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장마가 육지를 난무하면서 사람들을 지치게 하지만,
이 곳 제주의 남쪽은 흐린 날씨에 가끔씩 비만 흩뿌릴 뿐
이렇다 할 폭염은 그다지 느끼지 못하고, 몇 주간 계속 된
주문 폭주와 산적한 업무를 처리하느라 주말의 여흥을 통
즐기지 못한 시점에 오늘은 비가 온다는 예보에도 그냥
길을 걷고 싶었다. 비가 오면 맞고, 바람이 불면 시름을
흩날리면 되는 것인데..마침 제주오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오사모)에서 지난번 9코스에서 멈췄던 올레길 10코스를
진행한다기에 잠시 갈등하다가 가기로 했다. 모이는 장소는
모슬포 항 근처..
집결지에서 그동안 녹슬지 않았나 셀카 테스트..변함없다..
왼쪽 뒷 줄부터 김씨님, 회오리님, 베로니카(호주의 비타민제 베로카?), 파워 레인저님(무시무시하다)
마리아님, 하늬바람님, 앞쪽 왼쪽부터 오늘의 산행 주관자 박하향님, 그리고 옆지기 박하`스님..
원당봉님은 워낙 인물이 출중하여 시시한 카메라에는 노출을 삼가하신다고..^^
표선해수욕장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모슬포 해안가..마치 철지난 겨울바닷가 같은 느낌..
일렁이는 파도는 철썩이며 자신을 노래하고 흐린 하늘은 못내 고향을 그리워 하는 나그네
마음처럼 진회색으로 만물을 은은하게 비춰준다..
저 끝 정점에 도야지 코가 덩그러니 숨을 쉰다..데칼코마니는 언제 어디서든 존재한다..
부드러운 흙길과 오른쪽의 파도소리 벗삼아, 뉘라 할 것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을 내 딛는다..사람은 편안하게 걸을 때 마음도 같이 원래의
평안함을 찾아간다.
파도가 전해주는 심해의 이야기를 해안가 돌들이 맞장구를 치는 소리가 들린다.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명상을 하노라면 실제 그들의 감성도 같이 전해져 오는 느낌..
그저 급할 것 없이 터벅 터벅 걸어내는 행자들의 마음에는
무엇을 지워내고 무엇을 채워넣어갈 것인가? 뒷 모습에는 평안함이 묻어난다..
누가 봐주는 사람 없어도 그대 꽃들은 말을 섞고 하늘을 담아 수수한 아름다움을 펼쳐내니,
자연스러운 그 향취가 지나는 행자와 나그네의 마음을 치유하누나..
공언한대로 반바지로 이 습기 가득 머금은 제주 올레길을 유쾌하게 걸어내는 하늬바람님..
수수한 미소가 사람의 깊이를 은은하게 표현해낸다..
가노라면 진창길도 있고 그것을 에둘러 엮어내는 지혜로움이 그래서 필요한 것일게다.
박하`스님의 절묘한 밸런싱 추라이럴..나이스~!!!
누군가 나에게 물으면, 이렇게 물으면 " 초록은 무엇인가요? "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소 " 화려함을 애써 감춘 자연의 생명" 이라고..
이 사진을 찍기 위해 오빠에서 아저씨로 호칭이 변경되기도 했다..^^
일제시대에 일본군들이 제주도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만들어 놓은
전투기 격납고, 아직도 튼튼하게 왠만한 전투기용으로 써도 좋을 정도이다.
뒤에 우람하게 서 있는 산방산의 위용이 압도적이다.
또다시 작은 개울이 생겼다. 하지만 주관자의 지혜로움으로 바이패스..
청허가 능공허보, 답설무흔의 경공을 보여주려 했으나 참았다..^^
적 전투기들의 공습을 속이기 위한 디코이(Decoy)인줄 알았으나 누군가의 작품이란다.
2차대전 초기 가장 위력적인 전투기였던 미쯔비시사의 제로센 전투기다..
종전무렵에는 신풍(가미가제) 자살용으로 쓰였다.
잠깐의 휴식과 간식을 취하고 4.3 추모비를 향해서 간다.
이 때부터 중단전이 답답해져 옴을 의아하게 느끼면서 갔더니..
억울하게 숨져간 고혼들을 위로하기 위한 추모비..담배라도 한개피 피워놓으려 했으나 놓을 곳이 없다.
저 웅덩이가 바로 수백구의 그 당시 영문도 모르고 억울하게 숨져간 고혼들의
유해가 발굴된 곳이다. 중단전이 그토록 강렬하게 공명을 일으킨 이유가 이것이었다.
슬픔과 억울함, 60여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그들의 애닯은 사연이 천지를 이토록
울려대니, 그 아픔을 모두 담아내어 위로하지 못하는 어설픈 행자의 못남이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 온다.
바라건대 이제 흩어진 혼백에 미련을 거두시고 제주의
아름다움을 품어 귀천하소서..그 곳에서 이제는 평안하게
쉬시기를 긴 호흡 실어서 염원합니다.
사진 찍고 묵념하고 염원하니 항상 뒤꽁무니 따라가기 바쁘다..ㅎㅎㅎ.
섯알오름으로 가는 길..섯은 서쪽, 알은 언덕이라는 뜻이라는 주관자님의 친절한 설명..
송악산 코스를 꼭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에 몇 분은 중간지점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나는 송악산으로 향한다. 함께 해 주신분들에게는 감사할 뿐..
전부 오늘 처음 뵙는 분들인데 그렇게 낯설지는 않음은
자연과 함께 하는 공통의 의지와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한가로이 풀을 뜯는 말들과 중간 크기의 망아지..평화로움은
본능에 충실할 때 가장 크게 다가오는 것인가?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다. 군시절 함께 강원도 자락을 뒹굴었던 특전사 출신 선임하사님과
너무 닮았다..나중에 이름이나 확인해 보면 어떤 연고가 있을지도..
송악산 산책길에서 내려다 본 제주의 서남쪽 바다..날씨의 무드와
맞물려 차분함과 싯구를 절로 나오게 한다.
멀리 내어 보니 마음의 지평을 깔아 낸 무념의 바다
고개 숙여 내려보니 번잡한 세상만사 속내음을 끓고
하나 가득 가슴에 품었더니 이내 하늘이 울렁이고
고즈넉한 그리움에 눈시울이 젖어 빗줄긴양 쓸어낸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감정의 표현이 온몸으로 묻어난다는 것..
아름다운 전경에 넋을 잃고 마음을 홀린다..
바다의 신..퍼사이던(포세이돈)이 느긋하게 앉아서 쉴 만 한 곳이다..
송악산 자락에 자리잡은 수국천지..수국의 꽃 말은 변덕스러움과
진심, 냉정, 무정, 거만으로 그다지 좋은 느낌은 아니지만
영어로 Hydrange, 다른말로는 팔선화八仙花 라 하여
심장질환이나 학질 등에 유용하게 쓰이는 약용 식물이다.
한 때 나의 호를 수죽(수틀리면 죽인다)이라고
할려고 했었는데..크크
평화로운 전경과 바람, 그리고 습기 가득한 공기로 오늘의 트레킹은 꽤나 차분하다..
걸음 걸이들이 꽤나 경쾌하다..
다습한 바람이라도 세차게 불어 체감을 시원하게 해 주니..내딛는 걸음도
상쾌한 느낌으로 다가오나 보다..
제주도는 그다지 큰 섬은 아니지만 동서남북, 내부, 중산간, 해안가 모든 곳의
경치가 나름의 개성과 아름다움을 한껏 머금고 있는 세계적인 명소임을 다시 확인한다..
다른 일행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는 분화구를 보고 오겠다고 옆 길로 빠졌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준대박급 선택..^^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형제섬이 정겨운 모습으로 가슴에 안긴다..
깍아지른 듯한 분화구 최저점과 가파른 정상부위..이런 곳에서 아주 먼 옛날
폭발이 일고 용암이 흩날리고, 천지가 개벽하여 오늘의 아름다움으로 남는다..
설악의 수려함이나 지리의 장엄함과는 사뭇 다른 제주만의 편안하면서
아기자기한 모습..그 나름의 멋이요, 자산이요, 지나치는 행자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
수천, 수만년의 세월이 거듭되어 이런 푸름을 다시 안게 되었으니, 세월의 힘이여,
자연의 위대함이여..진실로 그대를 그대로의 모습으로 경배하노라..
가팔라도 힘든지 모르겠고,
불립문자..말로 표현하기 힘든 작은 감동들의 연속..
그래서 사람은 자연과 함께 할 때 가장 순수하고 깨끗해지는 영혼적 경험을 한다..
감탄이 절로 나오지만 먼저간 일행들에게 누를 끼칠 수는 없는 법..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내려간다..말똥은 도처에 널려있다..^^
곳곳에 지어진 일제시대의 흔적들..공습이 있을 때 피하는 방공호 용도..
해안가에 깊게 파여진 동굴진지..아름다움과 역사의 통흔이 함께 한다..
누가 형제섬이라고 이름 붙였는지 모르겠으나 내게는
부부섬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것 같다..중간의 작은 놈은 아이..^^
진안 마이산의 Little version이라고나 할까..
바위에 새겨진 글씨체가 참 마음에 든다..수수하면서도 힘이 있고
보는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하게 하는 서체다..
1991년 4월 당시 소련의 총서기장이었던 고르바쵸프의 부인이었던 라이사 여사가
제주에 와서 우리의 잠녀(해녀)들과 정겨운 모습으로 담화를 나누는 모습을 기리는 조상이다..
이제 목적지인 산방산이 눈 앞에 보인다..하지만 도착점은 생각이나 보기보다 한참을 더 가야한다..
각종 동물들과 인간의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곳이다..오랜 지구와 제주의 과거를
직접 보는 셈인데, 당시의 그 사람들은, 그 동물들은 그 격렬했던 자연의 힘을
어떻게 느꼈을까, 두려움?, 경이로움? 경배의 대상?
높이는 300여미터로 얼마되지 않지만 주위를 아우르는 포스가 철철 넘치는 산방산..
비록 구름에 가려 온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대단한 기운이 느껴진다..
1668년 네덜란드의 하멜이 제주에 표류한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진
하멜 기념비..기념비 아랫쪽에는 네덜란드 랜드가 별도로 만들어지고 있다..
마치 거대한 용이 남쪽 바다를 견주어 내는 모습으로 느껴지는 힘찬 등줄기..
오늘의 주관자 박하향님, 해박한 지식과 상세한 설명으로 오늘의 멋진 코스를 리드해 주었다..
오늘의 최연장자 베로니카님과 박하향님..자매 같기도 하고 이모, 조카 같기도 하고..ㅎㅎ
이제 저 아름다운 해안가 숲길로 걸어가면 된다..점심시간이 지났어도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은 것은 중간중간에 푸짐한 간식을 취했기 때문이라는..
다양한 구성, 그럼에도 미소들과 자연과 함께 하면서 다져진 순수함들이 베어 있다..
혼자서 이 쓸쓸한 바닷가를 바라본다면 무척이나 처량하기까지 할 것 같다..
송창식의 철지난 바닷가 가사가 흥얼거려진다..^^
아무런 거리낌 없을 이 조용한 숲 길에 오고 가는 이들이
한결같이 느끼고 가져 갈 것..가슴의 공명, 따뜻한 마음과 순수함일게다..
베시시 웃는 어린아이의 청명스러운 미소를 한껏 빼어 닮은 수국의 개화..나도 따라 웃음이 지어진다..
오고가는 차들이 그다지 없으니 이 아스팔트 도로 또한 산방산의 위엄과 수국의
신선함이 어울려 멋진 경치로 거듭난다..
아마 제주의 아름다운 길 컨테스트에 나가도 좋을 듯한 길이다..
도합 다섯 시간 정도의 흥겹고 한편으로 가슴 아릿했던 산책..
화순읍에서 자리돔 물회와 소주 넉잔으로 마감하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더했던 시간이다..내가 다녀 본 올레길 9개 코스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코스다..송악산과 산방산 그리고
역사와 해안가, 파도소리와 가파도, 마라도가 찬조출연하는
넘버원 올레길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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