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 존재하는 거대 천체들의 실상
은하 중심에 존재하는 거대질량 블랙홀의 구상도.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중력을 가지고 있는 천체인 블랙홀. 우리은하에만
태양질량의 수~수십 배에 이르는 블랙홀이 수천 개 존재한다.
별의 입장에서 보면 한 번 빠지면 끝인 함정이 여기저기 놓여있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은하 중심에는 이런 블랙홀들을 다 합친 것보다도 무거운 거대한 블랙홀이 자리잡고 있다.
추정 질량은 태양의 460만 배. 별이 이 괴물에 다가갔다가는 갈기갈기 찢겨 삼켜진다.
그런데 이런 괴물이 대다수 은하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그 이름은 거대질량 블랙홀. 우리은하의 이웃인 안드로메다은하의 중심에도 태양질량의 1억 배인 블랙홀이 똬리를 틀고 있다.
지구에서 3억 2000만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은하(NGC 3842)에는 태양질량의 무려 100억 배인 블랙홀이 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지기도 했다. 거대질량 블랙홀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이들은 어떻게 이런 거대한 덩치를 키웠을까.
이런 의문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지만 최근 천문학자들은 이에 대해 하나 둘 답을 하기 시작했다.
은하 안방 차지하고 무수한 별 먹었다
우주에 존재하는 블랙홀들은 대부분 별 질량 블랙홀로, 태양보다 3~4배 더 무겁다.
태양보다 약 30배 이상 무거운 별이 폭발하면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폭발 후 남은 중심핵이 바로 이러한 블랙홀이 된다.
블랙홀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매우 무거운 별들(그들은 수명도 짧다)의 수는 태양과 같이 가벼운 별들의 수보다 훨씬 적지만,
그래도 우주적인 규모로 봤을 때 흔하게 존재한다. 태양계가 속한 우리은하에도 별 질량 블랙홀이 수천 개 있는 것으로
천문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더 무거운 ‘거대질량 블랙홀’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현대 천문학의 커다란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거대질량 블랙홀은 그 질량이 태양의 100만~100억 배나 되는 매우 무거운 블랙홀을 일컫는다.
보통 은하 하나에는 별이 약 100억~1000억 개 있으니, 태양보다 100억 배 무거운 거대질량 블랙홀의 질량은
작은 은하의 질량과 맞먹을 정도로 엄청나다.
대부분의 은하 중심부에는 거대질량 블랙홀이 있다. 여기서 ‘대부분’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아직도 거대질량 블랙홀이
있는지 없는지 불분명한 은하들이 있기 때문이다.
은하의 안쪽에는 별들이 구형 또는 타원체 모양으로 분포하는 ‘팽대부’라고 하는 지역이 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거대질량 블랙홀은 이 팽대부의 중심에 위치한다.
그런데 팽대부가 없는 은하도 많이 있기 때문에 이런 은하의 중심부에도 거대질량 블랙홀이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해
아직까지 학계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허블우주망원경(가시광선)이 찍은 지구에서 3000만 광년 떨어져 있는 솜브레로은하의 모습.
거대한 팽대부 중심에 태양질량의 10억 배에 이르는 거대질량 블랙홀이 있다.
찬드라X선망원경이 찍은 솜브레로은하의 X선 이미지. X선을 내는 뜨거운 가스가 있는 영역이 팽대부를 넘어 퍼져 있다.
퀘이사는 폭식하고 있는 블랙홀
거대질량 블랙홀의 존재는 1962년 ‘퀘이사(Quasar)’라고 하는 특이천체가 발견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별은 태양처럼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을 에너지원으로 하면서 빛나는 천체이므로 전파 영역에서는 빛(전자기파)이
매우 미약하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니 전파 영역에서 많은 빛이 발생하는 천체란 매우 신비한 존재였을 것이다.
1962년 미국 칼텍의 마르텐 슈미트(Maarten Schmidt, 1929~)와 동료들은 별처럼 보이는 3C273이라고 하는
전파광원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그 천체의 스펙트럼을 관측해 분석했다.
그 결과 3C273은 우리로부터 매우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는, 19억 광년이나 먼 곳에 있는 천체임을 밝혀냈다.
이를 계기로 별처럼 보이지만 별이 아닌, 전파를 많이 내면서 아주 멀리 있는 특이천체에
퀘이사(Quasi-stellar radio source, 준항성상 전파원의 약자)라는 이름을 붙였다.
허블우주망원경이 촬영한 퀘이사 3C273(왼쪽). 지구에서 무려 19억 광년 떨어져 있음에도 밝게 빛나는 천체다. 퀘이사는 활발하게 물질이 유입되는 거대질량 블랙홀로 다량의 가스가 강착원반을 이루며 떨어지는 과정에서 마찰열로 어마어마한 빛이 나오고 회전축 방향으로 제트가 분출(오른쪽 구상도)된다.
그런데 퀘이사가 이렇게 멀리 있는데도 그 겉보기 밝기가 상당하다는 것은 퀘이사들의 실제 광도가 매우 밝다는 뜻이다.
지구에서 퀘이사까지 알려진 거리와 겉보기 밝기로부터 퀘이사의 밝기를 추정해보면 퀘이사가 보통 은하보다
수십 배 더 밝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반면 퀘이사 광원의 크기는 엄청나게 작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3C273의 크기는 광속으로 1개월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인 약 1광월이다.
우리은하의 반경이 약 5만 광년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1광월이라는 크기는 60만분의 1에 불과하다.
이렇게 작은 지역에서 매우 밝은 빛이 나올 수 있는 경우는 거대질량 블랙홀 주변에 다량의 가스가 떨어지면서
그 마찰력 때문에 고온으로 빛을 내는 경우밖에 없다. 별들을 그렇게 좁은 공간에 밀집시킬 수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 많은 물질들이 한곳에 몰리게 되면 블랙홀이 돼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퀘이사의 존재는 거대질량 블랙홀의 존재에 대한 유력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거대질량 블랙홀 주변으로 떨어지는 물질은 강착원반이라고 하는 원반모양을 이루면서 빛을 내며,
이렇게 하면서 거대질량 블랙홀은 덩치를 키워나간다.
블랙홀과 은하 팽대부 질량 비례해
우리은하 중심부에서 약 10광일 지역에 있는 별의 움직임. 궁수자리(Sgr) A*라고 표시된 지역에 거대질량 블랙홀이 있다. 1995년부터 1999년까지 블랙홀 주변을 공전하는 별의 운동을 분석해 이 블랙홀이 태양보다 약 460만 배 더 무겁다는 결론을 얻었다.
거대질량 블랙홀은 우리은하 중심부에서도 발견됐다.
1990년대 중반 독일과 미국 연구그룹들은 대기의 흔들림 때문에 별의 상이 흐려지는 것을 보정할 수 있는
새로운 기법을 사용해 태양계에서 약 3만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우리은하 중심부를 관측했다.
그 결과 10광일(빛의 속도로 10일 만에 갈 수 있는 거리)이라고 하는 매우 좁은 지역 안에서 은하 중심부
주위를 공전하고 있는 별들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별들의 운동으로부터 역학법칙을 적용해 은하 중심부의 질량을 측정하자 우리은하 중심부에는
태양질량의 약 460만 배 되는 물체가 있어야 한다는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그런데 우리은하 중심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은하 중심부에는 태양보다 460만 배 더 무거운 거대질량 블랙홀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최근에는 거대질량 블랙홀의 질량과 블랙홀을 품고 있는 은하(host galaxy)의
질량(정확하게는 은하의 팽대부 질량)이 비례한다는 놀라운 연구결과들이 발표됐다.
즉 무거운 은하일수록 거대질량 블랙홀의 질량도 크다는 것인데, 이는 매우 특이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거대질량 블랙홀의 크기(길이)는 은하전체 크기의 수백만 분의 1에서 수십만 분의 1에 불과하다.
이렇게 작은 물체(상대적으로)와 그에 비해 훨씬 큰 은하가 서로의 질량을 알고 성장해왔다는 것은 믿기 힘든 사실이다.
비유하자면 어떤 도시에서 가장 무거운 사람의 몸무게로부터 그 도시 인구 몸무게 총합을 구할 수 있다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거대질량 블랙홀과 은하 중 어느 쪽이 먼저 생겼을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 나왔느냐와 같은 이 질문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어떤 연구결과에 따르면 거대질량 블랙홀이 먼저 생긴 후 블랙홀을 품은
은하의 덩치가 커졌다는 주장이 맞는 반면, 또 다른 연구결과는 이미 진화가 많이 된 은하 속에서 거대질량 블랙홀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초기우주 거대질량 블랙홀의 미스터리
거대질량 블랙홀의 성장과정을 이해하려면 먼 과거에 이들이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직접 살펴보면 된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야할 것 같아 불가능해 보이는 그러한 연구가 다행히도 천문학 관측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
빛의 속도는 유한하기 때문에 먼 곳에 있는 천체에서 오는 빛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지구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가 50억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천체를 관측한다는 것은 실제로는 그 천체의 지금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50억 년 전의 모습을 본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멀리 있는 천체를 본다는 것은 우주의 아주 옛날 모습을 본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멀리 있는 거대질량 블랙홀을 관측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매우 밝게 빛나고 있어야 한다.
앞서 언급했던 퀘이사라는 천체가 바로 매우 밝게 빛나고 있는 거대질량 블랙홀이다.
지금까지 관측된 퀘이사들 중 가장 멀리 있는 것은 2010년 영국의 한 연구그룹이 발표한 130억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퀘이사다.
현재 우주의 나이가 137억 년이니, 우리는 우주의 나이 불과 7억 년인 시점에 존재했던 퀘이사 모습을 보는 것이다.
필자가 이끄는 초기우주천체연구단 연구진도 멀리 있는 퀘이사들을 발견하고 있다.
이 중 가장 먼 곳에서 발견된 것은 128억 광년 떨어진, 즉 우주의 나이 약 9억 년에 불과할 때 있었던 퀘이사이다.
한편 서울대 연구진이 주도하는 국제 공동연구팀은 초기우주 퀘이사의 거대질량 블랙홀 질량을 측정하는데 성공했다.
초기우주 퀘이사들이 태양질량의 약 10억 배에 이르는 매우 무거운 거대질량 블랙홀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렇게 무거운 블랙홀이 우주 초기에 이미 존재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사실이지만 동시에 이들은 우주에서
가장 무겁다는 거대질량 블랙홀보다는 10배 정도 더 가볍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우주에서 가장 무거운 거대질량 블랙홀들이 급속히 성장하기 시작하는 시기는
우주의 나이가 7~9억 년 또는 그 이전이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거대질량 블랙홀 탄생 시나리오.
그런데 태양질량의 10억 배나 되는 블랙홀이 이미 초기 우주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은 또 다른 수수께끼를 던져주고 있다.
현재까지 천문학자들이 알고 있는 한 블랙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방법은 무거운 별의 죽음밖에 없으며 이렇게 생긴
블랙홀의 질량은 태양질량의 3~10배에 불과하다.
이런 블랙홀이 태양질량의 10억 배까지 자라기 위해서는 주위의 물질들을 급속히 빨아들여야 가능한데,
아무리 블랙홀이라고 한들 주어진 시간 내에 빨아들일 수 있는 물질의 양에는 한계가 있다.
물질이 블랙홀 주변에 많이 몰려 빨려들면 마찰열로 퀘이사처럼 밝게 빛나게 되며 이러한 밝은 빛이 가지고 있는
압력(광압) 때문에 물질들의 유입이 줄어들게 된다.
광압과 물질유입이 균형을 이루게 될 때가 블랙홀로 유입되는 물질 양의 최대 한계다.
계산을 해보면 블랙홀이 그렇게 최대한 빨리 물질을 빨아들여도 태양질량 10배의 블랙홀이 태양질량
10억 배의 블랙홀로 자라기 위해서는 10억년이 지나야 한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주의 나이 7~8억 년 때 이미 거대질량 블랙홀이 있었으니 뭔가 이야기가 들어맞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초기우주 거대질량 블랙홀의 시발점이 되는 ‘씨앗 블랙홀’은 무거운 별의 죽음으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
초기우주 가스의 급격한 수축으로 생긴 태양질량 수만 배의 블랙홀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또 초기우주의 별들은 지금 우주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매우 무거운 별들이었으며 이들이 죽었을 때는
태양질량 100배 이상의 비교적 무거운 블랙홀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어떤 경우가 맞을지는 앞으로 계속 초기우주 퀘이사들을 연구하다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별 찢어 삼키는 장면 관측
거대질량 블랙홀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별이 희생된다. 별이 가까이 다가가면(1) 별 양쪽이 받는 중력의 차이(조석력)로 인해 찢어지면서(2) 그 잔해가 소용돌이를 그리며 블랙홀로 빨려들어간다(3).
거대질량 블랙홀은 활발하게 물질을 빨아들이던 퀘이사 시절을 보내면서 그 덩치를 키운 후에는
은하의 중심부에서 비교적 조용하게 시간을 보낸다.
이 때문에 은하의 중심부를 매우 세밀하게 관측하지 않으면 그 곳에 거대질량블랙홀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은하 중심부에 있는 거대질량 블랙홀이 좋은 예다.
그런데 이렇게 조용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거대질량 블랙홀 가까이에 별이나 가스 덩어리가 다가가게 되면
퀘이사에서 본 경우와 같이 강한 빛이 일시적으로 발생할 수 있음이 지난 40여 년 동안 예측 돼 왔다.
따라서 거대질량 블랙홀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은하의 중심부가 이렇게 갑자기 밝은 빛을 내는 것을 관측 할 수 있다면
그것은 거대질량 블랙홀 존재에 대한 또 다른 새로운 증거가 되는 것이다.
이론에 따르면 거대질량 블랙홀 근처를 별이 지나가게 되면 블랙홀의 강한 중력 때문에 산산조각 나게 되고
그 잔해가 블랙홀 주변에 모이면서 강한 빛이 발생하는 현상인 ‘조석파괴’가 일어난다.
별이 파괴되는 것이 블랙홀의 강한 조석력(지구에서는 달의 조석력 때문에 밀물과 썰물이 나타난다)
때문이라고 해서 조석파괴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난 40여 년 동안 이론적으로 예측됐던 조석파괴 현상이 2011년 3월 28일 드디어 관측됐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스위프트 위성이 이 순간을 최초로 포착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대 초기우주천체연구단과 한국천문 연구원의 연구진이 보현산 1.8m 망원경을 비롯한
여러 지상관측 시설을 이용해 이 현상이 실제로 조석파괴이며, 이를 일으킨 거대질량 블랙홀의 질량이
태양의 약 1000만 배라는 중요한 사실을 알아내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이 천체에 대한 연구는 조석파괴 현상이 일어난 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거대질량 블랙홀의 질량이 태양의 1억 배가 넘는 경우에는 가까이에
별이 다가가도 조석파괴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별은 블랙홀로 그대로 떨어진다. 덩치가 고만고만한 거대질량 블랙홀들은 별을 씹어서 삼키는 반면
고도 비만 블랙홀들은 별을 꿀꺽 삼킨다고 비유할 수 있다.
은하 합쳐질 때가 덩치 키우는 기회
거대질량 블랙홀이 덩치를 키우는 또 하나의 메커니즘은 두 은하가 하나로 합쳐지는 은하합병이다. 작은 은하 두 개가 만나면(1) 블랙홀이 서로 회전하면서 가까워져(2) 결국은 하나로 합쳐져 덩치를 키운다(3). 이 과정에서 물질 유입도 활발히 일어난다.
블랙홀이 거대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블랙홀을 향하여 물질이 꾸준히 떨어져야 한다.
그러나 블랙홀 바로 옆이 아니면 아무리 블랙홀이라고 한들 혼자만의 힘으로는 주변의 물질을 자기에게 끌어들일 수가 없다.
따라서 블랙홀 주변으로 물질이 몰릴 수 있게 하는 어떤 외부적인 원인이 있어야 하는데 유력한 것이 은하와 은하사이의 합병 현상이다. 은하와 은하는 충돌할 수 있으며 충돌과정에서 은하 두 개가 합쳐지면서 새로이 더 큰 은하가 탄생하는 과정을 ‘은하합병’이라고 한다.
은하합병이 일어나게 되면 원래 안정적인 궤도를 유지하고 있었던 가스와 별들이 궤도를 이탈한다.
이런 가스와 별들은 새로이 탄생한 은하의 중심부에 몰려들어 거대질량 블랙홀의 성장을 위한
먹이가 된다는 것이 이론적으로 예측됐다. 실제로 그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급격한 블랙홀 성장이 일어나고 있는 퀘이사와 같은 천체에서 은하합병의 흔적이 다른 은하들에
비해 더 빈번하게 발견된다면 은하합병이 거대질량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연구진을 비롯하여 세계 여러 연구그룹들이 퀘이사 주변을 매우 깊게 또는 고해상도로 관측한 결과
실제로 매우 밝은 퀘이사의 주변에서 은하합병의 흔적이 자주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어두운 퀘이사의 경우 은하합병 없이도 궤도가 불안정해진 가스가 은하 중심부로 공급이
되어 거대질량블랙홀의 성장을 가져올 수있다는 연구결과도 존재한다.
이처럼 거대질량 블랙홀은 은하의 진화과정에서 갑작스럽게 성장할 수도 있지만,
그와 동시에 은하의 진화과정을 규제하는 역할도 한다.
거대질량 블랙홀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강한 빛은 은하 내부의 가스들을 가열해 새로운 별들이 탄생하는 것을 막는다.
이렇게 거대질량 블랙홀이 별들의 지속적인 형성을 막음으로써 그 은하는 새로운 별들의 탄생이 거의 없는,
나이만 늙어가는 조용한 은하로 남게 된다.
허셜우주망원경의 관측 결과 거대질량 블랙홀이 지나치게 활발해 많은 에너지를 분출하면 온도가 높아져 주변에서별이 잘 안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중심에서 거대한 제트를 분출하고 있는 은하 Arp 220의 상상도.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 말고도 거대질량 블랙홀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들은 무궁무진하다.
전파간섭계라는 기술을 사용하면 조만간 우리은하 중심부에 있는 블랙홀의 대략적인 모양을 직접
관측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우리은하 중심부를 향해 기체구름이 현재 떨어지고 있으며, 2013년에는 그렇게 떨어진 기체구름이
가열되면서 은하중심부에서 강한 빛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거대질량 블랙홀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중력파가 발생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검출이 되지 않은 중력파를 이용한 새로운 연구 분야가 생겨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거대질량 블랙홀이란 그 자체가 매우 흥미로운 천체인 동시에 은하의 탄생과 진화에 큰 역할을 한다.
즉 우주의 진화과정에 다방면으로 얽혀 있는, 우주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천체라고 할 수 있다.
아직도 수수께끼투성이이기는 하지만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에서도 거대질량 블랙홀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어 앞으로의 결과가 매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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