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PnoKwSDQ6yU
근래들어 이런 저런 일들이
생기고 바쁘게 살면서
육신을 빌어 온 한 개체로서
현실적인 상황에 묶이다 보니
사회적, 윤리적 통념에 의해
원래의 내 본 실체의 활동이
자꾸만 엮이게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물질을 이루는 온갖 원소들의
물리화학적 작용을 나약한
몸뚱아리로 어떻게 바꿀 수는
없는 것이고,
활동이 넓어지고 의식이
확장되노라면 그만큼의
표면적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다 보면,
매순간 맞닥뜨리는 온갖
상념과 예의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무겁게
나의 모든 것을 짓누르는 느낌.
그래도 이왕 몸을 가지고
살아가고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한 인간의 삶이기에
때로는 체념하고 때로는
그러려니 하는 낙관을
유지하고자 애쓰는데
그것이 또 그렇게 쉽지는
않는다는 것이 함정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많은 철학자들이나
동서고금의 고승 대덕,
성현들이 이러한 인간사의
문제 때문에 논리적이면서도
추상적이고 현학적인
수사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스스로 알고 깨닫게끔
성찰의 도구를 꾸준하게
제시해 주었음에도
여전히 세상은 바쁘고
저마다의 삶은 복잡다난하게
돌아간다.
하인리히의 사고법칙에서
1:29:300의 큰 사고가 발생
하는 원리를 설명하고
있는데 가만히 들여다 보면
참으로 맞는 말이다.
아주 즉흥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어떤 한 사람의 반응이
나타나기까지는 그 이전에
굵직한 29번의 전조가 있고
300여번의 자잘한 일들이
얽히고 섥히게 되어 있다는
것인데..
청허처럼 점잖게, 가급적
윤리적으로 위상에 걸맞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일견 외형적으로
비쳐지는 타인들에 대한
나의 모습을 가급적 손상
시키려 하지 않는 노력에
비해 그 기간이 누적될수록
다른 사람들의 시각이
자꾸 타락해간다는 느낌이
든다.
인간은 어리석다.
청허도 어리석기 그지 없으니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게다.
그렇다고 자제하고 억누르는
모습만 매냥 보여줄 수는 없다.
지금 자신들의 현재 위상이
단순히 자신들의 똑똑함, 능력
이라고 믿는 사람이라면
앞으로 청허는 거르려고 한다.
인드라의 망으로 엮여있는
삼라만상의 개전일체론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은
청허도 피곤하다. 언제까지
지켜봐줄 수는 없는 것이고
이제 그들은 그들만의 힘과
능력과 운빨과 노력으로
살아가게끔 놓아주고 싶다.
억겁의 인연이 그런
자유로움을 꽁꽁
메어싸고 있지만
언젠가
청허도 자유롭고 싶다.
다 팽개치고 산으로 호수로
외국 명소로 훌쩍 떠나고
심산유곡에서 잠시라도
숨고르고 명상하고 호흡하고
행공하면서 나의 원류를
찾아가고 싶다.
원효가 그러했듯이 경허가
그러했듯이 청허의
정신적 스승인 청산이
그러했듯이 툭 놓고
만사 던져놓고 나만의
세상 속에서 숨고르고
적경 속에서 진공의 참 맛을
마음껏 누리고 싶다.
나의 얼별이 울고 있다.
그러고 싶다고 그러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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