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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허의 명리잡설(31-인간의 운명과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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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이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 발달과정을 거치면서 지식을 갖추고

고도의 현대문명을 일구어내면서 스스로 만든 문명의 혜택을 듬뿍 누리기도 하지만


반대급부로 신체가 허약해지고 물질만능주의가 되면서


그 옛날, 아니 어쩌면 본래 가지고 있었던,

그것이 神性이라고 해도 좋고, 本性이라고 해도 좋으며 靈性이라고 불러도 좋을,


고귀하고도 정신적인 성스러운 부분에 대한 도외시 또는

후순위로 그 중요성이 밀려나는 현상을 도처에서 겪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아무리 권력이 좋고 황금이 최우선의 가치로 추앙받고

그것을 손에 쥐고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발버둥치고


본의든 아니든 우리는 숱한 경쟁자들과 치고받고

다투는 과정을 겪어가고 있으며


자칫 능력이나 노력 또는 빽 이라도 없으면 도태되면서


흔히들 이야기하는 흙 수저의 삶을 강요받고

그것이 어떤 전기가 마련되지 않으면 자식세대,

손주 세대에까지 대물림을 해 줘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밟기 쉬운 형태로 전개되기 때문에


지금 현대인들은 매순간이


치열한 전쟁이요, 전투요,

서로 칼만 들지 않았을 뿐


나와 가까운 가족을 제외한 모든 사물과 대상들이

나에게는 적이나 다름없는 피곤하기 그지없는 매순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수천 년 인류문명역사의


매 장이 다툼과 전쟁과 살육과 점령, 갈취, 파괴의

끔찍한 피의 역사로 점철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아름다운 음악과 서사시와 문학과 건축,

공간의 조형미를 한껏 살린 인류문화의 창달과 발전,


그리고 원래가지고 있었던 본성에 의해 종교를 만들고


비록 그 의미가 많이 퇴화하고 퇴색하긴 했지만

절대자에 대한 숭배를 통해 이러한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에


찌들고 오염된 정신을 정화하고자 노력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주적 시간의 잣대로 보자면


지구상의 주인으로 행세하고 있는

지금 인류의 문명수준이나 연륜은 그야말로

언급할 단위가 적절하지 않을 정도로 미약한 수준이고


그나마 산업혁명이후 100여년의 시간동안

이루어놓은 과학문명의 발전은


이전에 수천 년 동안 축적해 왔던 그것에 비하면

그 밀도나 파급효과측면에서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빼어난 것도 사실이다.


사실 이런 속도로 인류의 과학기술이 발전해간다면


향후 20년 이후의 수준은 지금 상상으로만 이야기하는 수준을

훨씬 더 초월한 그것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몇 년 후면 한 갑자의 나이가 되는

굳어버린 머리와 사고력을 지닌 청허가


이 거창한 우주론을 곱씹으면서 인간의 의식과의

상관관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의 정체와 실상을


조금이라도 더 진실에 가깝게 들여다보기 위해 발버둥 친 것도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났건만


아직도 현재의 과학수준이나 관측기술,

최첨단 현대물리학이나 천문우주학자들이 이야기 하는


다양한 우주론은 본심 저 깊은 곳에 있는

목마름을 십분의 일도 해소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과연 내 살아생전에

이 갈증의 절반이라도 풀어질 날이 올 것인지 늘 전전긍긍하고 있다.


현대 최첨단 입자물리학과

우주천문학자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우리 우주의 모습은 너무나 기괴하고

때로는 형이상학적이며


어떤 경우는 과학의 영역인지 철학의 영역인지

심오한 절대자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종교의 영역까지 넘나들고 있는 실정인데


청허가 개인적으로 사주명리학적 관점에서

가장 흥미롭게 느끼고 연관성이 깊다고


여겨지는 학설이 바로 양자역학적 관점의 우주론이다.


요즘은 워낙에 양자역학의 신비한 요소가

많이 벗겨져서 옛날에 비하면 기괴한 느낌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인가에

대한 과정적 이해에 대한 검증은 아직 요원하다.


유명한 물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에서 읽을 수 있는 공통점은


 양자역학은 분명 우리의 상식에 위배되는 결과를 보이지만

현실세계든, 미시세계든 어떤 것에 대한 결과예측에서

이보다 더 정확한 실제결과를 보일 수는 없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왜 그런 결과가 도출되는지에 대한 설명단계로 들어가면


현재 지구 인류 중에서 그 원리를

완벽하게 설명하고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이것이 양자역학의 현실이다.


아마도 수백 년 아니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지금 대다수의 과학자들이, 절대다수의

세계적 석학과 천재들이 뚜렷하게 해설하지 못하는

양자역학의 굳게 닫힌 부분이 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현실단계에서 결과는 나타나 있고


그 과정은 100% 밝혀진 것이 없다는 것이

정확한 양자역학에 대한 우리의 이해수준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국선도를 산중 비전 선도수련법에서

누구나 원하면 양생법으로 수련할 수 있도록 세상에 전파한


청산선사가 가끔씩 국선도의 수련효과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런 표현을 하신 적이 있다.


논증은 100년 후에 가능할지 몰라도 실증은 바로 눈앞에 있다


국선도를 포함한 다양한 국내외 동서고금의

심신수련법을 바른 방법, 바른 마음으로 규칙적이고

정기적인 패턴으로 행하다 보면 몸과 정신에 긍정적인 변화가 오고


극으로 달할 경우


특이공능도 생길 수 있고

정신적으로 다다를 수 있는 극한의 희열을 맛보게 되며

이른바 도통하는 도인이 될 수도 있다고 하는 것인데


단순히 호흡과 행공을 적절하게 병행한다고 해서

그런 신비한 힘이 생긴다는 것은


그렇게 되는 과정을 조목조목 이론적인 방법과


실험에 의한 유의차 검정 등을 적용하는 등의

과학적인 분석방법으로는 제대로 논문형식을 갖추면서도


하나의 이론적 체계로 정립하기에 아직은 분명 한계가 있지만


그런 효과가 생기는 것은 바로 나타나는 현상임을 설명하신 것인데,


우리가 다양한 형태로 지금 보고 있는


각종 과학기술의 쾌거들이


결과적으로는 분명히 이론적인 예측결과와 맞는데


유독 이 양자역학으로 들어가게 되면

결과적인 측면과 양자역학방정식이 추론하는 결과 값은

놀랍도록 일치하는데


정작 어떻게 그렇게 되는 것인가에 대한 설명은

아직 완벽하게 완성되지 못하고 있으니


조금 논리의 비약은 있을지언정


청산선사께서 언급한 위의 수련효과

논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이라 보는 것이다.



이런 유사한 형태의 [왜 그렇게 되는 것인지]에 대해 만인이 쉽게 이해하고


 [어떻게 그렇게 되는 것인지]에 대한 확실한

가설-실험-결과 확인의 단계를 거치는 과정적 설명은 어렵지만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라는 결과위주의 현상들은

어렵지 않게 우리 인간들의 생활면면에 많이도 나타나고 있다.


국과 중국에서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수련법에는


도교사상에 바탕을 둔 양생지도가 있고


여기에도 산중에서 비전되는 각종 수련법들이 엄청나게 많으며


불교의 수행법인 참선이나 간화선도 있고

북방불교 남방불교로 나뉘어 명상법으로 가지를 치고


명상법에서는


다시 Vipassana 명상부터 초월명상, 촛불명상,

내관반청의 방법을 응용한 수련법이 있고


인도수련법의 대명사인 요가에도

아쉬탕가, 빈야사, 아헹가, 테라피, 플라잉, DDP, 비크람 요가에서부터

비전으로 전해져 온다는 크리야 요가나


근대적 방법으로 새롭게 인기를 끌고 있는

필라테스 요가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변천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을 해 오고 있다.


그리고 티베트에서도 밀교적 주문수련부터 체화된 술법이 있고


우리 한국의 역사를 보면 환인께서 천명을 받잡아

이 땅에 내려온 이후로 수많은 경전들을 보면


천부경에서부터 삼일신고, 참전계경,

신비한 효험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진 옥추경(옥추보경), 칠성경에 이르기까지


실로 이 오묘한 우주나 인간세계의 구성 원리를 알리고


그것을 알고 실행함으로써 궁극적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고자 쓰여 내려온 각종 경전, 밀법, 체법, 호흡법, 명상법 들이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고도

다양하고 그 깊이도 천차만별이다.


고대 인도와 티베트의 정신적 구루로 알려진


파드마 삼바바는 아직도 그 심오함을 다 알 수 없다는


티베트 사자의 서를 통해


[바르도 퇴돌]을 죽은 사람 앞에서 읽어주기만 하면


영원한 대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하며


즉발하는 효험을 본다는 玉樞經에는 九靈三精呪라 하여


신성을 받아 인간의 앞날을 예측할 때

신비한 힘을 얻을 수 있는 주문법이 있고


동양이나 서양의 형태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영혼과 대화를 통해 앞날의 길흉을 예측하고


산자와 죽은 자를 서로 이어준다는

영매 또는 무당이 있어 다양한 형태로


이런 저런 세상살이의 궁금한 점을 알려주는 매개역할을 하고 있다.


얘기가 잠시 벗어나겠지만


이 대목에서 하나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말이 있는데


지난 번 명리잡설에서 언급했던


홀로그램 우주의 개념에서는 3차원의 형상은

결국 2차원 수준에서 펼쳐진 각종 코드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3차원적 영상 또는 현상으로 전개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정체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도입하고 있다.


너무나 기이하고 낯설어서 피식 웃게 만들기도 하지만

우리가 조금만 세심한 관심을 쏟는다면


이런 개념은 이미 불경이나 소림권법,

그리고 앞에서 언급했던 九靈三精呪에서도 동일하게 언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불경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법구경 제 1對句편에서는


[착한 생각을 하면 행복이 따른다.


心爲法本심위법본 心尊心使심존심사

中心念善중심염선 卽言卽行즉언즉행

福樂自追복락자추 如影隨形여영수형 이라고 설법을 펼치고 있는데


 뜻은 마음은

모든 일의 根本이 되어 主人으로 모든 일 시키나니


마음속에 착한 일 생각하면 말과 行動 또한 그러하리라.


그 때문에 幸福은 그를 따르리라 마치 形體를 따르는 그림자처럼]


이라고 설파하고 있는데


여기서 굵게 표시된 여영수형이라는 의미를 우선 기억해두자.


그리고 외우기만 해도 사악한 귀신들의 뼈를

녹여버린다는 위력을 지닌 玉樞經의 중심을 이루는


九靈三精呪의 중간부분에


구규광명 보호아신 여곡유성 여영수형이라 하여

다시 여영수형이라는 말이 나온다.


한자의 뜻을 그대로 풀이하지만


모든 그림자에는 반드시 그 형체가 따른다는 뜻으로 해석을 할 수 있고


굳이 따지자면 모든 형체에는 반드시 그림자가 따른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홀로그램 우주를 설명할 때 과학자들조차도

플라톤의 동굴과 촛불에 의한 그림자의 우화를 예를 들곤 하는데


이미 오래 된 동양의 고전에서는


이미 이 뜻을 깊이 새기고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지금 우주천문학이나 각종 현대물리학,

화학이나 소립자 물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상당부분의 발견과 채택된 이론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동양의 불경이나 기타 경전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에 이르면


아무리 무덤덤하고 둔재에 불과한


청허도 모골이 송연한 어떤 두려움마저

우리들의 오랜 선대조상들에게서 느끼게 된다.


그러면 양자역학에서 우리가 추론할 수 있는


이 우주의 구성 원리와 일견 역학이라고 일컬어지는


인간의 운명과 과거, 현재, 미래에 일어날 현상들을

예측하는 동서고금의 제반 학문들,


사주명리, 육임, 육 효, 자미두수, 기문둔갑,

점성술, 손금, 관상, 타로카드 등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 것일까?


여기에 광범위하게 신 내린 무당들이 점사를 보는 것도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접근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지,


손금이나 관상,

그리고 열 개의 천간과 열 두 개의 지지를 펼쳐놓고

풀어가는 제 역학 관련 학문들의 기본방식은 대개 이러하다.


손금에서는 손바닥에 나타난

손금의 형태와 교차, 깊음과 얕음,


그리고 주요 3대 손금의 형상과 각 구(언덕)들의

두께와 십자문양이라든지 무인도 형태라든지 M자 형태라든지


실금이 어떤 형태로 어느 지점에서 뻗어 나왔는지를

각 손금의 전체 길이를 평균나이로 어림잡아(하지만 꽤 정확하게 연습을 해야 한다)


그 시기를 맞추어 그 사람의 건강상태,

재물과 사회적 지위, 여러 가지 어려운 사항들을 읽어낸다.


서양에서 오히려 더 기초가 탄탄하게 형성되어

인도를 거쳐 전 세계에서 가장 쉽게 즉흥적으로

그 사람의 현재, 과거 상태와 미래의 전개형상을 읽어낼 수 있는 방법이다.


관상은 일전에 국내 최고의 관상전문가가

최고의 만화 화백을 만나서 장기간 시리즈로

쉽게 미디어를 통해 소개도 되었지만


인류가 문명을 이루면서 살아오는 과정에 축적된

여러 가지 공통적 사실과 기학이론에 더해


이마, 양 눈, 미간 사이, , , 입과 턱의

형상과 각도의 구성, 위치, 입체감등에


찰색이라 하여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어떤 氣色을 읽어내는 직관적 방법인데


달마대사의 기법에서 출발한 마의상법,

유장상법 등의 정밀한 책자와 실전의 임상을 통해

지금도 그 깊이를 더해 가고 있다.


타로카드도 78장 또는 79장의 그림이

그려진 카드가 지니는 함축적 의미를 가지고 고르는 순간


그 사람의 현재 상태와 앞으로의 전개양상을

제대로 해석하면 끼워맞추기 식이 아닌


상당한 고난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사주명리나 관련 역학에서도 글자의 배열을

놓고 그 글자가 지닌 고유의 오행, 음양과

합 충 형 해 파와 상생 상극의 이치를 정확하게 읽어냄으로써


상담하러 온 사람들의 과거, 현재,

미래의 전개양상을 추론하고 해석하는 기법들이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각 기법들에는


고유한 장점과 이런 저런 단점들을 지니고 있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이왕 할 것이면 사심을 비우고


정말 정성과 노력을 다해 필요충분조건에

해당하는 실력을 갖추고 사람들을 겁주거나

현혹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욕심을 버린 상태에서 놓치는 것은 없는지,


억지 끼워 맞추기식이나 눈치로 때려잡는 방식이 아닌

원래 이론에 충실하게 정단을 해야


그나마 다양한 주변, 사회의 환경요소들에 의해 바뀌기

쉬운 사람들의 삶을 다 맞추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 삶의 기본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과거의 삶은 이랬을 것이며 앞으로의 삶은 이런 방향으로

전개되기 쉬우니 사전 대비를 하거나 좋지 않은 일에는


아예 관심을 끄고 본연의 잘하는 일에 충실하게끔

유도하는 삶의 指路士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주명리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청허는 분명하게 확신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내 것이 아닌 것에 일체의

욕심을 부리지 않고 안 좋으면 좋게 만들어가는

굳건한 의지가 있으면 아무리 좋지 않은 사주요,


운명이라 하더라도


분명 그것을 바꾸고 보다 나은 삶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인생사의 절반은

본인의 성격을 어떻게 제어하고 활용하는가에 거의 성패가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관측자가 없을 때는


자연스러운,


그러나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괴하다고 느끼게 하는,


결과를 도출하는데


관측도구나 관측자가 있으면


완전히 다른 패턴으로 바뀌어 버리는

양자실험의 결과와 청허가 앞에서 언급한

본인의 자유의지를 어떻게 활용하는가는


상당한 공통점이 있고


분명 초미세 시간 이후의 변화를 일으키는


관찰자의 존재유무와

향후의 삶을 바뀌게 하는 해당자의 의지와 실천유무는


사실상 그 작동 원리는 원천적으로

동일하다고 보는 것이 청허의 믿음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사실 하나는


모든 생명체는 천체가 되었든 생물이 되었던

반드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고


태양계 내부에 국한하면 무한의 세월을

반복적으로 거듭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은하계 단위로 나아가면 우리 태양계는


결코 유사 이래 단 한 번도 같은

우주적 공간에서 반복되는 움직임을 보인 적이 없다


(태양계 vortex).



왜냐하면 지금 우주는 놀라운 속도로

빅뱅 이래 팽창을 가속하고 있으며


우리가 속한 은하계도 더 큰 은하단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접근하고 있고


이 은하단도 더욱 빠른 속도로

더 큰 초대형 은하단의 중심으로 질주하고 있으며


이 초대형 은하단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속한 이우주의 움직임 패턴에 맞추어 급속하게 이동하고 있음이

최근의 관측결과로 명쾌하게 밝혀져 있다.


고로 정밀하게 따지면


아무리 지구와 태양과 달이

같은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아주 거시적인 차원에서 보면

우리는 결코 동일한 우주적 좌표에

위치한 적이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이 우주적 차원의 흐름에서 보는


우리 지구행성과

이 지구에 의탁하고 있는 인류의 위치의 변동이 되고


 이 우주가 다 하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결코 같은 위치에 동일한 패턴의 우주를 보지는 않을 것이다.


(40억년 후의 은하계 모습: 안드로메다와 우리 은하계의 충돌모습 그림)




동서양의 모든 인간의 운명을 예측하고

정단하는 기법은 오행을 기준으로 하거나

별자리의 미세한 위치와 상호작용을 근본으로 하는데


우리가 속해 있는 은하계 내에서

우리 태양계의 공전운동은 대략 25천만년 정도가 된다.


물론 은하계 내의 좌표관점에

한해서 볼 때 그렇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생명이

그 정도 억겁에 가까운 시간을 살아갈 수는 없으므로


기껏해야 80년 정도를 사는


보통 인간들의 삶에 태양계의

은하계 공전주기를 반영하여 해석하기는 무척 어려운 사실임을 알 수 있고


태양계가 은하계의 변방위치를 지날 때


그 것의 좌표를 열 두 등분하여 나눈 것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물병자리니 전갈자리니 하는 표현으로

서양식 점성술에서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이는 태양계의 은하계 내 위치를 반영한 것이 아니라

월별로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면서


지나는 위치를 은하계의 별자리를 각각의

월별로 배당하여 취하는 월을 중심으로 한 미래예측 방법의 하나가 된다.


사주명리에서도 태어난 월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비슷한 개념인 것 같으면서도

사뭇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손금에서도


손바닥의 위치에 따라

목성, 토성, 태양, 금성, 수성, 화성과 월()의 언덕이라 하여


원형 식으로 분할하여


()와 이를 지나는 주요 손금들의 형상을 보고


그 사람의 과거, 현재,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신상의 변화를 들여다보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결국 태양계의 내행성은 모두 반영한다는 점에서

그 기본요소들은 사주명리와 유사한 점을 취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손금이 매우 정확하게


그 사람의 삶의 형태와 변화요소를 나타낸다고 가정한다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지를 설명하라고 하면

과연 일반적인 수학적 알고리듬이나 방정식이나

변수의 형태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사주명리의 분석을 통해 나타내는

각종 문자 코드의 구성과 매트릭스가 인간의 삶의 차트라고 가정한다면


어떤 문자적 원리로 그렇게 되는지는 설명할 수 있지만

보다 한 차원 깊게 들어가 버리면


그 어떤 논리로도 그렇게 사주 자체가

그 사람의 인생을 설명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다.


이야기가 자꾸 횡설수설 이리 갔다 저리 갔다하는데


이번 명리잡설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핵심은


청허가 보는 사주명리의 양자역학적 구성 원리와

형태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며


여기에 개개인이 정확하게

자신의 기본 요소들이 어떻고 그 요소들의

강약과 변화의 주기를 파악한다면


비록 왜 그렇게 현상으로 나타나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해도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내가 노력하고 발버둥 치는 깊이에 따라,


내 삶을 바꾸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과

실제 행동이 이루어질 때 관찰가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결과가 달라지는 미세영역에서의 양자역학 원리처럼


내 삶을 충분히 만족스러운 상태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밖에는 영하에 가까운 추운 날씨고

소나기가 쏟아지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데


그래도 나가서 목적지를 향해 가야 한다면



최소한 면 티에 청바지 입고 방향도 모른 채

뛰어 나갈 것이 아니라


밤길이면 랜턴도 챙기고 세찬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방수방풍소재로 된 겉옷과


추운 날씨에도 몸이 경직되지 않도록

양모로 된 내의라도 하나 챙겨 입는다면


비록 최악의 날씨이고

아무리 준비를 해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적어도 비바람에 온 몸이 젖어 저 체온 증으로

오도 가도 못하는 어렵고도 답답한 상황은 모면할 수 있고



좀 더 준비를 잘 한다면 목적지까지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들의 삶에 적용시키는 수단이 되고 지혜가 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