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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적-부작의 인류학적 기원 ]
인류가 처음 불을 활용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첨단 과학문명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이르기까지
아직 완전하게 점령하지 못했거나
미비한 부분이 있다면
아마도 인간의 정신적 세계에 대한 부분,
자연의 흐름, 개개인의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정확한 예지, 우주 심연의 신비한 세계와
온 우주를 구성하고 운행하는 원리에 대한
완벽한 표준모델의 정립,
그리고 지구에만 한정한다면 아직도
땅 속 깊은 곳에는 기술적 한계나
필요성의 정도에 따라 많은 미지의 영역이 있다.
아마도 초월지성 인공지능의 발달이나
양자컴퓨터의 상용화가 이루어진다면
그동안 인간의 힘으로 알지 못했던
이런 영역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와 원리를 활용한
신세계, 신인류의 출현은 그야말로 시간의 문제일 것이다.
인간이 천렵이나 수렵으로 먹고 사는
생계의 전투적 문화에서
농경사회를 구성하고 한 곳에 정착하기
훨씬 전부터 지금도 남아 있는
고대 동굴의 벽화나 그림들을 보노라면
벽화나 그림을 통해서 우리의 선조들이
갈망했던 의식, 풍요로움에 대한 기대 등이
여실히 드러난다.
원시인류들이 생활의 터전으로 삼았던
전 세계 곳곳의 동굴에는
특이한 형상의 그림들이 자주 발견되는데
모두가 똑 같은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나타나는데
바로 자신들의 먹을거리에 대한
사냥활동의 모습이나 먹이로 삼았을 것이
틀림없는 대상물의 그림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동굴벽화, 고래, 사슴, 뼈 등)
수천 년 이상이 지난 지금 그런
벽화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과연 원시인류들이 자신들이
사냥했던 동물들을 기념해서 그런
고상(?)한 그림을 애써 동굴 벽에 남기려 했을까?
청허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아마도 그들은 그들의 생명활동과 직결된
사냥, 천렵, 수렵활동이
그들이 그린 그림과 같이 늘 잘 되고
실패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린 것은 아닐까?
인간이면 누구나 자신과 자기가족의
안녕을 바라고 갈구하는 본능을 지니게 마련이고,
비록 자신은 최선을 다했지만
그에 합당한 결과는 늘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서
하늘에 소원을 빌고,
태양에 절을 하고
북두칠성, 남두육성에
정화수를 떠 놓고 안녕을 기원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발생적 자기본위의
바람인 것이고 당연한 것이다.
고대 동굴벽화에서 나타나는
동물들의 사냥그림은 그런 측면에서
당시 환경에서 단백질을 섭취하고
자신과 가족을 배불리 먹이기 위한
모두의 본능적 기원적 소망이었을 것이다.
인간이 문자를 활용하는 시점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면
최초의 문자는 상형문자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관점인데
모든 사물의 형상을 그림형태로 그리다가
그 형상이 나타내는 곡선과 직선의 결합으로
상징적인 모습을 그려낸 것이 문자의 시초이고 보면
상형문자는 그 글자 내부에 글자 자체의 의미는 물론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것이다.
상형문자와 한글의 모태가 되었다고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가림토 문자의 형상을 보면
실로 고개가 끄덕여 지는 면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지금 한국과 중국 일본 등지에서
개개인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가장 큰 표현수단이
바로 부적(符籍)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각각의 부적이 지니고 있는 형상을 보면
어떤 글자를 포함하고 있는 것도 있고
사람모양, 동그라미 모양, 직선과 형상 등을
다양하게 포함하고 있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이런 측면에서 보면 부적이라는 것은
개인과 가족 또는 사회와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측면에서 어떤 추상적인 의미와
형상적인 이미지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으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것이며
인간의 본능적 개념을 간접적인 형태로
나타낸 기원의 심리학적 도구라고도 볼 수 있겠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의 인류는
자연의 기후나 주변 환경의 변화에
피동적으로 적응해야 하는 시기였고
이러한 절대적인 자연의 변화가 가지는
막강한 힘을 주변의 도구나
사냥한 동물의 뼈 등으로
표현하고 제어하고 자신들이 바라고자 하는 방향으로
환경의 변화가 일어나게끔 기원하는 마음으로
부적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보면
부작(符作)의 경우는 어떠할까?
크게 보면 스톤헤지나 고인돌과 같은 무덤 또는
관측의 용도로 생각되는 거대한 구조물에서부터
동물 이빨이나 뼈로 만든 목걸이,
American 인디언들이 머리에 쓰고 다녔던
새들의 깃털이나 지팡이,
얼굴에 그리는 문양에서부터
종교인들이 믿음의 상징적 도구로 가지고 다니는
염주, 팔찌, 묵주, 십자가 등도
어찌 보면 절대적인 힘을 지닌 존재의 힘을
간접적인 형태로 내가 가지고자 하는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며
사랑의 증표로 서로가 약속의 의미로 전달하는
결혼식의 예물도 일종의 성스러운 사랑이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바라는 일종의 부작이 될 수 있으며
서양 건축물에 달려있는 Gargoyle이나
처마 끝의 도깨비 귀면얼굴기와,
해인사나 통도사와 같은 거대 사찰의
입구에 지키고 서 있는 4대 천왕,
각종 건축물의 앞뒤에 포진하고 있는
해태상이나 신장들의 동상도 그러할 것이며
대웅전이나 통일대불의 주변이나
거대한 왕릉의 주변에 세워져 있는 12지신 상,
육정신, 육갑신 등의 성물들도 성스러운 장소나 힘을
삿된 힘으로부터 지키고자 하는 부작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고대 로마시대나 몽골의 전사들이
특정 문양이 그려진 메달을 차고 다닌다거나
삼국시대, 중국의 한조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등 각국의 역사적 사실에도
이러한 개인과 왕조,
또는 가족과 국가의 안위를 기리고 바라는
각종 형태의 부작들이 꾸준하게
우리 백성들의 삶 속에 녹아 들어와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처용이라는
신라시대의 기인에 대한 전설에서 나온 것이
바로 자신의 아내를 희롱한 역신을
너그러이 용서한 처용의 관대함에 감복한 역신이
처용의 얼굴이 그려진 곳에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겠다고 하는
전설에서 기인한 처용상이다.
처용의 얼굴을 그림의 형태로 지닌 것은
일종의 부적의 기원이나 실생활에
녹아들어간 처방이라고 볼 수 있으며
마을마다 입구에 세워진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은 부적의 효능을 형상화 한
일종의 부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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