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재 명 대표를 생각 한다
얼마 전 더불어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부산 가덕도에서 60대 후반의 남성에게서 흉기로 피습을 당했다. 하나의 테러 행위를 당한 것인데 이후 밝혀진 바로는 동맥을 아슬아슬하게 피해서 자칫 현장에서 사망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하고도 치명적인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작년에 일본의 아베 전 총리는 총기에 의한 피습을 받고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는데 각자 개인의 자유인 정치나 사상에 대한 이념과 신념을 떠나서 나와 다르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목숨을 해하는 행위는 그 이유를 막론하고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엄연히 잘못된 행위에 대한 법이 존재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수호신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한동안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자제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던 만큼 오늘 이야기도 정치적 이슈나 논란에 대한 청허의 생각보다는 이 재 명 더불어 민주당 대표에 대한 인간적 관점에서 개인적인 관점에 국한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한 상태에서 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사주명리학적 관점도 최대한 배제하겠지만 그의 내면에 있는 철학이나 기본적 인간됨됨이에 대한 것은 아주 조금 그의 사주구성을 들여다보고 가능한 객관적인 관점에서 서술해보고자 한다.
부디 정치, 이념, 사상적인 관점에서 곡해하지 말고 청허의 생각을 이해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이 재 명 대표와 청허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지금 60대 초반인데 지금 70대 80대의 인생선배님들에 비하면 그래도 행복한 시기를 보냈다고 할 수 있다. 어린 시절에는 1.21 무장공비 청와대 습격사건도 있었고,
삼척 울진 대규모 무장공비 침투사건과
10.26 박 정희 대통령 서거, 12.12 군사반란,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을 거치면서 대학생활을 보냈고 6.29 선언과정에서 격렬한 시위운동도 직접 해 봤었고 비교적 안정된 사회생활을 겪는 와중에 단군 이래 최대의 경제위기였던 IMF 사태도 삶의 현장에서 직격탄이 터지는 것을 체험했으며 그 외에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굵직한 사건 사고(삼풍백화점 매몰, 성수대교 사건, 서해 페리 호 참사, 대구 지하철 참사 등등)를 직접 몸으로 부대끼면서 보낸 세대이다.
물론 그 이전에 태어나신 인생선배님들에 비하면 6.25 동란이나 4.19혁명 등의 더 큰 사건사고를 보지는 못했지만 90년대 이후 태어난 젊은 세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많은 풍파를 겪었다고 볼 수 있다.
청허도 당시에 ‘국민 학교’라도 불렀던 시절에 그다지 넉넉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가족에 대한 부양 책임감이 남달리 강하고 생활력도 야무지셨던 아버님 덕분에 밥을 굶거나 어린 나이에 돈 벌러 활동했던 고달픔은 없었지만 이 재 명 대표의 경우 ‘소년공’으로 직접 경제활동을 하면서 동년배 또래들이 누렸던 아이, 소년으로서의 낭만적(?) 여유는 전혀 누리지 못했다.
그의 어린 시절의 사진을 보면 동년배로서 그의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힘들었을까를 진심으로 공감하게 된다. 청허의 동창들의 경우에도 늘 배고프고 얼굴에는 마른버짐이 피고 머리는 까까머리에 기계 충으로 인한 상처 같은 흔적들이 즐비한 친구들이 꽤 많았었고 늘 수돗가에서 점심대신에 수돗물로 배를 채우던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당시에 이 재 명 대표처럼 직접 본인이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면서 그로 인한 후유증으로 팔이 굽어지는 최악의 경우를 경험하는 친구들은 매우 드물었다. 아무리 대한민국이 힘든 시기였다 하더라도 이 재 명 대표의 초년 시절은 대다수 동년배들에 비해 훨씬 힘들고 팍팍한 삶의 현장에서 질척거리는 현실을 온 몸으로 메워야 했던 고달픔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산업혁명시대에 증기기관이 발명되면서 대규모 기계적 생산이 이루어질 때 영국이나 미국, 유럽의 가난한 서민층의 아이들은 10살이 되기도 전에 방적공장에서 하루 14시간 이상을 일하는 것이 보편적 모습이었는데 대한민국의 60년대 70년대 초의 모습이 비록 일부에 해당되지만 19세기 서양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조금 시기를 건너뛰기는 하지만 청허가 88년 삼성에 입사하고 첫 배치를 받은 ㈜제일모직 대구사업장에는 중학교를 갓 졸업한 앳되고 어린 소녀 공들이 생산현장의 중심이었다.
그나마 당시 초일류 기업이었기에 중학교 졸업을 마친 여사원들에 대한 교육을 위해 회사 내에 일반 고등학교에 준하는 교육과정이 마련되어 있어서 본인만 준비하면 회사에서 경제적인 활동도 하고 고등학교 과정을 마칠 수 있었던 배려가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하루 12시간 이상을 근무하고 다시 학교로 가서 졸린 눈, 피곤에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책상에서 수업을 받아야 했던 당시 청허의 여동생들의 고단한 삶을 100% 이해하지는 못한다. 남들 몰래 회사 내에 봄이면 차고 넘치던 살구를 모아서 청허가 담당하던 부서의 여사원들에게 나누어주면 그 찌들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환한 미소로 즐거워하는 모습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지금은 그 분들 모두 6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삶을 추억하고 그리면서 나름대로 최선의 인생을 누리고 계시리라 믿는다.
그러고 보면 이 재 명 대표의 어린 시절은 당시 또래 보다 훨씬 더 열악한 가정 및 경제적 환경에서 상상하기 힘든 어려움을 겪어야 했을 것으로 청허는 짐작한다. 자칫 그대로 무너지기 쉬운 자신의 삶에 대한 도전의 모습과 약자들을 각별하게 생각하는 그의 근본적 인간성이 이 어려운 시기에 굳건하게 형성되었으리라는 것은 전혀 억지가 아닐 것이다.
그런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어지간하면 전부 진학하는 중학교 진학이나 고등학교 진학도 하지 못해서 검정고시로 겨우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가지게 되었고 같은 또래 보다 1년 늦게 대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상세한 그의 성장기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중학교도 검정고시로 자격을 갖추었다는 것은 청허나 동년배 또래들이 결코 겪거나 체험하지 못했던 험난한 과정을 보냈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거의 강인한 자신의 일간 역량을 엿볼 수 있다. 여기서 그의 사주구성을 잠깐 살펴보면 乙酉(을유)일생에 印綬格(인수격)에 해당하고 생시를 다르게 보더라도 그의 일간은 印綬(인수)의 도움을 받아서 일간이 최소한 신강한 편에 속한다.
乙木日生(을목일생)이라서 신약한 사주로 본다면 사주공부를 더 깊이 하시기를 권한다. 乙木日生(을목일생)이니 남다른 측은지심과 인수격의 면밀함과 자상함이 결합되어 고집스러움이 남다르게 나타난다. 하지만 그의 초년 시절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데 이러한 身强(신강)한 그의 사주구성이 있었기에 가능하고 유달리 약자들 편에서 인권변호사의 길을 선택한 것 또한 이런 영향이 있다고 본다.
마치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걸어 오셨던 길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브라질의 대통령으로 두 번째 역임중인 룰라 대통령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이 재 명 대표의 일주는 乙酉(을유)가 되는데 初期生(초기생)이므로 일지의 酉(유)가 庚(경)으로 나타나니 偏官(편관)이 아니라 正官(정관)의 성향을 깔고 있으니 지금 정부나 검찰에서 탈탈 털어도 별 흔적이 나지 않은 부정부패와는 애시 당초 거리가 멀다.
청허가 거주하는 곳은 일명 고담시라고 부르는 대구이다. 언제부터 저항과 혁신의 출발지였고 전통 야당의 개념이 강했던 대구가 경북지역과 함께 극우적 보수의 텃밭이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데 청허의 동창이나 동년배의 모임이나 자리에 나가면 이 재 명 대표를 평가하는데 마치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보다도 못한 표현으로 도배가 되는 현실이 청허는 못내 서글프다 못해 자괴감마저 든다.
누구는 부모를 잘 만나서 호의호식하면서 늘 권력과 부의 蓄財(축재)의 중심에서 절대적 기득권자의 인생을 살아온 것에 비해 이 재 명 대표는 어찌 보면 가장 서민적인 환경에서도 제일 바닥에 해당하는 척박한 소년, 청년 시절을 보낸 사람인데 도대체 이 재 명 대표의 무엇이 그런 평가를 받게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재미있는 표현이지만 삼성그룹 이 재 용 회장이 구속되고 법원에 출두했을 때 ‘이재용 회장 불쌍해서 어떻게 하느냐’, ‘이재용 회장이 구속되면 우리나라 망한다.’라는 의식이 가장 강한 부류가 다수의 서민층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당장 하루 장사에 목을 매는 분들이 자신들보다 수억 배 더 많은 재산과 지원세력과 정치적 옹호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불쌍하게 여긴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청허가 이재용 회장이 당장 구속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대한민국 최고 회사의 수장으로써 중요한 전략적 결정과 활동을 해야 하는 중차대한 사명을 지니고 있기에 오히려 제대로 된 법적 재판을 통해 치를 것은 치르고 선대 두 회장이 남겨 놓은 탄탄한 시스템적 자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대한민국의 경제발전과 토대를 구축해야 할 시대적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럴수록 대외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항에 대해 깨끗한 정리과정을 거쳐야 제대로 된 떳떳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물론 이 재 명 대표도 과거 행적에서 충분하게 비난받을만한 행동을 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형수와의 통화 과정에서의 욕설, 여배우와의 스캔들에서도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점은 청허도 분명하게 털고 정리할 필요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성남시장으로서 경기도지사로서 그가 보여준 탁월한 행정능력이 이상한 궤변적 논리에 의해 스스로 얽히고 엮인 부분에 대해서는 청허는 단언하건대 대한민국의 썩어빠져서 세상 곳곳에 악취를 풍겨내는 주요 메이저 언론의 잘못된 언론관과 기득권 세력의 프레임에 갇혀 버린 모습으로 해석한다.
또한 더불어 민주당에 대한 自淨的(자정적) 혁신에 실패한 것에 따른 후유증이며 문재인 정권 때 대다수 국민들이 염원했던 언론, 검찰 기득권 세력에 대한 정리를 못함으로써 생긴 여파의 뒤바람을 고스란히 맞고 있는 것이다.
누가 이 재 명 대표를 욕하고 폄하하는가?
개인적인 원한을 가지고 그러하다면 차라리 인간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대구 경북지역의 장년세대들이 그런 욕을 하고 이재명 대표를 마치 지금 당장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는 것은 철저한 왜곡된 중앙언론기관의 조작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어리석음에서 나온 것이며 그렇게 수 많은 압수수색을 통해서도 단 하나도 확증적인 증거를 찾아내지 못한 채 보수언론과 결탁하여 양성하고 있는 가짜 뉴스에 휘둘린 것이다.
이재명 대표를 폄훼하려면 그의 행정기관 수장으로써 실책이나 잘못된 행위를 철저하게 근거하여 언급해야 한다. 그리고 아직 가장 독립적으로 이 사안들에 대한 법적인 유권해석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주변의 가식적 언론플레이에 놀아나는 것은 스스로의 어리석음과 편협 된 사고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재명 대표에게 느끼는 감정은 사람으로서, 어린 시절 그렇게 어려운 삶을 스스로 이겨내어 당당히 한 야당의 대표로서, 한 때 현직 대통령과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근접한 접전을 펼쳤던 인간적 강인함에 대한 존경과 동시대를 살아왔던 사람으로서 그 시절을 그렇게 이겨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몸으로 체험한 동년배로써 느끼는 동질감이다.
앞으로도 그의 전도에 펼쳐질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들에 대해 그가 과연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에 대한 걱정도 있지만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부러지지 않는 그의 질긴 생명력과 백성, 서민을 걱정하는 그의 애민 사상이 빛을 볼 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지지자들을 믿고 헤쳐 나가기를 응원한다.
부디 이 글을 그를 찬양하는 글로 보지 말고 어려운 역경을 겪고 이겨낸 대한민국의 한사람을, 한 정치인을 투명하게 들여다보는 계기로 삼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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