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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건강

지리둘레길과 봄의 사색

 

 

 

 

 

 

- 월간모던포엠 5월호에 기고된 기행수필 원고입니다. -

   영광스럽게도 매월 기행수필의 칼럼을 쓰게 되었고 습작과 글의 힘을 키워가는 과정으로 여기면서

   즐겁고 자연스럽게 써 나가고자 합니다..^^

 

< 지리 둘레길, 그리고 봄의 사색 >

 

지난겨울 산행 중에 뜻하지 않게 당한 허리뼈 부상으로 두 달 가량 거의 꼼짝도 못하고 온 몸이 뒤틀리는

무기력한 상태에서 보내다가 허리통증도 많이 가라앉고 산, 바다, 강, 땅에서 전해져 오는 봄소식에 조금은

무리인줄 알면서도 집사람과 봄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이번의 트레킹 코스는 지리산 둘레길 현재 개발된 약 70킬로의 길이를 인위적으로 5개 코스로 잘라놓은

코스 중 제 4코스이다. 지리산은 총면적이 무려 47만 제곱킬로미터로 국내에 있는 국립공원 중에서 가장

면적이 넓고 둘레의 총길이만도 800리가 넘는 대 산군의 집합이다.

 

 

제 1코스가 주천-운봉의 14킬로, 2코스가 운봉에서 인월의 9킬로, 3코스가

인월에서 금계까지 19킬로로 가장 길고, 오늘 내가 다녀 온 코스가 금계에서 동강까지의 15킬로,

그리고 마지막 코스가 동강에서 수철까지의 11킬로라 한다. 주변경치와 편안한 솔밭을 걷는 맛은

5코스가 가장 좋고 조금 힘은 들지만 등산과 트레킹의 맛은 3코스가 좋다고 한다.

 

 

지리산은 智異山으로 표기하는데 지혜가 남다른 산, 또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머물면 지혜로워진다는 등의

여러 가지 해석이 있으나 수 십 차례 이 지리산을 종주도 하고 해마다 세 번 네 번은 꼭 찾는 내가 경험으로

보기에는 갈 때마다 새로운 지혜를 얻는 산이라는 뜻이 가장 적당할 것 같다.

 

 

오늘 4코스의 들머리 날머리를 잇는 코스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별도로 두어 시간을 공을 들여서

유명한 벽송사와 서암정사는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다.

 

 

집사람은 모처럼만에 신랑과 오붓하게 봄 산행을 가게 되어 아침 일찍부터

한껏 들뜬 모습이고 나 자신도 지난겨울의 힘들었던 고통을 벗어나 가도 가도

또 가고 싶은 지리산에 첫 얼굴을 내민다는 생각에 쉰이 다된 나이임에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버스는 88고속도로를 부지런히 달려내는데 비록 고속도로라는 이름을 붙이기조차 어색한

수준의 빈약한 왕복 2차선 도로이지만 달리는 내내 창밖에 무더기로 쏟아지는 경치의 선물은

가장 짧은 거리에서 누릴 수 있는 특급선물이다.

 

대구를 조금만 벗어나면 성주지역의 낙동강이 시원스럽게 눈을 즐겁게 하고 조금만 더 가면

합천 가야산 자락이 현란한 신라시대 왕관처럼 신비함을 안겨주며 거창휴게소에서 내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앞뒤로 펼쳐진 오도산과 비계산, 비학산의 비스듬히 깎아 내린 경치를 보는

맛 역시 가히 빼어나다.

 

 

다시 출발하는 버스에 계속 쏟아지는 풍광은 합천의 명산이자 전국 명산서열 14위 가야산과

황석산으로 이어지며 헌걸찬 산세는 잠시라도 눈을 떼기 어렵게 만든다.

 

 

88고속도로는 대구와 광주를 잇는 5공화국 시절의 대표적인 영호남 교류의 억지 춘향이로

만들어진 도로로 시속 80킬로가 제한이고 어쩌다 앞에 느림보 트럭이라도 걸치면 추월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라서 운전자의 무한한 인내심을 시험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섣부른 행동은 대형 참사로 이어지기 쉬운 도로이지만 그래도 끊임없는 멋진 주변조망이

이런 따분함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윽고 버스가 지리산 인터체인지에 들어서고 남쪽 방향으로 펼쳐진 지리산의 장쾌한

능선이 보는 이를 압도 한다. 서남방향으로는 유달리 흰 정상이 눈에 띄는 바래봉과 세걸산이,

동남방향으로는 삼봉산이 좌우로 시립하여 지리산 자락에 들어섬을 온 몸으로 환영한다.

 

 

둘레길 제 4코스의 출발점인 금계지역은 성삼재로 가는 길을 따르다가 칠선계곡방향으로

좌회전을 하고 약 20분쯤 가면 엄천강을 중앙에 두고 좌우로 아담하게 펼쳐진 마을인데

현대식으로 잘 지어진 다리가 오히려 소박한 지리둘레길의 멋을 해치는 것 같아 아쉬움을 더한다.

 

 

요즘 시골에는 어린이가 거의 없는 관계로 웬만한 초등학교는 거의 폐교되어 연수시설이나

주차장으로 사용되기 일쑤인데 이 곳 금계도 예외는 아니다. 후루룩 죽을 마시듯이 둘레길

탐방객들이 버스를 내리고 집사람과 나도 물 한잔 들이 키고 길을 나섰다.

 

 

의중마을 입구에 줄기가 세 방향으로 길게 뻗은 보호수가 눈에 띄는데 물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삼차원구조가 완벽하게 펼쳐져 있다. 중간몸통은 매우 굵고 튼실하게 보여서 바탕이 튼튼하면 과거나

현재 미래의 구성이 제법 보기 좋은 대칭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왼쪽 방향으로 벽송사, 서암정사로 가는 샛길이 있었으나 나와 집사람은 아스팔트길을 끼고 오르는

코스를 택했다. 오르고 내리는 길은 조금은 달라야 늘 새로운 것을 찾는 우리네 성품과도 맞고 또

아스팔트길이 칠선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지류를 따라 있어 계곡물과 바위, 나무를 보는 맛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계곡 중간 중간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거대한 바위를 보며 분명히 어디에서 떨어져 나온 것 인데

저 녀석을 저 위치에 옮겨 낸 힘의 근원이 궁금해졌다. 무게가 어림잡아 몇 백 톤은 됨직한데 사람이

굴렸을 확률은 호랑이를 한주먹에 때려잡았던 몇 몇 우리네 선조님들을 감안하더라도 불가능해보였고,

하늘의 어느 신장이나 역사가 장난친다고 공기 돌 다루듯이 했다고 보기에는 주변에 비슷한

크기의 바위가 네 개가 모자란다.

 

바람이 그랬다고 추측하기에는 허풍스럽고 결국 지금 저 녀석 주위를 졸졸 흐르는 물이 엄청난

원군의 힘을 빌어서 그 파괴적인 물리력으로 그랬을 것 같다.

 

이번 일본 동북부의 쓰나미를 보면 그러고도 남을 힘을 물은 가지고 있다.

예부터 어른들이 불이 나면 그 흔적이라도 남지만 물난리가 나면 아무 것도 남든 것이 없다고 하셨으니

분명 저 거대한 공기 돌은 상상하기 힘든 계곡의 물이 만들어 낸 자연의 작품이다.

새삼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든다.

 

바람은 아직 쌀쌀하지만 오르막길을 삼 십 여분을 걸으니 등 뒤로 이마로 콧등에도 옅은 안개 같은

땀이 난다.

오른쪽으로 가면 칠선계곡 들머리, 왼쪽으로 가면 벽송사 간다는 표식이 나오고 점점 더 가팔라지는

경사도에 아무리 둘레길이지만 그냥 날로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라는 생각을 할 즈음 碧松山門

글자가 새겨진 표지석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위에 금강역사 조각상이 있는데 툭 튀어나온 두 눈과 앙칼지게 다문 입은 무섭거나

위압적이기 보다는 옅은 웃음을 자아내게 하고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몸은 건들거리는

불량기를 보는 것 같아서 조각한 사람의 은근한 해학이 듬뿍 담겨있다.

 

왼쪽으로 가면 서암정사, 오른쪽으로 가면 벽송사로 갈라지는 갈림길에서 우선 서암정사를 택했다.

서암정사는 원래 벽송사의 부속 암자였으나 한국전쟁이후 이 깊은 지리산 자락에서 이데올로기라는

무형의 개념과 그저 상부의 명령하나로 죽어간 수 없이 많은 영혼들의 천도를 위해 1989년부터

원응스님이 발원하여 개보수를 지금까지 계속 해 오고 있다.

 

입구에도 자재로 쓰일 나무와 돌들이 잔뜩 쌓여 있고 조용한 산자락을 울리는 공사 소음이 귀에

거슬리긴 했지만 이 서암정사에서 그래도 매일 그 때 숨져 간 젊은이들의 영가를 위한 기도와

염원을 실어낸다 하니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서암정사의 일주문에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百 千 江 河 萬 溪 流 - 수없이 많은 강과 계곡, 지천의 물들이

同 歸 大 海 一 味 水 -큰 바다에서 모이면 결국 한 가지 맛이로다.

너와 나,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꿈꾸고 얻고자 하며 매 일상을 사는

모습은 달라도 결국은 이겨낼 수 없는 죽음이라는 현상에서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그저 현실을 타고 흐르는 지금이라는 순간만이 뚜렷하고 빛나는 것이고 결국 맞이하는 끝자락의

모습은 매일반 마찬가지인 것이니 너무 지나친 욕심을 거두고 주위의 사람과 사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고금의 성현이나 고승대덕들이 그토록 알리고자 했던 인생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주문을 지나면 오른쪽 방향에 덩그러니 줄기와 한줄기 무거운 가지만이

놓여 있는 고사목이 바위에 뿌리를 내린 모습으로 놓여 있는데 바람에 지쳤는가,

세월의 무게에 허리가 꺾이고 지쳐버린 인간의 모습을 투사하는 듯 굳이 요란스럽게 말하지 않아도

저 나무가 겪어내었을 풍파와 고통의 과정이 침묵으로 웅변한다.

 

돌길을 돌아서 올라가면 소나무 한그루 옆에 투박하게 세워진 돌탑이 있는데 애써 그 기운이

이렇게 알려온다.

 

굳이 화려하지 않아도 내가 버텨내려 하는 이유를 당신은 알지요.

굳이 뛰어나지 않아도 내가 여기서 무상함을 전하려 하는 것을 당신은 알지요. 마냥 이 곳에 있음

자체로 당신을 반기고 감탄의 눈, 외침이 없어도 당신의 오고 가며 그저 바라보는 그 힘만으로도

나는 여기서 앞으로 천년의 세월을 버텨 낼 거예요.

 

성스러운 빛과 상서로운 구름이 모이는 곳이라는 뜻의 光明雲台를 들어서면

毘盧佛을 모신 비로전이 아담하게 조각된 양각의 형태로 탐방객을 맞는다.

 

자연 암반에 문을 만들고 깎아내어 인위의 힘으로 원력을 세우려 하는가.

올려 보는 것으로 존경을 얻고 알려진 모습으로 사람의 경외심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토록 설파하고 알려 내었던 마음의 본자리는 어디서 찾을꼬.

저 벽에 호랑이가 새겨진다고 무서워 할 것이며 귀신상이 새겨진다고 머리카락이 곤두 설 것인가?

큰 스님의 갈喝은 허공을 맴돌고 깎여진 돌만이 설움을 더한다.

 

그래도 이름 모를 장인의 땀과 회한과 설움과 고통이 배여 있다면 투영된 양각의 像보다는

그것으로 신심을 이끌고 그 신심을 위해 손마디 마디 끌과 정으로 쳐내었던 그 석공의

고된 마음과 인내를 찬미한다.

 

예술적 가치가 무엇이랴. 부처가 부처다워야 한다는 당위성을 접고 이 석상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자 하는 그대로를 보는 순수함이라면 그 때 가졌던 최소한의 바람은 이루어진 것이리라.

다시금 마음을 내려놓고 무언가를 바라고 염원하는 기복을 버린다면 저 상 구석구석 숨어 있는

힘을 느끼고 그 힘으로 다시 일상생활의 원기를 살려낸다면

이곳에서 저 불상을 본 가치는 넘치고 넘친다.

 

부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바램마다 저 석상을 음각이 아닌 양각으로 걸쳐낸 연유와 모습의

화려함 보다는 깡!깡! 마디마다 숨어 있을 석공의 고된 한숨을 이해하고 즐겨낸다면 조금은

우리도 인생의 질퍽한 피로감에서 아주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저 돌문으로 가로막힌 너머의 광경과 세상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저 문으로 나서거나

저 돌문을 꿰뚫는 혜안을 가지는 것이다.

인류의 수천 년 역사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없이 많은 현자들과 사상가,

학자들이 그토록 설파하고자 했던 것이 저 돌문을 뚫어보는 혜안이라면

차라니 나는 저 돌문을 부수고 직접 몸으로 보고 느끼고자 한다.

 

피안의 세계. 그 곳은 논리와 거증의 이론적 학문이 아니라 몸으로 거쳐내야 비로소

나의 세포 곳곳에 나의 진리로 체화되는 것이다.

 

서암정사는 경건하고 숙연한 분위기보다는 이 척박한 곳에 이루고자 했던 그래서

그 바램들이 하나 둘 조각상 마다 녹아있는 스님과 행자들의 고되고도 힘들었을

그 과정과 애증을 느껴보는 마음가짐이 필요해 보인다.

 

서암정사에는 하늘을 닿고 향하는 모든 곳에 첨탑이 존재한다.

첨탑은 그 날카로운 끝마디로 우리의 염원을 고밀도로 농축시켜 하늘의 존재에 보다

정밀하게 전달하고 받아내는 과학적 원리가 숨어있다.

 

삼천대세의 중생을 이끌어 주는 마하대법왕을 지나면, 사대천왕의 모습들이 거대한

암벽에 조각되어 있는데 사악하고 세상을 어지럽혔던 용을 사로잡고 그 입에서 빼앗은

여의주를 들고 득의만연한 표정의 남방증장천왕의 해맑은 모습과 그것이 못내 부러운 듯이

동방지국천왕이 짓고 있는 어색한 미소가 꽤나 재미있다. 죄지은 사람이 아니면

이 사대천왕을 보고 겁낼 필요는 없다..

 

서방광목천왕은 온 중생을 어지럽히고 괴롭히는 악마구니를 두 발로 짓누르면서 세상을 지키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한강 이남의 남방지역에는 마구니의 모습이 왜구의 그것을 닮았고,

북방지역에는 오랑캐의 모습으로 악마구니의 모습을 그려냈다는 것인데 아마 외침에 시달렸던

시대적, 지리적 상황이 적절히 대변되어 사대천왕의 모습에까지 투사된 것 일게다.

 

대방광문을 나서서 우리 모두가 저 문을 들어서면 광명정대한 세상이 펼쳐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아기자기한 정사의 곳곳에, 이 작은 통로사이에도 엄청난 노고와 땀이 영혼을 울려내는 냄새가 난다.

 

어질어질한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벽송사로 향하는 길에 접어든다. 그 길가에 굴참나무가 앙상한

나뭇가지 마다 새둥지 같은 형상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데 가만히 보니 겨우살이다.

요즘 건강식품으로 인기최고인데 워낙 만병통치 건강재료로 널리 알려져 누군가의

눈에 띈다면 그날로 없어진다.

 

벽송사 입구에 자리 잡고 있는 장승들. 오랜 세월에 목재가 삭아버렸지만 그 위엄은 굳건하다.

언뜻 흰둥이 두 마리가 종각아래에서 짖지도 않고 앉거니 눕거니 뒹굴뒹굴하고 있는데

사람을 보고도 짓는 법이 없고 절의 기운을 받아서일까. 눈빛마저도 평화롭기 그지없다.

그러면서 빤히 내 얼굴을 쳐다보면서 목을 좌우로 갸우뚱하면서 이런 메시지를 전한다.

 

이 엄한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갈 방법을 내 어이 당신네 인간의 언어로 알려 주겠는가?

욕심과 달콤함에 찌든 속인들은 내 말을 그저 개 짖는 소리로만 들을 테니,

마음으로라도 읽을 수 있다면 그리하시게, 요이언지 목 아프게 짖느니 그저

내 달관한 표정으로라도 알게 할 수 있다면 다행이외다.

 

벽송사는 남한 최고의 선승들을 배출한 사찰로 유명하며 내가 쓰고 있는 청허라는 호의 원류인

휴정 청허당 서산대사가 이 절의 제 2대 사조의 제자이다.

철저한 비구계의 전승과 엄격한 참선수련을 강조하면서 지금도 선승들이라면 반드시 거쳐 가야 할

寺刹로 이름이 높다.

 

6.25동란 때에는 빨치산들의 야전병원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이 사찰의 주변에 크고 작은

상호간의 교전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피를 흘리고 그 피거품이 땅을 적셔 어머니 지리산이

서러운 아픔을 품어내야 했던 곳이기도 하다.

 

 대웅전과 원응전, 산신각 모두 화려하지는 않으나 정갈하면서도 가람배치양식으로 전개되어

이 사찰만의 독특한 수양, 정신문화의 틀이 곳곳에 베여있다.

 

오른쪽 방향으로 호젓한 산길을 약 200미터 정도 가면 학승들이 용맹정진 하는 별도의

암자형태의 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선도수련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대웅전의 불상보다는 절의 한 귀퉁이에

자리한 산신각이 더 친근하고 불전을 놓고 그저 마음 흔들리지 않고 세상을 밝게 바라보는

힘을 달라는 기도를 한다.

 

이제 심각한 모드는 그만하고 땀깨나 흘려야 할 행군모드로 접어들어야 한다..

 

서암정사 입구에서 내리막길 숲길로 들어서서 30분을 바삐 내려오면 지리산의 장쾌한 능선이 보인다.

반야봉과 노고단이 멀리 보이고 조금 지나서 의중마을을 통과하면 북서쪽 방향에는1,181미터의

삼봉산이 멋지게 자리 잡고 있다.

 

의중마을 끝자락에 들어서면 마주보는 법화산 자락에 커다란 불상을 조각하고 있다.

 

산 이름이 법화산이라서 저런 초대형 불상을 새기는 것일까.

법화산이 고통의 비명을 지른다. 자신의 살과 뼛조각이 베이고 떨어져 나가고 깎이는

저 산의 산신은 얼마나 서러울 것이며, 동양최대크기의 웅대한 불상이라고 더 많은 사람들이

더 깊은 신심을 가지고 절을 하면서 그 옛날 고타마 붓다가 행하고자 했던 참된

보리행의 의미를 더 잘 알고 실제로 행하게 될까?

 

심각해지긴 싫지만 마음으로 새기는 것이 더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특히 그 대상이 그저 자식 잘되고 가족 잘되기를 기원하는 일반 대중들이라면 말이다.

 

계곡이라 하긴 크고 강이라 하긴 아쉽지만 둘레길 내내 왼쪽 편에서 편안한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급할 것 없이 여유롭게 흘러내리는 엄천강이 오랜 지기처럼 정답기 그지 없다.

 

가끔씩 바위를 돌고 조금의 낙차라도 있으면 어김없이 귀와 가슴을 두들겨 씻어내어

주는 물소리가 너무 좋고 강가에 있는 바위들과 생강나무가 봄기운에 나른함을 비벼내어

한 입 가득 내입에 물어주고 아직 활짝 기지개를 펴지는 않았지만

주위 온 방향에 봄은 기웃기웃 은은한 모습과 냄새를 드러낸다.

 

꼬부랑길, 산길, 숲길을 돌아내니 임도가 나오면서 현대식 다리가 보이는데 여기가 바로

용이 힘차게 놀고 다녔다는 용유담에 세워진 용유교이다.

 

얼핏 보아도 대 여섯 길은 될 듯한 깊이의 용유담인데 가만히 우리나라 산천을 다니다 보면

유독 용,선녀와 관련된 전설이 많고 그 潭, 沼마다

각각의 사연과 전설을 품고 있으니 가히 전설의 산천이 분명 맞다.

 

깊고 깊은 용유담에는 물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녀리고 고운 잔잔한 파도가

살랑거리는데 손으로 만지면 저 물 주름 사이의 느낌이

너무나 부드러울 것 같고 그 주름사이 사이에 봄의 향내를 품고 있는 듯하다.

 

모전마을을 돌아서면 주변경치와는 다소 생뚱맞게 어울리지 않는 바위군이 나오는데

이 모전마을 끄트머리라는 것도 주관적이긴 하지만

나오는 사람에게는 날머리, 들어가는 사람에게는 들머리가 될게다.

세상사 다 자기 보기 나름이다.

 

이제부터는 아스팔트길이 동강까지 계속된다고 하니 편안하면서도 투박한 흙길을 걷는

묘미는 없더라도 서두를 것 없이 걸어내니 마음은 참으로 편안하다.

별도로 점심을 준비하지 않아서 간간히 사탕과 간식거리로 허기를 때웠는데 이제 시장기가 제법 돈다.

그런 순간에 짠~! 하고 나타나는주막이 있으니 예나 지금이나 한량들의 기쁨은 배부른 가운데

나온다는 진실은 변함없다.

 

가는 길 어디엔들 주막이 없을소냐, 막걸리 한 툭사바리와

삼년을 묵혀 낸 김치 종아리. 꺼억 하고 입술주위 훔쳐내고

시큼한 총각김치 한 조각이면 걸어 온 피로감은 물론이고

곁가지로 시골두부 한 입 더하면 예서 머물러도 억울할 것이 없고

앞으로의 먼 길조차도 노곤함이 훨씬 덜하다.

 

이 주막의 주인 대구 댁 할머니가 끓여주신 맛있는 라면은 청량고추와 파가 듬뿍 들어가서

천하일미라 할 만하다.

 

시장했던 탓일까 라면 국물까지 알뜰하게 비워내고 커피 한잔에 이른 봄날 오후의

만족감을 더한 뒤, 자리를 나섰다.

 

그 사이 아줌마 일곱이서 앞서 가는데 봄이란 것이. 특히 친구들과 함께 하는

세상사 달인 아줌마들의 봄이라면 사춘기 소녀를 능가하는 부지런한 재잘거림,

자유 분망함과 특유의 걸쭉한 입담들이 아주 농밀한 봄의 향내라면 향내일 것이다.

 

한 잔 걸친 막걸리 탓일까. 기분 좋은 피로감과 약간의 술기운이 둘레 길을 더욱 흥겹게 한다.

털털하게 걸어낸 길이 벌써 종착점에 다가 왔다.

약 40리 길의 만만치 않은 길이었지만 집사람의 표정에는 만족감과 시원한 가슴의 터짐이

더욱 진하게 묻어난다.

 

조금은 쌀쌀한 날씨였지만 오랜만에 집사람과 함께 한 멋진 데이트.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암정사와 벽송사에서 가진 현상과 사물에 대한

나만의 대화시간이 그동안 회사일, 개인일, 여러 가지로 복잡했던 사안들에 대한 정리와 회개,

새로운 방향을 정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참으로 소중했다.

 

현상에 매달리지 말고 그 현상을 있게 한 원리와 그 뒤의 노고, 땀, 희망, 설움에 대한 이해.

본질에 조금은 더 근접하여 지혜를 갖추고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을 꿰뚫는 혜안과 돌파력.

최소한 그런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만으로도 오늘 이 둘레 길은 봄날의 지리기운과 함께

온 몸과 마음을 가득 채워낸 열매이다.

 

버스가 오기까지 시간이 남아서 종점근처의 엄천강에서 집사람의 발을 내가 직접 씻겨 주었다.

늘 함께 살면서 부려만 먹다가 어쩌다 같이 산에 같이 왔을 때 내가 유일하게 해 줄 수 있는

지아비의 정성이다.

 

잠깐 담갔을 뿐인데 손과 발목은 벌겋게 아려오고 봄이라 하지만 한겨울의 맛을

그대로 뽑아내는 뼈 속까지 시린 차가움이 온몸에 쌓인 나른한 피로감과 봄향기에 취했던

나의 마음을 깔끔하게 씻어내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