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 참여재판 배심원의 소감 ]
한 달도 더 전에 법원에서 등기 하나가 왔었다.
평생 법규를 위반해 본 적도 없고
그럴만한 행동을 생각해 본 적도 없던
청허였기에 의아해서 뜯어보니
국민 참여재판의 배심원 선정대상자로
내가 선택되었고 지정한 날짜와 시간에
지정한 법원으로 출두하라는 내용이었는데
법에 대해 무지한 청허로서는
국민 참여재판이 어떤 것인지
또 배심원 선정대상자로 무작위로
선정되었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볼 여지도 없이
다소 딱딱한 문구의
‘ 특별한 사유 없이 불참하게 되면
과태료 등의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라는 말에
약간의 불편한 심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막상 그 날이 되어 해당 법정에 출두하자,
수많은 기자들과 언론 관련자들이
해당 법정 앞에 진을 치고 있는 것을 보고
‘야, 이거 보통 건이 아니로구나.’ 하는 생각에
주민증확인을 마치고 대기석에 앉아 있었다.
잠시 실무관의 설명이 이어지고
주임판사가 나와서 이런 저런 보충설명 및
선정방식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있고 난 후
약 60여명의 대상자들 가운데
운이 좋은 것이 나쁜 것인지
가늠하기 힘든 마음으로
세 번째로 내 번호가 불렸다.
총 7명의 배심원이 선정되는데
일차로 추첨으로 선정된 7명이
그대로 배심원이 되는 것이 아니고
해당 사건의 검찰 측과 변호인 측에서
일련의 질문과 배심원 후보자들의 답변을 통해
거부권이 행사되는 바람에 무려
네 차례나 배심원 후보들이 바뀌는
사상 초유의 장시간에 걸친 과정을 통해
총 7명의 배심원이 선정되었는데
청허는 처음 뽑힌 그대로 잔류한 상태였다.
7명의 배심원 중 최초로 호명된 사람들 중에서
청허와 다른 남자 한 분이 그대로였을 뿐
네 차례의 질의응답, 의견제시를 통해
열여덟 명의 배심원 후보자가 바뀔 정도로
사건 평결의 초창기부터
검찰 측과 변호인 측의 기 싸움도 팽팽했고
법정 내의 무게감이나 긴장감도
그 만큼 높았던 기억이다.
이윽고 평결의 진행절차에 따라
재판장과 두 명의 판사, 그리고 검찰 두 명,
변호인 두 명, 피고인, 법원 진행 요원들이
삼엄한 분위기에서 재판절차가 시작되었는데
그 날 청허가 생애처음으로
국민 참여재판의 배심원 역할을 맡게 된 사건은
작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총기 살인사건이었고,
처음 사건에 대한 개요설명을 들었을 때,
어깨와 가슴을 묵직하게 짓누르는 압박감은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무게였다.
청허가 솔직하게 고백해야 할 내용이 하나 있다면,
그동안 개인적으로 검찰이나 법원의 판사,
변호인들의 역할에 대한 일종의 폄하하는
생각이나 사고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국민 참여재판에서 무려
열 세 시간 이상을 생생한 현장 속에서
그들이 하는 역할과 책무 등을
직접 체험해 본 경험으로 단언하건대,
정말 머리가 좋아야 함은 물론이고
냉철한 상황판단과
피고자 참조 인들의 진술 속에 담긴
행간을 추리하고 명확하게 해석하는 능력,
그리고 검찰이나 변호인,
재판장 및 판사들이 서로 상대방을
진심으로 배려하고 이해하고
합리적인 수준에서 논쟁을 벌이는 모습은
청허가 가지고 있었던
약간의 부정적인 관점을 송두리 째 바꾸어 놓았다.
수 천 페이지에 달하는
조사 및 증거문건, 사진, 그리고
검찰이나 변호인들의 사건조사의
기초가 되는 일선 경찰관들의 촘촘한 수사능력은
우리가 접해 오던
미국 드라마 CSI 같은 것을 통해 접했던
그런 수준 이상임을 알게 되었다.
청허도 사주명리학문을 통해
한 인간이나 가족들의 선천적 사주구성과
대운의 흐름, 진로적성,
연운의 흐름과 각자가 지니고 있는
인간적, 사회적, 경제적 활동을 위한
장단점을 날카롭게 분석하는 성향이 강하지만,
한 사건을 다루는 수사관들, 공무원,
검찰, 변호인들의 조사능력은 일반인의
수준을 한참 뛰어넘는다고 본다.
사건의 동기에 비해 사고의 결과는
참으로 비극적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는데,
귀농한 한 노인이 이웃들과의
사소한 말다툼, 권리이해에 대한 아집,
신념 등의 괴리에서 발생한 어찌 보면
한 사람에게는 크겠지만
조금 큰 차원에서 보면 쉽게 넘어갈 수도 있었던 부분이
장유유서와 노인공경의 전통적 유교적
관점에서 볼 때는 상당한 의식의 변화와 가치관의
이전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었고,
또 비극적 사고결과와는 아주 무관한
피해자들의 억울하기 그지없는 안타까움의 이면에는
자칭 종교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무지막지한 행동과 자기중심적 사고가
바탕에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개탄스러운 사회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고였다.
우리 일반인들이 성직자라고
부르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을 믿고 따르는 신도들을 폭행하고
성폭행, 인권유린, 금품갈취의 경지를 넘어서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때려서 사망에 이르게 하고
의지하러 온 사람을 강제로
성추행하고 노리개로 삼는다거나
금전적인 면에서는
마치 수억 년을 굶은 아귀처럼
추악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현대의 종교의 단면이
이번 사건의 배후에 있다는 사실은
청허도 이 상세한 사건조사내용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스포츠계 지도자들에 대한
최근의 Me Too 운동도 그렇고
시인이나 작가, 교수 등
사회의 지식인들이 그동안 행해 온
울트라 갑 질 행태의 실상들이
실제 이번 사고에도 알게 모르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일부 악질 성직자 종교인들에
한정된 문제임은 틀림없고
대다수가 선량한 의식을 가지고
종교적 신념에 심신을 다 투사하고 있음을
청허도 인정하고 있으나
관리체계의 허술함이나
주입식 교육, 기간 채우기 식의
자격부여 시스템은 분명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행정적인 절차상에서
문서, 시험결과 등에만 치우치는
관리시스템도 문제가 분명하다.
총기란 것은 설사 파괴력이 약한
조류퇴치용 공기총조차도
지근거리에서는 인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데
어찌하여 심신의 안정성이 정확하게
보장되지 않은 노인에게 그런 허가가 날 수 있는지,
그리고 사건을 저지르기 전 숱하게 들렸을
사격연습의 총소리에
의례 그렇거니 하고 무심하게 넘겨 버렸을
마을 공동체의 무관심,
몇 차례 살인협박에 경찰이 출동해서
총기를 회수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가해자의 거센 항의에
사건 전 날 총기를 다시 내 주었던 경솔함도
이번 비극적 사건의 단초를 제공했을 것이며,
단순한 조류퇴치용이 아닌
멧돼지나 대형 유해동물 살상용 실탄이
버젓이 거래가 이루어졌던 점,
그리고 최초 사건이후 추가적인
초동대처 능력과 효용성의 문제를 볼 때
한 노인의 과대 망상적 피해의식과
우발적 행동이 사건의 전부인양,
그리고 일부 언론에서
무차별적으로 사고 때마다 시끄럽게 떠들다가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장되어 버리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와
기자 정신의 부족함 또한
이 번 사건의 간접적인 원인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가해자는 팔순이 다 된 인생을 살아오면서
그 힘들고 팍팍했던 50년대 후반에
해병대로 근무를 했고
최고의 정예부대인 UDT에도 지원할 정도로
강인한 정신력과 투철한 국가관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사회생활을 통해서도 지역사회에
굵직굵직한 선행과 기부를 했을 정도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나름대로
최선의 삶을 다해 살아왔던 흔적을 보여주었고,
나이가 들고 부인의 병간호에 지친 나머지
인생을 보다 조용한 시골에서
치료와 안정된 조건에서 보내고자
귀농한 평범한 사람이었으나,
사소한 물과 관련된 불편함이 시비가 되어
50이 되지 않은 젊은 승려와의
인간적 갈등, 무례하기 그지없는 폭언과 행패 등에서
심신이 녹아내리는 절망감을 느꼈고
수차례 경찰과 공무원들에게
민원도 넣고 진정도 넣었으나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해결책이 제시되고
실행되지 못하자,
한 승려에게서 시작된 분노가
전체 공무원, 경찰들에게까지 확대 확산되었고
위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직간접적인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점화를 일으켜
그런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그러나 검찰 측에서
제시한 일련의 조사 자료나
주민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해당 경찰관이나 공무원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가해자의
불편한 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들어주려 했던 흔적들이 명확했으며
가해자가 언급했던 일부 경찰들의
다소 미진한 소극적인 대응자세에도
약간의 문제점은 보였으나
사건을 확대하기 보다는
이웃 주민들끼리 무탈하게
잘 지내기를 바라는 차원에서
지나가듯이 했던 말들이
이 노인에게는 더없이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게 만드는
암울하고도 기댈 곳 없다는
처절한 고독감을 느끼게 했을 수 있다는
심리적인, 정황적인 개연성은 있을 수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위의 모든 참작 가능한 요인들을
모두 인정한다 하더라도
불특정 다수를 향한
개인의 분노의 폭발이 아무 죄 없이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고
모두의 가장이나 가족의 멤버였던
희생자들의 무의미한 죽음을 합리화시킬 수는 없고
그런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감안될 수 없는 끔찍한 범죄임을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백주 대낮에 총기를 들고 들어 온
범인에게 저항한번 해 볼 생각조차 못한 채
두 눈 뜨고 죽어간 희생자들의 억울함과
남겨진 가족들이 사건 이후에 겪어야 할 고통은
그 어떤 표현으로도 그 찢어지고
황망한 상처를 표현할 수도
어루만져 줄 수도 없는 것이다.
청허 개인적인 것이었는지
아니면 배심원 모두, 방청객,
검찰, 심지어
국선 변호인들과
이런 형사재판을 수도 없이 다루어 왔을
재판장이나 판사들도 동일한 감정을 느꼈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유가족들의 증언 및 발언 시간이
가장 힘들고 안타깝고 공분하고
아프고 처절했던 순간이었다.
남겨진 희생자들의
아내와 아들, 그리고 부모형제들의
그 아픔을 뉘라서 선 듯 쉬이 위로할 수 있을 것이며
감히 혜량조차 할 것인가?
아무리 범행동기를 이해하려고 해도
남겨진 참담한 결과는
그 어떤 사유로도 갈음할 수 없을 정도로
심중하고도 큰 것이다.
부디 고 희생자들의 명복과 남겨진 가족들의
마음에 작으나마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청허가 또 하나 느끼는 것은
청허세대나 그 이전 또는 이후 세대들이 받았던
애국애족의 국가관에 커다란 결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법정에서
자신의 발언 시간 내내
자신이 투철한 애국심과 젊었던 시절 당시에는
가장 힘들었던 부대 중의 하나였을 부대에서
겪었던 구타로 인한 신체적 장애,
이 사건을 통해 세상에 알리고자 했었던
(적어도 그가 옳다고 확실했었던)
공무원들의 업무태만에 대한
분노표출과 그의 해결방식은
일견 그럴싸하게 보이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총기를 사용해 아무런 면식도 없는
비무장 민간인인 공무원들을 살해하고
눈에 보였으면 더 사살하려고 했었다는
살해기도 및 의사는 정말이지
국가에 대한 애국심의 근본적 대상이
무엇인지를 어린 시절부터 바로
교육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국가의 근본은 누가 뭐래도
국가구성요소의 가장 기본적인 단계이자
최고의 대상인 국민인 것이다.
국가에 충성하기 위해 민간인을
무차별 살상해도 된다는 것은
과거 군사정권, 5공화국 까지 이어져 오던
반드시 고쳐지고 수정되고
바로 잡아야 할 잘못된 응용사례이다.
지금도 그 고통의 흔적이 남아있는
제주 4.3사건,
거창 양민 학살사건,
무장공비들의 양민 학살 사건,
광주 5.18 민주항쟁의 전말에서 나타나듯이
국가에 대한 주관적 사상의 주입보다는
국가의 근간이 바로 자신이자
주변의 이웃들이라는 사고 관에 대한
철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
청허는 세월 호 사고의 근본적인 인식에 대한
많은 시민들 간의 의식 간격도
이러한 측면에서 나온다고 굳게 믿는다.
국민을 받들어 모시는 것,
국가의 기본적 틀이 국민에게서 발생하는 만큼
진정 국민을 중심으로 모든 가치관,
기준, 지침, 헌법이든 법률이든 적용의
우선적 요소요, 가장 중요한 항목으로
설정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애국심의 발로요,
애국적 행동과 정신세계의 가장 우선적인
Priority가 되어야 하는 것이며
그 국민이 바로 자신이요,
나의 가족이요,
이웃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이 사회가 조금은 더
내 이웃과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기부와 선행의 대상이 되고
굳건한 나라의 운영과 존립의 목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을 개나 돼지로 인식하는
일부 잘못된 위정자들이
어떻게 이 대한민국을 위협해왔는지에 대한
정확한 판단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증거조사와 증인들의 증언,
검찰과 변호인들의 심문과 개별 변론,
그리고 재판장의 첨언과 배심원들을
배려하는 세심한 분위기 속에 무려
열 세 시간이라는 시간이
그토록 빨리 지나갈 수 있었던 것도
그만큼 청허는 충격과 냉정함 속에서
부디 이사건의 형량구형에서
사사로운 감정을 배제하고
남겨질 수 있는 후유증을 최소화 하며
모방범죄의 출현, 인명경시사상의 확산,
유가족들의 슬픈 마음을 아우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가를
한 치의 가벼움 없이 판단하고자 애썼다.
청허가 이 사건의 판결이 향후
우리 사회의 사회 정신적 가치관의 형성에
어떤 영향을 지대하게 미칠 수도 있고
그 영향은 긍정적인 것 일수도
부정적인 것 일수도 있음을 통감한다.
검사도 변호인도 재판을 맡은
재판장과 판사들, 그리고 실무 관들과 배심원
모두 이러한 중압감은
법정내의 분위기를 팽팽한
긴장감으로 몰아넣기 충분한 것이었고
그래서 그 오랜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듯한 느낌을 받은 것은
비단 청허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무기징역으로 결정된 평결 뒤에
남겨진 밤늦은 시간의 쌀쌀한 날씨에
유족들의 허전한 마음,
사건이후 6개월 가까운 시간동안
관련자들이 겪었을 고초와 노고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삶과 죽음의 근원적 질문 이전에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또 어떤 배려 심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해
답 없는 궁금증만 가득한 하루였다.
우리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아가고
끝내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당당하게 맞이할 것인가?
그리고 그 분명한 끝이 있는
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타인들에게
이웃들에게
가족들에게
그리고 노인, 청소년들에게
어떤 관심을 기울이고 배려하고
동시에 나 자신의 삶을 보다
가치 있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타인의 삶의 균형을 잡아주고
그렇게 스스로 움직이고 살아갈 수 있도록
조언자 역할을 하는 청허의 삶의 방식에
조금은 더 따뜻하고 배려하는
생의 방식을 적용하여야 한다는
각오를 다시금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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