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color-gray post-type-text paging-view-more">
본문 바로가기

> 마음건강

반야성지 순례기(반야봉,묘향대)

 

 

월간 모던포엠 6월호에 실린 저의 기고글 " 테마가 있는 기행수필"의 반야성지 순례기입니다.

단 이해를 돕기 위해 사진을 첨부했습니다..

 

 

[ 반야성지 妙香臺 순례 ]

 

어린이 날이다. 아들 녀석은 곧 군 제대를 앞두고 있고 딸아이는

올해 대학에 들어가열심히 학교생활에 적응하고 있으니 어린이 날이라고

별 감흥이 없다.

 

어머님도 서울 누나 집에 잠시 가 계시고 해서 며칠 전부터 집사람과 함께

남한에서 가장 높은 고도에 위치하고 있는 般若峰 妙香臺를 가기 위해

때마침 있는 단골 산악회에 예약도 해 두었었다.

 

하지만 산악회의 산행코스와 내가 가야하는 코스가 사뭇 다르고

이전의 코스보다 훨씬 힘들고 가파르며 사고의  위험성이 매우 높은 코스라서

집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혼자 가겠노라고 했다.

결국 산행이 끝난 시점에서 이 때 내린 결정은 아주 현명했던 것으로 드러난다.

 

당일 아침, 산악회 버스는 일부 지각한 산님들 덕분에 예상시간보다 30분이나

늦게 산행 들머리인 性三峙 에 도착했고 다행히 날씨는 쾌청하여 지리산 특유의

조망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들뜬다.

 

산악회의 공식 산행코스는 性三峙-老姑壇-돼지평전-임걸령-노루목-(般若峰)-

三道峰-화개재-뱀사골 계곡 경유 반선까지로 풀코스를 내달릴 경우 총 거리는

22킬로가 되며 평범한 사람들이 8시간 이상을 쉬지 않고 헉헉거릴 정도로

걸어야 가능한 코스지만 내가 오늘 가야 할 코스는 般若峰에서

妙香臺-이끼계곡-이끼폭포가 포함되어 있어 거리는 2킬로 정도 짧지만

난이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으며 가장 큰 걱정거리는 길이 비법정

탐방로에 산행객들이 거의 없어 길 찾기가 매우 어렵고, 가능성은 낮지만

반달곰 성체와 조우했을 경우 안전상의 위험이 가장 큰 산행코스이다.

 

들머리인 성삼재(性三峙)는 과거 고조선과 함께 한강이남지역을 통치하고 있던

진한,변한,마한국의 마한에서 세 명의 성씨가 서로 다른 장수가 지키던 곳이라

그렇게 불려지는 곳으로 탁 트인 서북방향의 조망과 날씨가 좋으면 덕유산

천태산등의 국내 유명산들을 볼 수 있는 전망대이다.

 

성삼재에서 완만한 경사 길로 한 40여분 땀을 쏟아 내면 노고단(老姑壇)에

도착하는데,높이는 1,507미터로 지리산 3대 봉우리의 하나로 치며 정상주위는

약 35만평의 광활한 초원에 신라시대 화랑들이 무예를 연마하기도 했고 또

특별한 날은 노고(할미,또는 서술성모라 칭하는 여신급)께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 있는 곳이다.

 

 

이 곳에서 바라보는 주변경관은 성삼재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빼어나다.

동북방향으로는 지리의 최고봉 천왕봉이 희미하게 조망되고 조금 더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지리산 2대 봉우리인 般若峰이 바로 눈앞에서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북서방향에는 지리산의 많은 복을 아우르고 있다는 만복대와 고리봉,정령치가 자리잡

서남쪽에는 백운산이 마치 신하가 왕을 시립하듯이 둘러싸고 있다.

 

 

노고단 안부에서 반야봉 방향으로 발을 내려서면 돼지평전까지는 숲 길이 계속된다.

아직 이른 봄이라 숲 속의 나무들이 새잎을 내 놓지 않아 조금은 황량한 기분이 들지

바위로 이루어진 너덜 길과 흙으로 덮여진 길이 적당한 조화로움으로 발바닥을 두들겨 준다.

 

 

걸어가는 내내 숫 개미들이 날아오르며 나를 마치 여왕개미인양 달라들어서 어지러이

앞을 휘젓고 땅과 숲은 아직 겨울내음이 가득한데 햇볕은 오뉴월처럼 따갑고

건조하게 내리쬔다.

 

그래도 저 아래 계곡에서 쓸려 올라오는 선선한 계곡바람이 더운 느낌을 날려 버리고

어린이날이라서 그런지 오가는 사람들이 예상외로 적어서 호젓한 맛까지 더한다.

 

같이 온 일행들과 다른 코스로 빠지기 때문에 좀 속도를 냈더니 돼지평전에 와서는

숨이 제법 차 오른다.

 

이 곳 돼지평전은 제법 넓은 이 지역에 만개해 있는 원추리 뿌리를 먹기 위해 멧돼지들이

자주 출몰한다 해서 이름 붙여졌는데 사실 수 십번 이 곳을 지나면서 산돼지는 보지

못했지만 가끔씩 원추리 군락지 주변에 땅이 파헤쳐져 있는 것을 보면 분명 그 녀석들이

이 근처에서 살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이 곳의 최대장점은 여기에 오면 어느 정도 땀이 주루룩 흐를 시점인데 사시사철 시원

바람이 몰아치기 때문에 풍욕(風浴)을 즐기기 그만이다.

돈 주고 산 선풍기나 에어컨 바람에 감히 비할 수 없는 자연스러움, 시원함, 심지어

통쾌함까지 선물로 가득 안겨 주는 우리 인생의 구세주 같은 바람이다.

 

내게 기회가 주어졌다면 낙풍령(樂風嶺.즐거운 바람이 부는 골짜기)이라 이름 지었을 것이다.

 

다시 숲속방향으로 진행하면 지리산 하면 누구나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름중의 하나인

피아골 삼거리가 나온다.

 

 

6.25동란 당시 미처 북으로 후퇴하지 못한 북한군들과 여수순천 반란군들이

조직적인 빨치산 활동을 하던 무대, 바로 그 곳으로 향하는 갈림길이다.

 

이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피아골이 나오는데 옛날 이 일대에 피밭[稷田]이 많아

피밭골’이라는 이름이 생겼고 이것이 변해 피아골이 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한말(韓末) 격동기 ·여순반란사건 ·6 ·25전쟁 등 싸움이 벌어질 때마다 많은

사람이 이 곳에서 이유도 모르고 왜 그리 되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숨져 갔던 곳이고

휴전직후에 나온 이강천 감독의 영화에서 전쟁이 끝났는데도 이 사실을 모르고 계속

빨치산 게릴라 활동을 하던 사람들을 다룬 영화제목이기도 하다.

 

실제로 1963년에 체포된 마지막 빨치산으로 유명한 정순덕 여사는 이념,사상에

대한 믿음이나 맹신보다는 그저 체포될 때까지 오직 순박한 농사꾼이었던

남편(1952년 사살됨)을 따라 남편과 함께 있고 싶어서 그 악산 준령을 마다 않고

다녔을 뿐이었다.

 

이 곳을 지날 때 마다 그 당시 아픔의 기운이 민감한 산행객의 가슴을

억누르고 갑갑하고 안타깝게 한다.

 

피아골 삼거리에서 잠시 숨을 몰아쉬고 다시 내닫다 보면 금새 또 다른 조그만

쉼터가 나타나는데 이 곳이 바로 임걸령(林傑嶺)으로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당시 이 곳을 무대로 임걸 또는 임걸년이라는 도적의 우두머리가 산적행세를

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당시 왜군에 의해 온 나라가 초토화되고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는데 조금은

의아한 사실이지만 지금이라도 그런 산적들이 나타나서 커다란 刀를

휘두른다면 꽤나 난처할 것 같다.

 

이 곳의 최대장점은 사시사철 철·철·콸·콸 쏟아져 나오는 시원한 샘물이다.

 

 

국립공원에서 그리 했는지 가끔씩 수질시험결과를 공지해 놓고 있는데,

대장균이 많아서 식음수로 부적합 판정이 나기도 하지만 이 곳을 지나치는

산객들이 단순히 식중독 걱정 때문에 이 맛있고 달며 시원하기가 빙하

녹은 것 같은 이 샘물을 마다 할 리 없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지리산의 최대장점이 주 능선상에 꼭 필요할 때마다

자리잡고 있는 샘터들이다.

 

노고단,임걸령,연하천,벽소령,선비샘,세석평전,장터목,법계사등 그 맛과

시원함의 우열을 가리기 힘든 천하명수가 거의 두어 시간 코스마다 있어

목마른 사람들의 갈증은 물론이고 잠시 쉬면서 격렬했던

몸과 마음을 정리할 시간과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네 인생에서도 가끔씩 치열함과 번잡함을 놓고 그냥 몸과 마음이 원하는

만큼 쉴 수 있는 여유와 공간이 필요하다.

 

또 그렇게 여유와 공간이 주어졌을 때 비로소 새로운 힘을 얻고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신선한 도전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산행자체가 충분히 그런 역할을 하고 있지만 개별적인 취미나 여가생활이

그래서 더욱 의미있고 중요한 인생의 도우미가 되는 것이다.

 

임걸령에서 다음 쉼터인 노루목까지는 계속 오르막 코스다.

욕심만 앞서서 마구 치달리다 보면 체력은 쉬이 바닥나고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것 자체가 곤욕스러울 수 기 때문에 장거리 산행은 그저 자기 몸을

알고 주변의 풍광을 음미하면서 자기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지혜로운 처신임을 인생의 지침과 너무나도 유사한 교훈을 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노루목에서는 노고단에서 이 곳까지의 걸어 온 능선을 바라보면서 잠시

쉴 수 있는 명당이다.

 

 

바위에 걸터앉아서 지나 온 길을 바라보는 맛은 돈이나 권력으로서 얻을 수

없는 실제로 그렇게 실천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 아니던가.

 

이 곳 노루목은 국내의 어지간한 산보다 훨씬 더 높은 1,320미터의 고갯마루이다.

노루목이라는 말 뜻은 노루가 다니는 길 또는 갑자기 노루나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좁아지는 길이라는 뜻인데 비교적 넓게 펼쳐져 있던 길이 이 노루목을

지나면서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의 폭으로 좁아진

길이 三道峰까지 이어진다.

 

이 노루목에서 좌회전을 하면 지리산 어느 장소에서도 볼 수 있는

般若峰에 올라가게 된다.

 

반야봉으로 가는 길은 경사도 매우 가파르고 또 한여름에는 뙤약볕이 계속

내리쬐는 코스라 많은 사람들이 마음만 낼 뿐 그냥 지나치게 되는데

천왕봉,노고단과 함께 지리산 3대 영봉중의 하나를 그냥 건너뛴다는 것은

두고 두고 후회하게 될 일이다.

 

노루목에서 김밥과 林傑嶺 샘물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바로 치고 오른다.

 

성삼재에서 노루목까지의 거리가 7킬로가 넘는데 출발한지 1시간 30분만에 내달렸다.

그만큼 오늘 일정이 빡빡하다. 느긋하게 담배도 한 대 즐기고 싶지만

이 곳은 국립공원, 그것도 제 1호임을 감안하고 지리산을 어머니처럼

편하게 느끼고 시간 날 때마다 찾는 智異예찬론자인 내가 그런 행동을

할 수는 없고 그냥 올라간다.

 

비상시에는 비박터로 써도 좋을 만한 바위 굴과 철 계단을 지나고 나면

돌길이 나오는데 이 돌길에서 般若峰은 고개만 돌아서면 되는 지척의 거리에 있다.

인생에서도 그런 대척점을 알 수 있다면 수 많은 사람들의 인생살이가 조금은

덜 팍팍할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앞서 그런 경험을 한 선배들이나 선생님,성현들의 말씀을

간접체험으로 받아들이고 내 것으로 체화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마침내 반야봉. 절대적 진리를 뜻하는 반야의 최고봉이니 새삼스레 진리

운운할 것도 그럴 필요도 없어 보인다.

 

반야봉의 지명유래는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고 있던 반야가 지리산의

산신이면서 여신인 마고 할미와 결혼하여 天王峰에서 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어떤 영험한 스님이 뱀사골에 있는 이무기를 불도와 합장으로

쳐부수고 절의 안녕을 가져왔다는 의미로 般若心經에서 이름을 따 반야봉이라고

지었다는 설이 있다.

천왕봉의 마고 할미와 관련된 전설에 따르면 천신의 딸인 마고할미는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고 있던 반야를 만나서 결혼한 뒤 천왕봉에 살면서

슬하에 여덟 명의 딸을 두었는데, 그 뒤 반야가 더 많은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처와 딸들을 뒤로 하고 반야봉으로 들어갔다.

마고할미는 백발이 되도록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남편 반야를 기다리며

나무껍질을 벗겨서 남편의 옷을 지었다.

 

그리고 딸들을 한 명씩 전국 팔도로 내려 보내고 홀로 남편을 기다리다

나중에 지쳐 남편을 위해 만들었던 옷을 갈기갈기 찢어 버린 뒤에 숨을 거두고 만다.

 

이때 갈기갈기 찢겨진 옷은 바람에 날려가서 반야봉에서 풍란이 되었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은 반야가 불도를 닦던 봉우리를 반야봉으로 불렀으며,

그의 딸들은 팔도 무당의 시조가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후 사람들은 반야봉 주변에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는 것은 하늘이

저승에서나마 반야와 마고 할미가 서로 상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전하는데 자주 지리산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의 얘기나 나의 경험으로도

반야봉은 맑은 날에도 정상부는 구름에 옅게 드리워져 있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실제 반야봉의 높이 1,732미터는 지리산에서 두 번째가 아니라

다섯 번째에 속하지만 그 압도적인 존재감과 상징성으로 보면

천왕봉에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지리10대절경중에 가장 압도적으로 꼽히는 것이

천왕일출과 반야낙조이다.

 

                                  < 참조사항 : 블로그에서 퍼 온 사진입니다..>

 

그래서 천왕봉이 남성적이고 陽적이라면

반야봉은 여성적이며 陰적이기도 하다.

 

지리산 10대절경은 천왕일출(天王日出) 노고운해(老姑雲海)

반야낙조(盤若落照)벽소명월(碧宵明月) 연하선경(烟霞仙景)

불일현폭(佛日顯瀑) 피아단풍(稷田丹楓)세석철쭉(細石철쭉)

칠선계곡(七仙溪谷) 섬진청류(蟾津淸流)를 꼽고 사실 어느 것

나 우열을 가리긴 어렵지만 개인적으로는 반야낙조를 최고로 꼽는다.

 

오죽하면 너무나 그 낙조가 아름다워 눈물을 흘리는 사람까지 나올까.

자연에서 느끼는 감동과 그 서정적 효과는 그 어떤 물리적 현학적 가식적

일시적인 플라시보 효과와는 차원이 다르다.

 

자연에서 느끼는 전율적 감동은 일종의 마약처럼 언제나 그 감동을 그리워하는

뭇 사람들을 하염없이 끌어 당긴다.

 

반야봉에서 중 봉으로 가기 위해서는 옆 사이 길을 들어야 한다.

사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엄격히  통제하는 길이어서 좀 죄책감도 들긴 하지만

반야봉과 함께 오늘 산행의 목적인 묘향대를 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들키면 50만 원 벌금도 감수해야 한다. 중 봉에 서면 긴급사태를 대비한

헬기장이 있고 연안 김씨 묘를 중심으로 심마니능선과 심원마을 가는 길

그리고 꼭꼭 숨어 있는 묘향대 가는 길을 찾아내야 한다.

 

주위의 눈치를 살피면서 살포시 출입금지 팻말을 뒤로 하고 내리막 길을

들어서면 반야성지 묘향대 가는 길이라는 리본이 나무에 매달려 있다.

 

20분 여를 조심해서 내려가면 과연 이런 곳에 저런 명당이 있었나 할 정도로

빼어난 풍수적 위치에 퇴색된 슬레이트 지붕으로 지어진 묘향대가 고개를 내민다.

 

 

묘향대는 구례화엄사의 작은 末寺 또는 암자로 지리산에 존재하는

10대 기도처 중에서 현재 그 위치를 제대로 알 수 없는 금강대를 빼면

가장 기도의 효험과 기도처로서의 풍수적 기운적 배치가 뛰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묘향대가 위치한 곳은 반야봉의 정수리 즉, 선도용어로 두정頭停에

해당하는 위치로 도를 득한 스님이나 仙道人들의 얼령이 들락거리는 주요 穴자리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존재할 때 사람이야 말로 하늘과 땅을 누비고 연결하는

존재인바 이 정수리를 통해 하늘의 뜻을 알고 땅의 기운을 몸으로 정밀하게

정화하여 하늘로 보내는 주요 穴자리인 만큼 절대적 진리를 뜻하는 반야봉의

정수리에 떡 하니 자리 잡은 묘향대의 영험함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또한 일반사람들이 찾기가 너무도 어렵고 수행 외에는 다른 생각도 행동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고립된 위치로 북한에는 휴정 淸虛堂 서산대사가 입적한

묘향산의 法王臺를 최고의 기도도량으로치

남한에서는 般若峰 妙香臺를 손꼽는다고 한다.

 

남한에서는 설악산 봉정암, 지리산 법계사가 제법 높은 위치에 있으나

묘향대는 내가 차고 간 고도계 기준으로 1,513미터에 위치하여 남한 최고봉에

위치한 불법도량임이 틀림없었다.

 

묘향대(妙香臺)의 문수를 漢譯하면 묘수(妙首), 묘덕(妙德),

묘길상(妙吉祥) 등이 된다.

 

다시 말하면 문수의 체(體)는 바로 묘유(妙有)라는 것으로

향상 변함이 없는 자성(自性)자리를

가리키는 것이니 이 묘유를 묘향(妙香)이라 일컬은 것이다.

 

지리산 10대 기도처의 공통점은 커다란 바위 벽이 있고

그 아래에는 석간수가 흐르고 있으며 문수대,

우번대 등과 함께 묘향대는 수도하는 스님이 머물고 있다.

 

수도처 답게 지리산 깊숙한 곳에 위치하며 氣를 느낄 수 있고

영험한 느낌이 들며 주변에 반달곰이 서식하고 있다.

 

옛부터 선도나 불법이 깊은 수도자 주변에는 산군(호랑이)님이 항상

주위에서 보호를 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호랑이가 멸종한 지금 남한에서는

그래도 반달곰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묘향대는 수 백 년 동안 토굴로 이어져 왔고 시작은 정확히 언제인지 모른다.

다만 조선시대에도 묘향대에 관한 얘기가 회자되었다고 하며

지금의 모습으로 증축한 것은 70년대 초반이다.

 

화엄사를 새롭게 일으킨 도광 스님이 주변의 도움을 얻어 토굴에서

절 집의 모습으로 가꾸었고 근처에 또 다른 기도처 금강굴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 또한 스님들에게는 유명한 수행처이다.

 

지도에는 묘향대의 위치가 반야봉의 동쪽이자 뱀사골의 막차계곡

상류에 표기되어 있으나, 현재의 묘향대 위치는 반야봉에서

중 봉 무덤 옆 구상나무 부근에 내려가는 길에 있다.

 

묘향대의 건물은 여느 시골의 대충 지은 집처럼 초라하기 그지 없으나

앞으로 탁 트인 조망에는 토끼봉과 명선봉 그리고 저 멀리 천왕봉이

포함되고 거대한 바위가 북서방향을 금강역사처럼 막고 있어서

겨울철 매서운 북풍을 차단하고 열린 방향이 동남방향이라 사시사철

양지바른 곳이다.

 

 

 

 

 

 

 

 

 

 

 

내가 묘향대를 봄과 동시에 한 마리 개가 요란스럽게 짖어 댄다.

그 소리에 참선 중이었을지도 모르는 스님께서 내다보신다.

미안한 마음과 묘향대를 찾은 반가움과 설레임이 중첩되어 더욱

발걸음을 서두르게 한다.

 

우리 나라 토종개인 삽살개처럼 보이는 두 마리 개가 나란히

사대천왕처럼 암자의 좌우를 지키고 있고 수컷은 점잖은 반면

암컷은 다소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낯선 방문객을 경계한다.

스님께서 어디서 오셨느냐, 혼자 오셨느냐 등등의 질문을 하더니

구수한 커피 한 잔을 주신다.

 

정말 이런 깊고 높은 암자에서 마시는 블랙커피 한 잔은 근 세 시간 동안

정신없이 치달았던 나의 몸과 마음을 느슨하게 이완시켜 주었고 보이는

경치에 감탄하고 맑고 시원한 석간수에 찌들었던 심신이 정화되고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에 흠뻑 취해가고 말았다.

약간의 시주를 하고 스님과 이런 저런 덕담과 현문현답을 주고 받은 뒤

다시 길을 나선다.

 

그 옛날 김삿갓이 이 곳을 다녀 갔다면 필히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을 것이다.

 

" 오묘한 배치가 하늘과 땅 사이에 있어

  석간수 한 모금에 오욕칠정이 녹아 없어지고

  헌걸찬 智異주능선에 삼세의 업보를 나열하니

  나 여기서 삿갓을 내려놓고

  천인단애 낭떠러지 마음만이 고요하다

 

  구름하나 산자락에 대롱거려

  세속에 찌든 범부의 한계를 직시하고

  이끼 가득한 그늘막에 음영의 공존을 대각하며

  깊은 밤 찌르레기 울음소리에

  님의 애절한 望夫哭이 처연하네

 

  목탁의 울림소리 三丹田을 두들기고

  들숨 날숨 한숨에 생 과 사를 드나들고

  푸르러 투명한 하늘 향해 두 팔 크게 활개 짓 하니

  無常한 三惑, 그 흔적을 털어 낸다. "

 

- 2011년 5월 5일 仙道人 淸虛 쓰다 -

 

이윽고 다시 세속으로 돌아와야 한다.

없는 길 찾아가며 미끄러운 길 버텨 내며 당혹스러울 정도로 힘든 하산 길에

식은 땀은 온 몸을 적셔 흐르고

 

 

사람없는 깊은 산 속 홀로 헤매이는 맛 또한 처절할 정도의 비장함도 느껴보았다.

무심결에 잘 못 디딘 발자욱 옆에 저 자신도 놀라서 바르르 떨고 있는 배암도

결국은 이 위대한 자연의 구성원임을 깨닫고 사진도 찍어보고, 또 다른 숨겨진

비경인 이끼폭포는 진정 이 곳이 사람사는 곳이 아니라 신선들이나 선녀들이

유희를 즐기는 仙景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다.

 

 

마침내 도착한 이끼계곡 청정수에 온몸을 씻고

등짐을 풀고 적당한 자리를 잡고  앉아서

자연속에서 잠시 호흡을 풀어본다.

 

 

그 호흡 속에 내가 털어 내지 못했던 여러 가지 미혹들이 툭툭 떨어져 나감을

몸으로 직접 느끼고 일어난다. 오랜 시간 꿈 없이 푹 잔듯한 상쾌한 느낌이 너무 좋다.

 

 

이 곳이 아무리 좋아도 결코 내가 영원히 머물 곳은 아니다.

아쉬움 가득 뒤로 하고 다시 내 머물 곳 내가 돌봐야 할 곳, 사람들을 찾아서

남한 최고 계곡중의 하나인 뱀사골 계곡을 비껴 내려 서면서 산악회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반선으로 하산한다.

 

 

 

 

 

 

 

 

 

 

 

 

 

 

총 7시간 20킬로의 힘들고 바빴던 산행, 그러나 반야봉과 묘향대 이 절대성지 두 곳과

덤으로 챙겨 온 이끼계곡의 절대풍광 모습을 가슴 가득 안은채 하산하니  

비록 발바닥은 아프고 무릎도 쑤셔대고 몸은 피곤해도 마음만은 멀뚱설뚱 청명함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