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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허의 명리즉설

사주명리와 종교활동의 관계









전 세계 70억을 넘는 인구는 저마다


민족과 국가 또는 사회의 환경 및

역사적 배경에 따라 다양한 종교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어떤 종교가 더 좋고 나쁨을 이야기하는 것은

청허의 철학적 범주에는 제외되어 있는 것이므로


논제로 삼을 것이 전혀 아니며,


오늘 청허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각 개인들의 종교적인 성향이나 믿음이


사주명리와의 관계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서로 교호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있는지,


아니면 공존하기 힘든 것인지

또는 서로가 잘 조화롭게 구성된다면


이 험악한 세상에서 비교적 자기의 중심을 잡아가면서

나름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로 풀어나가 보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사주명리는


그 이론적인 체계의 바탕이 되는

주역, 희역, 그리고 정역에 이르기까지의


우주 삼라만상의 변화와 운행원리를 설명하는

기본적 원리인 음양오행에 바탕을 두고


하늘의 움직임을 예측하여

인간중대사의 변화를 예측하는 점성술,

 

땅과 지기의 운행원리와

인간이 지닌 고유의 기운을 얽어서

미래와 현재의 길흉을 정단하는 풍수,


인체의 경락과 오장육부의

기운적 상생상극의 원리로


건강과 질병을 풀어내는 한의학에 이르기까지


인간생활 깊숙한 곳에 관여하고 있고


여기에 열 개의 천간과 열 두 개의 지지가

얽어내는 변화무쌍한 조합과


이합집산의 원리를 바탕으로

개인적 관점에서 길흉을 예단하고 준비하며

대응하게 만드는 지혜를 전달하는 전인적 인문학의 한 뿌리가 된다.

 

하지만 워낙 끝이 없고 같은 뿌리라 하더라도

무한한 수의 가지를 지니고 있다는


무한 확장성의 방대함 때문에

끝까지 깊이 있게 파고들어가기가 쉽지 않고


이러한 어려움을 다 이해하기 힘든 까닭에


대충 뼈대만 추려 내어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는

단식판단이 주류를 이루게 되고


그것조차도 힘든 상황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폐기되다시피 한

신살을 중심으로 판단하거나


경우의 수라는 다양성 측면에서

분명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당 사주를 중심으로 보거나


이것도 저것도 아닌

통변성의 의미만 가지고


타인의 인생을 감정하고 무책임하게 평가하다 보니


정확성은 물론이고


오히려 힘들어서 찾아 온 사람들의

어려움과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방향의 제시는 둘 째 치고


그 사람들의 등을 치고 돈을 착취하는

혹세무민의 대명사로 미신화 되어 온 아픈 이력 때문에


지금도 대부분의 의식 있는 사람들은


사주팔자의 풀이를 학문화하고

체계화 한 고도의 인생지침서로 생각하지 않고


맞아도 그만 안 맞아도 그만인 그저

그런 돈벌이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무척이나 개탄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긍정적인 현상은


최근 들어 사주명리가 가지고 있는


고도의 인문학적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고


전국의 유수대학에서도 정식 전공과목으로

등재하거나 전문적 역학공부를 이수할 수 있는

별도의 과를 만들어서 저변확대에 힘쓰고 있는

동향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아직도 정확해야 할 기초정보의 분석에서부터

잘못된 방식이 대세를 이루다 보니


훨씬 더 깊이 정확성을 보완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에도

자신들이 배운 그대로를 후세에게 물려주고자 하는

고집스러운 면이 잔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주명리는 인간의 운명을 예측하고자 하는


염원과 목적으로 발생된

여타 그 어느 역학, 즉 관상, 손금, 점성술, 육효나 육임보다도


그 일반성이나 흐름의 측면에서


천 년 이상의 세월을 통해 검증되어 온

인간 개인의 미래사 예측에 관한 가장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는 학문이다.


이러한 장점이 있는 반면에


아주 미세한 내용들,


예를 들어 내일 내가 어떤 점심을 먹게 될지,

내년에 어떤 용모를 지닌 사람과 인연이 이어질 것인가에 대한


추론의 정확성은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은 한계성을 지닌 학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 저러한 관점을 통틀어서

한마디로 결론을 내리기는 힘들지만


사주명리는 정확한 생년월일과

생시(경도에 따른 출생지역을 정확하게 반영한)


대운, 세운의 흐름을 통해 인생의 부침을

매우 명확하게 예단할 수 있는 학문적 가치가

매우 우수한 조상들의 지혜가 농축된 인생의 지침서이다.

 

앞서 청허의 명리 학 이야기에서

수없이 언급했기 때문에


더 이상 설명을 하지 않겠지만


일부 종교에서는 사주를 본다는 자체를

아예 이단으로 취급하거나

사이비로 완전하게 낙인을 찍어둔 상태라서


뻔한 어려움 속에서도 종교적 믿음만으로

이를 해소하려 하는 경향이 분명하게 있다.


설교나 법문을 통해서,


또 선도수련의 세계에서도

자신의 운명은 자신의 수련여하에 따라

완전하게 바뀔 수 있음을 역설하기도 하고,


고도의 명상수련을 거친 분들은

어차피 버리게 될 육신의 세상에서


사주팔자, 운명론이

뭐 그리 중요한가 하는 의문을 통해

이 소중한 학문적 가치를 가진 인생의 지침을 무시하기도 한다.

 

청허는 현존하는 그 어떤 종교에도 속하지 않고,

오랜 선도수련도 했고 명상도 해 봤지만


사실 마음먹은 만큼 세상사가

호락호락 풀려나가지 않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심지어 종교인으로 삶을 살아가시는 분들의

사주구성을 보면 그런 성향을 이미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아마도 그 분들이 이런 사주명리의

깊은 성찰적 인생코드(Life Code)의 해석을 이해한다면

아마도 쉽사리 그런 발언이나 편견을 유지하기는 힘들 것이다.

 

또한 신을 받아서 무속 인이 되는 분들의

선천적 사주에도 그런 성향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면


자신의 유전자 코드에 비견되는

Life Code를 제대로 해석해서


자신의 장점을 잘 살려나간다면

하나의 인생을 꾸려가는 수단으로서

종교라는 직업의 가치는 훨씬 더 올라가게 마련일 것이다.

 

종교라는 것은 인간이 문명생활을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그 뿌리를 형성했다고 보는 것이

인류학적 측면에서는 타당할 것인데,


요즘 숱하게 논란이 되고 있는


그 근원에 대해서는

청허는 참으로 할 이야기가 많지만


오늘의 논제에서 언급할 내용은 아니기에

종교가 가지는 장점과 단점,

그리고 사주명리가 종교생활에

도움이 어떻게 되는 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종교생활을 하시는 분들의 공통점이라면


아마도 그 신심의 깊이를 떠나서

무엇인가 내가 의지할 곳 또는 대상이 있다는 것인데,


그것이 초월적 존재가 되었던

심령적인 현상의 근원이 되었던


아니면 절대적 힘을 지닌 상상

그 이상의 존재가 되었건


내가 힘들고 무엇인가 어려우면

분명 하느님을 찾고 부처님을 찾고

알라를 찾고 옥황상제를 찾고


일부 토속종교에서 많이 염송하는

북두칠성여래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단계가 깊이 들어가면

모든 의사결정과 복력 심지어

흉한 일까지도 다 절대자의 계획이라고 믿으면서

 순응하는 태도를 보이게 마련인데


분명히 여기에는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게 존재한다.

 

, 내가 의지하고 기댈 대상으로서의 종교는


자식과 부모 특히 어머니에 대한

무의식적 의지성향과 매우 유사한 것으로

긍정적인 측면이 매우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사업에 실패하고 인생은 자꾸 꼬여만 가고

결혼생활은 파탄이 나고

자식은 늘 속을 썩이고

직장 상사는 마치 원수처럼 나를 괴롭히는

매일의 일상이 지속되는 가운데에서


나의 이러한 힘든 상황을 마음으로

털어놓고 해결책이 있건 없건 관계없이


내가 기대고 의지함으로서

일련의 편안함을 얻는다면


이것 보다 더 훌륭한 쉼터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위로를 얻고 용기를 내어

다시 힘차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면


분명 종교는 세상의

그 어떤 존재나 현상보다도


우리 인생의 중심에서 능히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런 단계를 지나쳐


나쁜 일이 생기고 흉사가 겹쳐도


이러한 모든 것이 내가 감내하고

어쩔 수 없이 받아야한다는 생각을 가진다면


이는 상당히 피동적인 것으로

종속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니


이는 자칫 완전히 스스로를 종교라는

테두리 내에 매몰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를 강요하고

채근하는 종교적 지도자들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것은 그런 삶을 살아감으로서


본인 이외의 가족이나 주변인들에게까지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끼친다면


이는 한시라도 빨리 바로잡아 나가야 할 폐단이 틀림없다.

 

또한 종교가 가지는 속성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기도라는 것이 있다.


청허 개인적으로

이 기도라는 염원의 힘은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


비록 무엇 무엇을 이루게 해 달라는

청구형 기도보다는


이미 바라고자 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짐에 감사하는 Mantra 기도가

훨씬 효험이 있다고 보지만


기도라는 것이 늘 획일적인

상태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무엇인가에 감사하고 힘을 얻는

일종의 명상과 집중력향상의 한 수단으로서도

 

기도는 매우 훌륭한 인간의

정신적인 도움의 도구로서

빼어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기도에 몰입하다 보면,


세상사의 근심을 잠시 내려놓고


가족과 자신의 안녕을 위한 간절한

염원을 쏟아내다 보면


엉키어 있던 복잡한 심상들이

잠시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고


한 곳에 집중하는 시간동안에


대부분의 경우 뇌파가 안정되면서

객관적으로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물론 너무 집착한다면 그

또한 좋은 작용보다는 나쁜 작용이 많을 수 있지만


너무 허황되거나 세상의 법칙을

무시하는 정도만 아니라면


청허는 기도의 힘을 상당히 좋게 평가하는 편이다.

 

종교가 가지는 또 하나의 장점은


홀로서기가 아닌 종교 활동을 하면서

만나고 친하게 되는 같은 종교인들과의

만남과 인간관계의 형성이다.


물론 잘못된 사이비, 독재적이고

타락한 지도자가 운영하는 교단이라면


이것보다 더 끔찍한 경우는 없겠지만


순수함이 어느 정도 살아있는

대부분의 종교인들이라면


이는 한 인간이 사회적,

경제적 활동을 함에 있어서


분명히 긍정적인 역할은 물론이고,


서로 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니

종교의 종류를 떠나서 장려되어도

을 부분인 것이라 생각한다.

 

상상해보라,


끝도 없이 펼쳐진 인생이라는 길에서


누군가 말동무가 되고

함께 엮어서 그 고난하고 힘든 길을 같이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안이 되고 도움이 될 것인가?


그래서 가족이라는 체계의 역할은


단순한 유전적, 육체적, 정신적 결합의 단계와

그 뿌리의 개념을 넘어서


우리 인간들에게 가장

소중한 단위가 되고 세상을

지탱하는 힘이 되는 것이다.

 

사주명리에서 보는 인생의 흐름은


자신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Life Code를 정확하게 이해한다면,


본인의 성격과 끌리는 분야,

즉 적성이라고 표현되는 잠재적 가치와

장단점을 알게 되는 것이고


살아가야 하는 짧지 않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Pros and Cons의 역할을 하게 된다.


사주명리를 통해 우리 개인들이

얻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신의 오행구성과

통변성의 구성을 이해하게 되면


자신이 선택하면 좋은 부분과

나쁜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니


여기서 자신의 나아가야 할 바를

명확하게 알게 됨으로써


진학이나 직업의 선택,

그리고 나아가 결혼이라는 인생의 중차대한 결정에서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인연을 고르는 것에도


가치를 따질 수 없을 정도의 지혜를 발휘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에게 맞는 사회, 경제적 생활의 범주와

자신의 배우자 인연을 앞가림할 수 있다면


이미 자신의 인생은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리고 10년 단위로

혹은 30년 단위로 흘러들어오는 대운과


일 년 단위의 연운의 흐름을 이해한다면


자신이 도전적이고 박력 넘치게 치고 나가야 할 때와


잠시 쉬어가야 할 시기,


그리고 지극히 주변상황에 대해

조심하고 안정적인 방향으로

몸을 사려야 할 때를 알고


실천함으로써 좋은 것은

극대화 하고 나쁜 것은 아예 피하거나

최소화함으로써 인생자체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적인 측면에서


세상의 그 어떤 학문이나 실천적 지침도

사주명리만큼 명확하게 길과 때와

방향과 자신의 행동지침을 제시해주는 것은

없다는 것이 청허의 단언이다.


물론 정확하게 이런 세부적인 사항들을


미신적인 요소를 제외하고

정확하고 정밀하게 안내해주려면


어지간한 노력과 공부로는

그런 역할을 수행하기 힘들뿐더러


자칫 잘못하면 선무당 사람 잡고,

반풍수 집안 망친다는 속설처럼


의뢰인의 삶을 뒤흔들어 놓고

파탄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에


사주명리를 공부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 공부를 통해

타인들의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려는 학인들은


절대 스스로의 마음가짐과 태도,


공부의 깊이와 폭의 확장에 한시라도

게으름을 피워서는 곤란하다.

 

그러나 세상살이가 어찌

이런 좋은 인연을 잘 만날 수 있겠는가?


그러다 보니 사업에 실패하고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고


하루에도 몇 번씩 한강교

다리를 쳐다보게 될 정도로

처참하게 망가진 인생 앞에서는


무엇인가 절대적인 힘을 강구하게 마련이다.

 

종교적 신심이 깊으신 분들은


해당 종교에 더욱 몰입하고

기도나 선행을 통해서


현재의 어려움을 이겨낼 힘을

얻고자 하고


그래도 답답해서 도무지

앞길을 종잡을 수 없을 때에는


종교적 지도자나

점술가, 풍수가, 철학관, 무당, 무속에

종사하는 분들을 찾아가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움을 요청하는데


여기서 사주명리와

종교적 믿음과 활동의 교호작용이 절묘하게 발생한다.

 

, 해당종교에서 터부시하는

선입관을 과감하게 깨고


진정 인생 컨설팅을 받는다는 입장과

겸허한 마음가짐으로


실력 있고 심성 바른 명리학인을 만나서


자신의 인생에 대한 정확한 흐름을 이해하고


과연 앞으로 언제쯤 이 어려움이 지나갈 것인지,


언제쯤 좋은 시기가 도래할 것인지,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내가 준비하고

실행해야 할 바는 무엇인지에 대한


조언을 새겨듣고 실천하면서


그래도 힘이 들고 괴로울 때는

종교의 가장 훌륭한 수단인

진실한 기도를 통해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갈 정신적 힘을 얻으라는 것이다.

 

청허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이


일부 승려나 스님들이

깊이 있는 공부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신


자들의 인생의 흐름을 짚어주고

작명을 해주고 개명을 하는 행위와


뜬구름 잡는 방식으로

신자들의 인생을 돕는다 치고 개입하는 것이다.


고도의 정신적 능력을 갖춘 법력 높은 스님이나


기도의 힘으로 일반인이 범접하지 못하는

수녀, 목사, 신부님들이 선한 삶을 유도하기 위해


해 주는 기도, 설교, 법문이라면

누구도 그 성스러운 행위를 폄하하지는 못하겠지만


어설픈 지식과 경험으로

인생컨설팅을 하는 것은 반드시 지양해야 마땅한 일이다.


기도 열심히 하라는 권유는

동서고금을 통해 충분히 권장할만한 일이다.

 

사주명리는 종교를 부정하지도 폄하하지도 않는다.


그가 종교인이던 아니던


분명하게 생년월일시를 가지고

태어난 한 인간인 것이며 어렵게,


어렵게 육체를 빌어

이 세상에 온 목적이 분명하게 있을 것인즉,


그 부분을 읽어주고 이끌어주는

명쾌한 인문학적 지침이다.


누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성정적인 부분의 토출이 너무나 다양하게 나타날 뿐.


(다음 편에서는 실제 상담을 통한 이런 저런 이야기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