그라믄 고맙제. 더 이상 있간디.” “우리 모지랜(모자라는) 것은 자석들이 챙겨주고 지그 묵을 것은 우리가 챙겨 주고” 그렇게 산다는 할매 할배. “이것이 자주감자여. 따술 때가 맛나.” 방금 시냇가에서 헹궈 온 그 열무잎을 손바닥에 놓아 주는 할매를 할배도 거든다. “아, 언능 묵으란마시. 미느리(며느리)맹키로 딸맹키로 묵어.” ‘미느리도 딸도’ 구별 없이 허물 없이 묵을 것 앞에 달라드는 것이 이 속정 깊은 어르신댁의 따순 가풍이렷다. “무잎이 영판 보드랍그만. 싸서 잡사봐.” 손바닥에 놓아주는 열무잎. 방금 냇가에서 헹궈 온 것이다. “우덜은 애터지고 깝깝해서 집에서는 일 못해. 너릅고(넓고) 물세도 전기세도 안 나오고 얼매나 좋은가.” 하지만, 일거리를 죄다 냇가로 들고 나오는 하가마을 풍속(?)이 신식 며느리들한테는 통하지 않는가 보다. “오기만 허믄 만날 수돗물을 틀어 놓고 있어. 냅둬 불어. 한 사날(사나흘) 볼 것인디 뭐라고 거북시런 소리를 헐 것인가. 구식 사람들이 신식 사람들을 따라가야제.” “다무락 욱에 호박 따 갖고 가시오. 잉!” “눈이 깔아져서(눈꺼풀이 내리덮여서) 인물이 짜잔헌디….” 사진덕 없음을 걱정하는 성암떡 할매. “대통령은 내외지간에 눈도 들었드만. 이삔 줄도 몰겄어. 우리 농촌사람들 잘 살게 해 줘야 이삐제.” 요새 날이 계속 쌀랑거리는 통에 곡식이 껄렁해서 걱정이란다. 고구마 캐고 난 줄거리를 뽑아서 다듬고 있는 중이다. “짐생(짐승)이라도 믹여야제.” “갈 직에 다무락(담) 욱에 호박 따 갖고 가시오. 잉!” 당부하던 할매. 행여 안 따 갈까봐 호미자루 놓고 따라 나온다. “아, 호박 가져가란께.” 낑낑 꼰지발 딛고 호박 하나 따고 그 곁에 싱싱한 호박잎 하나 뚝 끊는다. 어리디 어린 호박 하나 널찍한 초록 잎 위에 얹어 내미는 손길. ‘없어도 그만’인 호박잎 하나 굳이 보태어 치장하는 그 여유. 곤고한 삶에서도 지켜온 것이기에 더욱 아름답다. 뒤통수에 성암떡 할매의 ‘호박 요리법’이 따라온다. “애린 것이라 보드랄 것이여. 채쳐서 디쳐서(데쳐서) 초 넣고 새큼달큼 무쳐 묵어 잉!” ▲ 행여 마을로 들어오려던 잡귀도 역병도 크고 작은 재난도 이들 앞에 서면 꼼짝 못한다. 하가마을 들머리를 지키는 동방대장군. 서방대장군과 함께 하가마을의 든든한 ‘빽’이다.
‘범죄없는 마을’의 든든한 ‘빽’ 뉘 집 돌담은 감나무를 제 몸인 양 품고 있다. 고샅길을 넓히면서 안으로 땡겨서 쌓은 돌담이 본디 마당에 있던 감나무를 안게 된 것. 무엇이든 원래 있던 그 자리에서 내치지 않고 보듬는 그 마음이다 뉘 집 대문엔 나선형 문고리가 걸려 있다. 저것은 안에 사람 없으니 들어오지 말라는 소박한 당부의 말씀일 터. 그 말씀 ‘세콤’보다 강력하다. ‘범죄없는 마을’이라는 표지석을 정자나무 곁에 앉혀 둔 하가마을 아닌가. 아닌 게 아니라 하가마을엔 든든한 ‘빽’이 있다. 행여 마을로 들어오려던 잡귀도 역병도 크고 작은 재난도 이들 앞에 서면 꼼짝 못한다. 마을 들머리를 지키고 선 ‘동방대장군’ ‘서방대장군’. 누구는 이 한 쌍의 장승을 ‘민증까진 까발리지 않았지만 철저하게 마음까지 검열을 하던 장승’이라고 했다. ▲ 안에 사람 없으니 들어오지 말라는 소박한 당부의 말씀. 나선형 문고리.
헌데 그 얼굴 험상궂기는커녕 친근하다. 일껏 무서운 척하지만 보드라운 속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하가마을 장승. 마을에 들어서는 이들의 드센 마음을 그 아름다움으로 풀어놓아 버린다. ‘아름다움으로 능히 적을 이길 수 있나니’의 경지다. 냇가 바윗돌 위에 빨래방망이 본다. 날마다 다시 올라오는 삶의 때 씻어 내느라 제 몸피를 덜어냈을 것이다. 제 몸 공양하여 때묻은 옷가지 희디희게 씻어낸 그 눈부신 헌신을 본다. 아낌없이 내어 주고 젖가슴 쪼그라진 우리 어무니들 같은. 그 한숨, 그 눈물 물처럼 흘려 보내고 늘 그렇게 말간 얼굴들. 그리운 시냇가에 나와 오늘도 흰 빨래 희게 빨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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