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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소설/SF·신비·구도

다중우주의 구조

 

 

 

< 현대 물리학에서 예측하는 다중우주의 구조 >

 

다중우주. <출처: (CC)Silver Spoon at Wikipedia.org>

 

 

 

다중우주란?

 

우주에 끝이 있을까. 우리가 탐구할 수 있는 우주의 끝으로 가면 무엇이 있을까. 우주가 끝날까. 혹은 공간이 사라질까. 몇몇 사람들은 다른 생각을 했다. 마치 언덕을 넘으면 또다른 언덕이 나오는 사막처럼, 우주도 경계를 넘으면 또다른 우주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중우주론은, 이렇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외에 또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어떠한 다중우주가 있으며, 이들은 어떤 모습일까. 다중우주에 대해 살펴 보자.

 

 

 

다중우주 아이디어의 분류

 

다중우주 아이디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할 방법은 없을까. 가장 널리 알려진 분류법은 막스 테그마크(Max Tegmark, 1967~) 미국 MIT 물리학과 교수가 2003년 1월 [평행우주]라는 논문에서 제안한 제4단계 분류법이다.

 

1단계는 관측범위 밖에 우주가 여전히 존재하며, 하나하나가 관측범위 내에서 독립된 우주를 구성한다는 주장이다. 물리법칙은 우리 우주와 동일하며, 우주가 무한이거나 충분히 크다면 이 우주들 속에 우리의 도플갱어도 발견할 수 있다.

 

2단계는 인플레이션 우주론과 관계가 있으며, 우리 우주와 물리법칙이 전혀 다른 새로운 우주다.

 

3단계는 양자역학에 나오는 다세계 해석이다. 세계는 지금 이 순간도 양자역학적 결정에 따라 무수히 많은 서로 다른 우주로 갈라지고 있다. 그 안에 사는 우리는 그저 하나의 우주만을 보고 있을 뿐이다.

 

4단계는 시뮬레이션 우주다. 정보에 의해 구축된 우주는 상상 가능한 모든 형태를 띌 수 있으며, 이들이 독립된 다중우주를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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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과학인가 vs. 우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폴 데이비스(Paul Davies, 1946~) 호주 매쿼리대 우주생물학센터 교수는 2004년 논문에서 다중우주를 둘러싸고 “이것이 과학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관측범위 안으로 관측이 제한된 상황에서 ‘그 밖’의 존재를 논하는 것이 의미가 있느냐는 비판이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데이비스 교수는 “관측할 수 없는 내용을 예측하는 일이라도, 그것이 검증 가능한 결론을 낼 수 있는 이론에서 나왔을 때는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다중우주를 상상 속의 상상을 의미하는 ‘도깨비 뿔’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관측을 통한 검증, 입자물리 실험을 통한 간접 검증, 그리고 이론 자체의 수학적 엄밀성에 따른 검증이 꾸준히 시도되고 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예를 들어 중력파 검증은 우주 탄생 초창기의 중력파를 검출할 수 있도록 검출기의 저주파수 감도를 높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아예 우주로 검출기를 올리는 방안과 지질학적 진동을 줄이는 새로운 검출 방법이 연구되고 있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는 끈이론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인 초대칭 입자를 찾고 있지만, 물리학자들에 따라 지금보다 1만 배 이상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다중우주의 존재는 우주 자체의 모습을 밝히는 의미도 있지만 또다른 의미도 있다. 우리가 수많은 우주 중 하나의 우주에 살고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다. 랜드스케이프 다중우주에 따르면, 우리 우주는 마치 신이 만들기라도 한 것처럼 은하와 생명이 탄생하기 딱 좋지만 전혀 특이한 우주가 아니다. 서로 다른 물리 상수를 지닌 수많은 다중우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사실 랜드스케이프 다중우주만이 아니다. 영원한 인플레이션 이론에서도, 다중세계에서도 우리 우주는 수많은 우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우리 우주가 우리 인간이 탄생하기 좋은 조건인 것은 그저 우연이다.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면, 다중우주론은 ‘우리 우주도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관측 가능한 우주 범위 밖에서 우주가 멈춘다는 증거는 없다. 이런 우주가 하나하나의 우주를 구성한다고 보면 전체가 다중우주를 이룬다.

 

 

 

[특징] 비슷한 우주가 반복된다

 

1단계 다중우주는 관측 한계를 벗어난 지역 너머에 존재하는 또다른 우주다. 이 우주의 특징은 우리 우주와 같은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점이다.

 

 

 

[아이디어] 우주의 반복을 계산할 수 있다

 

현재 관측 가능한 우주의 범위는 반지름 약 420억 광년으로 한정돼 있다. 관측 수단인 빛이 그 이상의 우주를 우리에게 안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어떤 외계 지적생명체라 해도 마찬가지다. 반지름 420억 광년의 공간이 하나의 우주를 구성하며, 우리 우주 밖에는 이런 우주가 바로 붙어서 늘어서 있다. 이 모습은 캡슐 모양의 우주가 계란판처럼 끝도 없이 늘어서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2003년 테그마크 교수의 계산에 따르면, 우리 우주 안에 있는 입자의 수는 10118개다. 입자 하나의 배열을 2진 부호로 계산하면 모든 입자가 만들 수 있는 배열의 경우의 수는 210118개다. 이 가능성에 따라 배열된 우주를 하나씩 전부 세트로 갖추려면 얼마나 큰 공간이 필요한지도 계산했다. 지름이 1010118m 규모다. 다시 말하면 확률상 1010118m를 지날 때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우주와 똑같은 우주가 한 번은 되풀이된다는 뜻이다(테그마크 교수는 2006년 발표한 논문에서도 다시 한번 계산을 했다. 이 때는 지수가 118이 아니라 115였다. 반면 2011년 브라이언 그린(Brian Greene, 1963~)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저서 [멀티유니버스]에서 행한 계산에서는 입자가 배열될 총 경우의 수가 1010122개로 다소 크다.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압도적으로 큰 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탄생] 무한 공간 속 도플갱어

 

바로 여기에서 제1단계 다중우주가 생길 가능성이 태어난다. 테그마크 교수의 주장이 사실이고 만약 우주가 1010118m보다 크다면, 확률상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와 입자의 배열 상태가 완전히 똑같은 우주가 다시 나올 가능성이 있다. 만약 우주의 크기가 무한이라면, 우리와 똑같은 우주 역시 무한 개 되풀이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와 아주 비슷한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지만 은하나 물질, 생명체의 상태는 조금씩 다른 우주가 무한 개 있다는 뜻이다.

 

 

[비판과 한계] ‘무한’은 쉽지 않다

 

 

우주배경복사 관측위성 ‘WMAP’의 측정 결과도 우주가 무한하거나 적어도 대단히 클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무한’이라는 가정은 만만치 않은 가정이다. 이형목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물리적으로 정말 무한이 존재할 수 있는가’는 함부로 사용하기 어려운 주제”라고 말했다. 박병철 대진대 물리학과 교수는 “수학적으로도 대단히 까다로운 가정”이라고 말했다. 그린 교수도 [멀티 유니버스]에서 “우주의 크기가 무한이라면 시간이 0일 때(탄생 시점) 우주가 아주 작은 점이었다는 가정을 할 수 없다”는 예를 들고 있다. 무한은 작게 만들어도 무한이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누벼이은 다중우주를 부정하기는 쉽지 않다. 관측 범위 밖에서 우주가 갑자기 벼랑 끝처럼 끝나리라고 믿는 편이 더 부자연스럽다. 우주배경복사 관측위성 ‘WMAP’의 측정 결과도 우주가 무한하거나 적어도 대단히 클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WMAP와 은하 적색편이 측정 결과를 종합해 보면 우주에서 물질은 거리에 비례한다. 이는 물질이 우주에 걸쳐 균일하게 차 있다는 뜻이다. 관측 범위를 넘어서도 같은 양상을 보일 수 있다. 이형목 교수는 “지평선(호라이즌) 부근에 있는 우주에 대한 연구가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 너머의 우주도 물리학적인 조건은 같다는 것이 현재의 결론”이라고 말했다.

 

 

 

 

영원한 인플레이션 다중우주는 두 가지 형태로 묘사된다. 첫 번째는 영원한 인플레이션 이론을 처음 제시한
안드레이 린데 미국 스탠퍼드대 물리학과 교수가 묘사한 포도송이 모양이다. 오늘날에는 테그마크 교수가 ‘빵 속 기포’라고 묘사한 형태로도 많이 표현된다.

 

 

[특징] 물리법칙이 다른 ‘딴세상’ 우주

 

2단계 다중우주는 우리 우주와 다른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는, 우리와 전혀 다른 다중우주가 존재한다고 본다. 끈이론과 관련 있는 다중우주 둘(주기적 다중우주, 랜드스케이프 다중우주)은 별도로 소개하고, 여기에서는 영원한 인플레이션 다중우주만 소개한다.

 

 

 

[아이디어] 인플레이션이 영원히 계속된다면?

 

 

인플레이션 우주론은 우주가 밀도가 무한한 한 공간에서 시작됐으며 초창기에 우주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는 시기가 있었다고 설명하는 인플레이션 이론을 바탕으로 한다.


인플레이션 이론은 우주가 밀도가 무한한 한 공간(우주의 평평도에 따라 하나의 점일 수도 있고, 끝없이 펼쳐진 무한 공간일 수도 있다)에서 시작됐으며, 초창기에 우주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는 시기가 있었다고 설명하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서는 우주가 척력을 발생시키는 입자(Inflaton, 인플라톤)의 장(field, 인플라톤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본다. 인플라톤장의 에너지(일종의 위치에너지)가 높으면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 마치 높은 산 위의 공이 골짜기로 굴러 떨어지면 위치에너지를 방출하며 공의 속도를 높이듯(운동에너지로 바뀌었다), 인플라톤 에너지도 낮아지면서 뭔가 다른 일을 한다. 이때 인플라톤이 하는 일은 물질과 암흑물질을 만드는 것이다. 마치 수증기가 응결하듯 물질(입자)이 생기고, 물질이 양자역학적인 요동 때문에 지역적으로 조금씩 밀도를 달리하면 별과 은하가 생긴다.

 

인플레이션 우주론에서는 우리 우주가 탄생 뒤 10-30초만에 인플라톤이 높은 에너지 상태에서 낮은 상태로 뚝 떨어졌다고 본다. 하지만 그 짧은 사이에 인플라톤의 영향으로 공간은 1025배로 팽창했다.

 

 

 

공간은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팽창했고, 초기의 초고온 상태를 벗어나 차갑게 식어버렸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이론에 따르면, 우주가 아직 작을 때는 온도 등의 정보를 모든 곳과 서로 충분히 교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온도가 균질해졌고, 137억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주 초창기에 최초로 방출한 빛이 남긴 온도 흔적(이것이 ‘우주배경복사’다)은 균질하다. 우주 전체에서 겨우 1000분의 1 정도의 차이밖에 없을 정도다. 인플레이션 없이 이렇게 될 확률은 대단히 낮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이론은 우주의 탄생을 잘 설명해 준다는 평을 듣고 있다.

 

 

 

[등장] 끊임없이 ‘새끼 우주’가 태어난다

 

 

 

이런 인플레이션 우주론에서 다중우주의 아이디어가 나온다. 인플레이션 우주론 중에는 인플레이션이 한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우주 여기저기에서 계속해서 일어난다는 ‘영원한 인플레이션(Eternal Inflation)’ 이론이 있다. 이것은 인플라톤 입자가 ‘모든 상태가 가능한’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때문에 에너지 상태가 낮은 상태로 고정되지 않고 변덕스럽게 변해서다.

 

이런 인플라톤 장의 요동 때문에 우주에는 인플라톤 에너지의 크기가 미세하게 다른 지역이 여기저기 마구 섞여 있게 된다. 이 중 에너지가 상대적으로 큰 지역에서는 팽창이 일어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지역에서는 뻥 뚫린 공백이 생기고 안에 물질과 은하가 생길 것이다. 이 과정이 우주 대부분의 지역에서 영원히 계속된다. 그 결과, 우주 안팎에 우주가 새끼처럼 계속 생겨난다. 이 우주는 입자에 질량을 주는 힉스 등 입자의 특성이 다르다. 그래서 제1우주와 달리 물리법칙이 완전히 다른 우주가 태어날 가능성이 있다.


인플레이션 다중우주론에 따르면, 우주 안팎에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며 새끼 우주가 태어나는데, 이 우주들은 서로 물리법칙이 완전히 다를 수 있다.

 

 

 

 

 

[비판과 한계] 반드시 ‘딴 세상 물리학’을 낳는 것은 아니다

 

이 이론이 증명되려면 먼저 인플레이션 이론의 타당성이 증명돼야 한다. 인플레이션 이론 자체는 우주배경복사 관측으로 설득력을 지니게 됐지만, 1980년대에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 1931~) 영국 옥스퍼드대 물리학과 교수가 주장했던 ‘초기조건 문제(인플레이션이 다른 형태로 일어나거나 심지어 일어나지 않고 지금과 같은 ‘평평한 우주’가 나타날 확률이 훨씬(1010100배) 높다는 주장)이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또 핵심인 인플라톤장은 측정을 통해 증명되지 않은 가설적인 장이다.

 

영원한 인플레이션이 만든 다중우주의 흔적을 검출하려는 시도도 있다. 매튜 클레번 미국 뉴욕대 물리학과 교수는 2011년 한 논문에서 “팽창하는 거품 다중우주가 서로 충돌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우주배경복사에 특정한 무늬(온도 차이)를 남긴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개별 우주가 팽창하는 속도보다 우주끼리 서로 멀어지는 속도가 더 빨라 만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우주마다 물리법칙이 다르다는 가정도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조지 엘리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대 수학과 석좌교수는 2011년 8월 미국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기고문을 통해 “영원한 인플레이션 자체만으로 다중우주마다 다른 물리법칙이 있다는 결론을 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양자역햑의 ‘다세계 해석’에 따르면, 우주는 양자의 파동함수에 따라 끊임없이 갈라진다.

하나하나의 우주가 다중우주를 구성한다.

 

 

[특징] 세계가 갈라져 독립된 다중우주가 된다.

 

3단계 다중우주에서는 양자역학의 기묘한 특성이 지금도 무한한 다중우주를 낳고 있다고 본다. 나(정확히는 나를 구성하는 입자들) 역시 매 순간 우주를 가르고 있다.

 

 

[아이디어] 양자역학 속 ‘해석’의 문제

 

양자역학에서 가장 기묘한 성질은 양자역학의 심장에 숨어 있다. 바로 양자역학을 수학적으로 기술한 ‘슈뢰딩거 방정식’이 때때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슈뢰딩거 방정식은 시간에 따른 양자의 상태를 담고 있는 함수, 즉 양자의 ‘파동함수(어떤 계의 정보나 상태를 담고 있는 함수)’를 구하기 위한 방정식이다. 그런데 고전 물리학과 달리 슈뢰딩거 방정식의 해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에너지 상태를 설명하는 파동함수로 나온다.

 

그래서 양자역학에서는 구한 해를 ‘해석’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해석을 쉽게 이야기하면 “서로 다른 상태(위치나 에너지 등)의 양자가 동시에 존재하는가 또는 그 중 하나만 존재하는가” 등을 결정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책상 위 볼펜의 위치를 나타내는 파동함수를 구했는데(슈뢰딩거 방정식을 풀었음), 볼펜의 위치가 책상 아래 30cm, 위 15cm, 5500km 상공, 이런 식으로 나왔다면 “볼펜이 세 군데에 동시에 존재하는가, 아니면 (어떤 이유 때문이든) 이 중 하나에 존재하는가”를 해석해야 한다.

 

고전 물리학에서는 볼펜 하나가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가능하다. 입자는 가능한 모든 곳에 동시에 위치할 수 있는 기묘한 성질이 있다(중첩). 좀더 정확히 설명하면 책상 위, 아래, 5500km 상공 등 세 곳에 볼펜(입자)이 있을 수 있고, 그 중 어디에 있는지는 관측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그래서 같은 볼펜이지만 관측 전에는 여러 곳에 동시에 위치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기묘한 성질을 설명하기 위해 물리학자들이 여러 가지 해석을 제시했다.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세 곳에 “확률적으로 존재한다”는 해석이다. 이에 따르면 파동함수는 입자가 어떤 상태를 지닌 확률을 나타내는 함수가 된다. 입자의 위치가 각각 ‘책상 아래, 위, 5500km 상공에 각각 90%, 9%, 1% 존재할 확률’이라는 식이다. 그러다 관측을 하면 확률함수가 작동하지 않고 한 곳에 100% 존재하는 것으로 바뀐다. 기이해 보이지만, 이 해석은 양자역학을 이용한 수많은 계산과 예측에 잘 맞는다. 이를 받아들인 해석이 닐스 보어(Niels Bohr, 1922~2009) 등이 확립한 ‘코펜하겐 해석’이며, 현재 양자역학 해석의 주류다.

 

 

[등장] 다세계 해석, 양자역학 접수하나

 

그런데 중요한 문제가 있다. 막상 관측을 통해 양자의 상태를 하나로 결정하는 과정은 슈뢰딩거 방정식에 없는 내용이다. 즉, 방정식을 방정식에 없는 방법으로 푸는 셈이다.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이를 파동함수가 ‘붕괴한다’고 표현하는데, 수학적으로 엄밀하지 못한 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있다. 여기에서 세 번째 단계의 다중우주가 태어날 가능성이 나온다. 미국의 양자물리학자 휴 에버렛 3세(Huhg Everett III, 1930~1982)는 코펜하겐 해석에 반대해 ‘다세계 해석’을 내놨다. 이 해석에 따르면, 관측을 해도 파동함수는 붕괴하지 않는다. 책상 아래, 위, 5500km 상공 모두에 볼펜이 존재한다. 다만 세 곳에 각각 볼펜이 있는 세계가 ‘갈라질’ 뿐이다. 그리고 갈라진 세계 하나하나가 다중우주다.

 

이 해석에 따르면 우리(정확히는 우리를 구성하는 입자들)가 행하는 모든 판단과 행동도 다 우주를 갈라놓는다. 일상에서도 무수히 많은 우주를 만들고 있다는 점이 다른 거대 다중우주 이론과 다른 점이다.

 

 

 

[비판과 한계] 다세계 해석, ‘해석’을 증명할 방법이 있는가

 

양자역학이 일으키는 기묘한 현상 자체는 이미 숱한 실험과 예측으로 거의 완벽하게 증명돼 있다. 하지만 그것이 코펜하겐 해석의 설명대로인지, 다중세계 해석대로인지를 알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 특히 수많은 입자로 구성된 현실 우주가 정말 갈라질지 알 방법은 더더욱 요원하다. 데이비드 앨버트(David Albert) 미국 컬럼비아대 철학과 교수(물리철학)는 2007년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어느 해석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중첩 현상을 실험하고 있지만, 1000개 입자를 실험한 정도에 불과하다”며 “일부 학자들이 106개 입자를 지닌 바이러스를 대상으로 실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세계의 ‘갈라짐’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박병철 대진대 물리학과 교수는 “세계가 무수히 갈라진다는 사실은 쉽게 제안할 수 있고, 이해하기도 쉽다. 그런데 그렇게 갈라진 세계의 ‘나’와, 마찬가지로 무수히 갈라진 세계의 ‘너’가 같은 세계에서 만난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하고 반문했다. 문제는 세계가 갈라지는 현상이 아니라, 그 세계가 ‘나’와 너’에게 동일하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 확실한 설명이 다중세계 해석에는 없다.

 

시뮬레이션 다중우주는 수학이 곧 물리적 우주와 같다고 본다. 상상할 수 있는 어떤 물리법칙이 지배하는 우주라도 만들 수 있다.


[특징] 가능한 우주는 모두 존재할 수 있다

 

테그마크 교수의 마지막 4단계 다중우주 다. 입자의 상태, 상수, 파동함수 등 물리학적 조건을 아예 자유자재로 바꾼 우주가 존재할 수 있다. 심지어 일부러 창조할 수 있다.

 

 

[아이디어] 우주와 수학은 다르지 않다

 

4단계 우주는 테그마크 교수가 직접 제안한 아이디어로, 추상적인 수학 속에 존재하는 우주다. 하지만 수학적 구조와 실제 물리적 우주 사이에 차이가 없다면 어떨까. 수학적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우주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궤변 같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물질을 구성하는 것은 입자고, 입자의 성질을 규정하는 것은 입자의 종류와 입자가 만드는 장(field)이다. 입자의 장은 장 방정식으로 결정될 것이고, 입자는 지니고 있는 에너지, 파동함수 등에 따라 설명된다. 장과 장 방정식, 입자와 입자의 파동함수 등 ‘물리적 우주’와 ‘수학’ 사이의 차이를 명확히 밝히기 어렵다. 굳이 구분하자면, 물리적 우주가 있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수학을 동원했다고 볼지, 반대로 수학이 있고 이것에 대응하는 물리적 우주가 있는지의 차이 정도다.

 

 

 

 

[등장] 상상 가능한 모든 우주를 만든다.

 

가지 입장 중 ‘물리적 우주가 있고 수학은 설명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제외하면, 우주는 곧 수학과 동일해진다. 즉 수나 방정식, 함수가 존재하면 대응하는 물리적 실체를 찾을 수 있다(실제로 입자물리학의 많은 입자를 이런 순서로 찾았으니 황당한 생각은 아니다). 따라서 컴퓨터로 다양한 수학적 우주를 만들어 물리적 다중우주를 만들 수도 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수학 법칙을 지닌 우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우주도 이런 우주 중 하나가 된다. 이런 이유로 테그마크 교수는 ‘궁극적 다중우주’라는 말을 썼다.

 

 

 

 

[비판과 한계] 이것이 ‘진짜 우주’일까

 

이 다중우주는 한 가지 심오한 결론으로 우리를 이끈다. 만약, 만들어진 시뮬레이션 우주 안에 의식이 있는 생명체가 있다면 어떨까. 누군가가 자신과 자신의 우주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면, 우리는 고차원적인 곳에 있는 ‘누군가’가 우리 우주를 포함한 시뮬레이션 다중우주(또는 궁극적 다중우주)를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다음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과학일까.”


또다른 의문도 있다. 서로 다른 수학적 구조를 지닌 다양한 시뮬레이션 다중우주 가운데 ‘진짜 우주’가 따로 있는가. 만약 있다면 이들을 시뮬레이션화한 컴퓨터와 프로그래머가 쓴 수학이 진짜 우주일까. 그렇다면 시뮬레이션 다중우주는 가짜 우주일까.

주기적 다중우주.

 

 

 

[특징] 시간에 따라 나타나는 다중우주

 

이 우주는 나머지 다중우주와 전혀 다르다. 다른 다중우주들이 모두 공간 속에 여러 개의 우주가 동시에 존재하는 형태인데 반해, 이 다중우주는 시간 속에 여럿 존재하는, 주기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다중우주다.

 

빅뱅, 그리고 뒤이은 인플레이션을 떠올려보자. 이 이론은 우주가 어떻게 ‘태어나는지’를 설명해 준다. 하나의 특이점에서 우주가 시작됐고, 계속해서 팽창하고 있다. 우주에 시작점이 있다는 것은 이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전에는 우주가 없었다. 영원한 인플레이션이론에서 아무리 인플레이션 다중우주를 이야기해도, 모두 ‘우주가 시작된 뒤’에 만들어졌다는 점은 동일하다.

 

하지만 만약 이 ‘시작’점이 사실은 시작이 아니라면 어떨까. 빅뱅으로 우주가 태어나는 순간 이전에도 우주가 존재했다. 우주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빅뱅과 인플레이션을 일으켰고, 새로운 우주가 탄생했다. 하지만 이 우주도 시간이 지나면 어떤 이유로 다시 대폭발을 일으킨다. 이 과정이 무한히 반복된다. 빅뱅과 인플레이션이 탄생시킨 하나하나의 우주는 각각 모두 다른 우주다. 시간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지고를 반복하기 때문에 ‘다중’우주가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시간을 하나의 긴 줄에 비유하고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우주를 줄에 있는 매듭이라고 보면, 여러 개의 우주가 시간이라는 차원에 나란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시공간의 차원에서 보면 시간과 나머지 공간(3차원)을 구분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주기적 다중우주도 어엿한 다중우주다.

 

사실 ‘주기적 다중우주’ 아이디어는 옛날부터 있었다. 우주가 주기적으로 팽창했다 다시 쪼그라들어 점으로 작아졌다는 아이디어가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이론물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말 그대로 아이디어에 불과했다. 하지만 끈이론을 통해 정교한 세부 사항을 설명할 수 있게 됐다. 몇 가지 설명이 있는데, 이 가운데 하나가 2000년대 초반 큰 인기를 얻은 ‘브레인 충돌 빅뱅 이론’이다.

 

 

 

브레인 충돌 다중우주. 우리 우주가 끈이론의 고차원 시공간을 떠다니는 3차원 공간(브레인)이라고 보고,

근처에 있는 다른 브레인(평행한 다중우주)과 주기적으로 충돌을 일으킨다고 보는 가설이다.

이 그림에서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공간(3차원)에서 묘사하기 위해 브레인을 2차원 평면으로 묘사했다.

 

 

 

[아이디어] 새로운 끈이론이 낳은 우주들

 

오늘날 끈이론은 닫히고 열린 작은 끈만 다루는 이론이 아니다. 끈이 방향이 하나인 1차원 요소라면, CD나 종이 같은 2차원, 튜브 같은 3차원 요소까지 다양한 차원의 요소를 다룬다. 최신 끈이론인 M이론에서는 다양한 차원의 공간이 9차원까지 있으며, 이들이 11차원 시공간 속을 떠다닌다. 사람은 3차원 이상의 공간을 상상할 수 없으니 차원을 낮춰 비유하면, 3차원 허공에 2차원 마법의 양탄자가 떠다니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이들 하나하나의 공간은 ‘브레인(Brane)’이라고 하며 우리가 사는 우주도 그 중 하나인 3차원 브레인이라고 본다(보기에 따라 브레인 하나하나를 다중우주로 여길 수도 있다).

 

브레인 충돌 빅뱅 이론에 따르면 이들 브레인(몇 차원이든 상관없다)은 더 큰차원의 시공간 속에서 가까이 있을 수 있고, 충돌도 할 수 있다. 이 충돌이 바로 빅뱅이다.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일단 충돌이 일어나고 나면(①), 두 브레인은 마치 심벌즈를 탕 치고 난 다음처럼 서로 튕겨나가며 멀어진다. 이 과정에서 팽창이 일어난다(②). 두 브레인 사이의 중력 때문에(중력은 중력자라는 닫힌 끈이 매개하는데, 브레인 사이를 떠돌아다닐 수 있는 유일한 끈이다) 멀어지는 속도는 점점 느려지다 어느 순간 멈추고는(③) 다시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멀어질 때는 브레인의 팽창 속도가 느려지고, 멈췄을 때 쯤에는 물질 농도가 희박해진다. 가까워질 때 브레인의 팽창 속도는 반대로 빨라진다(④). 그리고 다시 심벌즈가 부딪히듯이 충돌이 일어나며 우주는 진공에서 다시 시작한다.

 

이 이론은 빅뱅 이후 팽창속도가 느려지다가 약 70억 년 이후 다시 빨라져 현재에 이르렀다는 연구 결과와 일치한다. 이에 따르면, 우리 우주는 다시 브레인이 서로 충돌을 향해가고 있는 중이다.

 

 

 

 

[등장] 주기적 다중우주의 가능성

 

주기적 다중우주론은 표준 빅뱅이론과 인플레이션 우주론이 갖는 단점을 몇 가지 해결해 준다. 가장 큰 장점은 이전 이론이 갖던 골치 아픈 난제를 피해간다는점이다. 바로 우주의 시작이 언제인지를 물을 필요가 없어진다. 우주에는 시작도 끝도 없어진다. 우주상수(또는 암흑에너지)와 관련한 미스터리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 이론을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인 폴 스타인하르트(Paul Steinhardt, 1952~) 미국 프린스턴대 수리과학센터 교수는 2006년 미국 뉴포트에서 열린 14회 ‘초대칭과 기본 상호작용력의 통일’ 학술대회에서 “우리 우주가 하필 ‘딱 좋은’ 우주상수를 지닌 이유를 굳이 랜드스케이프 다중우주를 통하지 않아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비판과 한계] 관측을 통해 검증할 수 있을까

 

 

미국 워싱턴주에 위치한 중력파검출기 '라이고(LIGO)'의 모습. 2012년 현재 업그레이드 중이다. 중력파를 찾으면 주기적 다중우주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브라이언 그린(Brian Greene, 1963~) 교수는 [멀티 유니버스]에서 “현재 이 이론을 진지하게 믿는 학자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다중우주가 그렇듯, 이 이론도 관측을 통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다. 만약 관측에 성공해서 브레인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면 브레인의 충돌을 전제로 한 주기적 우주의 존재 가능성도 높아진다. 하지만 브레인 관측은 아직은 요원하다.


관측 증거 후보로 유력한 것은 우주 초기의 중력파. 빛을 이용해 관측이 가능한 시간적 한계는 빅뱅 이후 38만 년 이후부터다. 이 경계를 “최후산란면”이라고 하며, 그 이전은 오직 중력이 시공간에 미친 요동인 ‘중력파’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 이형목 교수는 “주기적 다중우주설에서는 빅뱅 직후 중력파가 나오지 않는다고 본다”며 “반면 인플레이션 우주론에 따르면 중력파가 나와야 하기 때문에 중력파 검출 여부가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력파 검출은 현재 미국의 ‘라이고(LIGO)’ 등 몇 곳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아직은 직접 우주 초기 중력파를 검출할 해상도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이 문제는 검출기의 성능을 높이고 지구 밖에 검출기를 보내는 방법으로 해결할 계획이다.

랜드스케이프 다중우주의 모습은 제2우주(영원한 인플레이션 다중우주) 중 빵의 기포 모양을 한 우주와 비슷하다.
공간 안에 우주상수가 다른 또다른 새끼 우주가 생기며, 이 과정이 반복되며 다중우주가 된다.


[특징] 우주를 설명할 새로운 생각

 

물리학자들은 다시 한번 오래 전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이 제기했던 우주상수’를 떠올렸다. 먼 천체(초신성) 연구 결과, 우주가 팽창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새로 발견된 것이다. 팽창 속도가 점점 빨라지려면 서로 당기는 이들 천체를 강제로 멀리 떼어놓는 힘, 즉 반발력에 해당하는 힘이 따로 존재해야 했다. 아인슈타인이 우주가 수축하지 않도록 추가한 우주상수가 후보가 될 수 있었다.

 

오늘날 물리학자들은 우주상수를 ‘진공이 원래 가진 고유 에너지의 밀도’로 본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진공은 물질과 에너지가 없는 상태가 아니다. 입자와 반입자가 끊임없이 생겨나고 다시 서로 충돌해 끊임없이 사라지는 상태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가 나온다. 우주는 이 진공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이 에너지는 미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천체 등 물질이 갖는 중력(끌어당기는 힘으로, 결국 우주를 수축시킨다)에 대항해 우주를 팽창시킨다.

 

 

 

 

현재 관측으로 확인된 우주상수는 대단히 작다(물리학자들이 쓰는 단위 없는 기준으로 10-123). 그리고 시간에 따라 변화하지 않는 값, 즉 상수다. 그런데 이 값이 정확히 지금의 값이 된 이유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오묘하게도 지금의 우주상수는 물질과 은하를 만들고, 생명체를 탄생시키기에 딱 맞는 값을 가지고 있다. 스티븐 와인버그 미국 텍사스대 교수는 “우주상수가 지금보다 수백 배 커지면 생명은 물론 은하도 탄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우주를 (인류를 탄생시키기 위해) 신이 만들었다”는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주장을 부정하기에는 우리 우주의 우주상수가 너무나 절묘했지만, 새로운 다중우주론이 이 문제를 해결할 후보로 등장했다.

 

 

 

 

 

[아이디어] 우주 속에 다른 차원의 우주가 10500개?

 

끈이론이 예측하는 두 번째 다중우주는 서로 다른 진공 에너지, 즉 우주상수를 지니는 우주가 굉장히 많다고 본다. 이것은 끈이론에서 진공 에너지가 가질 수 있는 값의 범위가 무척 넓기 때문에 가능하다. 마치 산꼭대기에 있는 공이 낮은 골짜기로 가면 안정된 상태가 되듯, 진공 에너지도 낮은 값일수록 안정한 상태가 된다. 따라서 만약 진공 에너지의 분포가 주변보다 낮은 곳이 있다면, 이 조건은 안정한 상태기 때문에 그 값을 진공 에너지로 하는 우주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

 

끈이론에서 이렇게 진공 에너지 분포에 영향을 미치는 조건은 무수히 많다고 본다. 앞서 말했듯 오늘날의 끈이론인 M이론에서는 모두 11차원의 시공간이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는 4차원(3차원 공간과 시간) 외에 다른 차원은 어디에 있을까. 먼저 앞서 제5다중우주에서 이야기했듯, 우리가 볼 수 없는 고차원 우주 속을 우리가 떠다니고 있다는 설명이 있다. 또 하나의 설명은 남은 차원이 우리가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차원 속에 숨어 있다고 본다. 이런 차원을 ‘여분차원’이라고 부르는데, 이 설명에 따르면 친숙한 3차원 공간의 어떤 한 점을 확대해 보면 아주 작게 말려있는 6차원 또는 7차원의 공간이 있다. 이 공간의 크기는 플랑크 길이(10-33cm. 끈이론의 끈 길이가 이 정도 규모다) 단위이기 때문에, 4차원 시공간에서는 볼 수 없고 확대해야만 볼 수 있다. 마치 건물 위에서 바닥에 널어 둔 이불을 보면 그냥 평평한 2차원 평면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내려와 보면 고리 모양으로 만들어진 작은 실밥이 보이는 것과 같다.

 

이런 여분차원에는 진공 에너지 분포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여럿 있다. 여분차원은 도넛 모양의 고리가 여러 개 꼬여있는 형태다. 꼬인 모양, 개수, 크기나 길이,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브레인과 다발(‘플럭스(flux)’라고도 하며 끈에 작용하는 힘을 의미한다)의 형태 등에 따라 각기 다른 에너지를 갖는다. 끈이론에서는 이런 조건의 조합이 10500개 존재한다고 본다. 다시 말해 서로 다른 여분차원이 10500가지 존재할 수 있다.

 

이 이론을 우주론에 적용해보자. 진공 상태의 우주(시공간) 모든 점을 플랑크 길이 규모로 확대해 보면 이렇게 숨어 있는 여분차원이 존재하며, 이들은 서로 다른 에너지를 지닌다. 이 에너지가 바로 진공에너지다. 그리고 이 진공에너지 가운데 앞서 말한 조건에 따라 상대적으로 ‘안정한’ 상태에 있는 점이 있다. 이 안정한 지점도 무수히 많다. 바로 이것이 끈이론에서 다양한 범위의 우주상수(진공 에너지)를 지니는 진공 공간(우주)이 탄생할 수 있는 비법이다. 고등과학원 물리학과 석좌교수이기도 한 레너드 서스킨트(Leonard susskind, 1940~) 전 미국 스탠포드대 물리학과 교수는 이렇게 다양한 에너지 안정도를 지닌 광범위한 상태 목록의 조합을 봉우리와 골짜기가 있는 자연에 비유해 ‘풍경(또는 경관. 랜드스케이프)’이라고 이름 지었다.

 

 

 

우주상수의 범위 예. 그래프에서 주변장(field)보다 상대적으로 값이 낮은 곳은 안정된 곳이기 때문에 모두 우주가 생성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 우주의 우주상수는 이 가운데 0보다 약간 큰 지점에 위치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끈이론에서 계산한 값은 대부분 음수 결과를 나타내고 있으며, 양수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우주상수가 음수인 우주는 팽창하지 못하고 쪼그라들어 오늘날 존재한다 해도 다중우주를 구성할 수 없다. 하나하나가 안정한 상태의 우주가 될 수 있다. 단, 음수 우주상수를 지닌 우주는 쪼그라든다.

 

 

 

[등장] 풍경 속 다중우주의 탄생

 

일단 이렇게 탄생한 우주 중 우주상수가 양의 값을 우주는 팽창한다(음의 값을 지닌 우주는 쪼그라든다). 팽창하는 우주가 탄생한 것이다. 그런데 복잡한 문제가 더 있다. 양자역학에는 ‘터널 효과’가 있다. 이에 따르면, 양자는 벽을 뚫고 이동하는(정확히는 벽 너머에서 발견되는) 현상이 가능하다. 확률이 다를 뿐 양자는 여러 개의 상태로 존재할 수 있고, 위치 역시 그런 상태 중 하나기 때문이다. 이 논리를 풍경에 적용하면, 앞서 말한 상대적으로 안정한 에너지 상태 가운데 일부는 무작위로 에너지가 더 낮은 다른 안정한 상태로 변할 수 있다. 이는 그 상태에서 탄생한 우주가 다른 우주상수를 지닌 전혀 다른 우주로 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우주 안에 새로운 우주가 생긴다. 물 속에서 갑자기 물분자 하나가 기름으로 바뀌었다면 그 지점은 작은 기름 방울로 분리될 것이다. 공기가 됐다면 기포가 될 것이다. 이 기포 가운데 역시 우주상수가 양의 값인 우주는 팽창한다. 새끼 우주가 태어나는 셈이다. 만약 이 안에 또다시 터널 효과가 일어나고, 역시 우주상수가 양수라면 손자 우주로 자라난다. 이렇게 되면 시공간은 그 안에 작은 새끼 거품이 자라고 있는, 역시 팽창하고 있는 거품 우주로 가득차게 된다. 각각의 거품은 서로 독립돼 있으며, 우주상수를 비롯해 모든 물리법칙이 다른 다중우주가 된다.

 

 

 

 

[비판과 한계] 10500개의 우주상수는 어디로 갔는가

 

랜드스케이프 다중우주의 강점은 다양한 우주상수를 지닌 우주를 찾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끈이론을 통해 여분차원의 다양한 조건을 계산하면 다양한 진공에너지 밀도(우주상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얻은 우주상수들 중에 우리우주와 같은 우주상수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초끈이론의 범주에서 수학적으로 얻은 우주상수 중 값이 양수인 우주상수는 거의 없다(우리 우주의 우주상수는 0보다 약간 큰 양수다). 이필진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교수는 “음수인 우주상수는 무수히 많이(101000개) 계산해냈지만, 양수인 해는 현재까지 한 가지 종류만 알려져 있다”며 “끈이론 내부에서도 수학적으로 다중우주가 있느냐에 대해 여전히 확신하지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음수인 우주상수를 갖는 우주는 아무리 많아도 은하가 만들어지지 않고 수축해 버려 다중우주 논의에서는 다룰 이유가 없다. 이 교수는 “음수 우주상수 계산 결과 중 일부를 수학적인 방법을 이용해 양수로 만드는 방법이 세계적으로 연구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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