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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일지

지리산 서산대사길

 

 

작년 이 맘때 대형 무릎수술을 받고 끔찍하도록 오랜 기간동안

주사맞고 신약을 먹어대는 과정에서 몸은 형편없이 나락질을 치고,

 

오월들어 독한 마음으로 일체의 약을 끊고 자중과 수신에 힘써 온지도

한달하고도 반의 시간.

 

다행히 간간히 무릎에 얼음찜질을 해 주는 것만으로도 더이상의 악화증상은

없기에 근래 아침 점심 저녁으로 시간날 때마다 조금씩 산책을 다니기 시작했다.

 

불과 몇 년전만 하더라도 남한의 그 어느산이라도 가볍게 즐기곤 했던 체력이나

다리 근력에 비하면 10%정도의 회복밖에 되지 않는 수준이지만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마음으로 비교적 거리가 짧은 산행코스를 택했다.

 

세시간 반을 대구에서 달려 와서 도착한 의신마을..

신들이 능히 기거할만할 정도로 빼어난 경치와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는 곳.

 

여기서 벽소령으로 갈수도 있고 체력이 되는 사람은 세석평전으로 곧바로 치고 오를 수도 있다.

 

우선은 대성골 마을까지 왕복 5킬로의 거리.

과거 나의 체력같으면 정말 몸도 채 풀리지 않은 정도의 난이도와 거리지만

오늘 나에게는 그저 쉽게만 볼 수는 없는 거리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 5킬로의 산길을 더하면 오늘 코스는 총 10킬로 정도의 트레킹 수준.

 

마을 입구에서 가파른 임도를 치고 오르면 어느새 이런 심산유곡이라는 말이 적당한 경치가 펼쳐진다.

 

손가락 마디 굵기 정도의 대형 달팽이가 습한 기운을 즐기러 마실을 나왔다.

 

유독 진하디 진한 밤꽃 향기에 머리가 어질어질 할 정도..

 

산줄기를 스쳐 말려 올리는 구름의 향연..진득한 습기에 청량함보다는 선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독하디 독한 약으로 부은 얼굴의 부기가 아직 완전히 다 빠지질 않았다.

 

적당한 오르내림과 바위, 그리고 낙엽이 중첩된 흙길..평안하다.

 

숨 한번 잠시 몰아쉬고..지리산의 허리둘레를 느껴본다.

 

깊디 깊은 이 산골에 누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 길을 과거의 우리 선조들은 걸어냈을까?

 

장엄하게 펼쳐진 주능선이 주는 호쾌함은 웅장함으로 다가오고..

 

한 시간 정도를 오르락 내리락 하니 도착한 대성골 마을..

민박도 하고 산객들을 대상으로 음식류를 파는 곳인데. 이곳을 지키는 장군이..듬직하니 묵묵하다..

 

만사가 귀찮은 표정의 누렁이..

 

세석평전까지 이어지는 이십오리의 산길에 이런 옛주막 스러운 곳이 있다는 것도 풍류의 한자락일터..

 

잠깐 계곡으로 내려서니 이런 천하의 알탕 명소가 나타난다.

 

에머럴드 빛 물이 청량함..세신, 수심의 힘을 돋우고..

 

그저 자리 틀고 한 호흡 길게 들고 싶은데..아직 뻣뻣한 무릎이 다음기회로 하잔다..

 

송글 송글 맺힌 땀방울이 주는 청량함도 제법이다..

 

저 바위들의 묵언수행..그저 물소리가 저들의 벗이 된다.

 

저 바위를 뚫어내는 것이 나무뿌리고 그렇게 그 굳건한 돌바위가 갈라진다.

 

 

그래도 대구에서 제법 먼길을 큰 맘먹고 오기를  잘했다.

 

스쳐간 산악회들의 흔적..

 

어쩌면 단순한 산행이상의 교감 나눔이 이런 장소를 통해 영글어 갈지도 모른다.

 

칠선계곡이나 뱀사골, 한신계곡, 법천 계곡 등등 지리산의 유명한 계곡세에 비해 결코 꿀리지 않는 명품 계곡이다.

 

 

지리산의 신비한 매력중의 하나가 어느 계곡에서 보던 대개가 V가 형성이 되어 있다는 것이고,

그 계곡마다 풍성한 물이 찾는 산객들에게 정서적 여유로움을 안겨다 준다는 것이다.

 

그 물의 색상, 고요함, 적경 속의 차분함이 그 옛날 지리산파 도인들의 도력을 빼어닮은 것 같다.

 

보는 이들을 압도하는 거대한 바위들..그리고 그 척박함 속에서도 기어이 뿌리는 내리는 집념..

 

사실 국립공원에서 아쉬운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출입금지 팻말인데..

대부분 그 곳을 뚫고(?) 들어가면 천하의 절경이 숨겨져 있다는 것..

 

자연이 그런 것일까?

아니면 은둔하고 있는 도인들의 장난일까?

두 바위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깔사탕 주고 받기를 하는 것 같다..ㅎㅎ

 

이 곳의 산천어들은 행복한 꿈을 꿀 것이다.

오염되지 않아 청아한 자연의 계곡수를 듬뿍 마시고 취하니,

아랑곳 하지 않은 세파의 흐름만이 무심할 뿐..

 

군에서 배운 훈련 탓일까?

저런 바위틈이나 공간을 보면 아무리 악천후라도 능히 비박을 하면서 살아낼 것 같은 자신감..^^

 

물은 아래로 흐르되 뚫는 법이 없다.

에둘러 가되 뭉쳐 흘러내는 최고의 선법을 터득한 자연의 구성체..

 

이 곳에 방사된 반달곰 생태 기념관..

반달곰을 우습게 보다간 정말 경을 친다..저래 허술해 보여도

엔간한 맹수들 쪔쪄 먹는 힘과 공격성을 가지고 있다.

 

그 옛날 청허당 휴정 서산대사가 지리산에 거할 때 다니셨다는 서산대사길이다.

청허가 본받고자 하는 것..어쩌면 과거 생에 대한 그리움일까?

 

자연스럽게 낀 이끼들과 자유분망하게 자라나는 칡줄기들..

그리고 그 속에 품은 수천만 가지의 생명들..

이런 곳에서 십년간 단좌하여 수련을 하니 소나무 옹이와 같은 굳은 신심이 생기더라

청허당 오도송 28자 칠언절구의 첫구절이다..십년단좌 옹심성..十年端坐 㙲心城

 

첩첩히,,켜켜히 둘러 싸인 이곳..가히 산신들이 거처로 삼을 만 한 곳이다.

 

넓고 평탄하지는 않으나 충분한 사색과 영적 힐링을 경험할 수 있는 산책길..

 

길가에 널리고 널린 산딸기, 뱀딸기..적절한 간식거리로 제격이다..

 

최대한 줌으로 당겨 본 영신봉..영험한 신들의 거처라는데 가히 그럴만 하다.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득도를 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못하더라도 세파의 잔때를 스스로 벗겨낼 힘은 얻어낼 것이다.

 

길 중간중간에서 보는 의신마을의 전경..

오랫동안 오염되지 않고 청정지역으로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지기를..

 

물은 그저 중력의 원리, 기울기의 원리에 충실하다..

 

저 곳에 발담그고 탁족하노라면 찌지고 볶는 매일의 삶의 흔적이 조금은 털려지지 않을까?

 

서산대사의 도술바위..일설에는 주장자가 변신했다는 내용과,

임진왜란 때 의신사 범종을 왜군들이 탈취하려 하자, 도술로 바위로 바꿔서

왜군들을 혼비백산케 했다는데..사실 유무를 떠나서 저런 바위..흔치는 않을게다.

 

잠시 지친 다리를 달랠겸 앉아보니 나름 편안한 맛이 있다.

돌바위가 주는 시원함은 그저 덤이고..ㅎㅎ

 

오늘의 종점.. 신흥마을 신흥교 아래에 내려서서 내려오는 의신계곡의 물을 바라본다..

 

능히 만평은 됨직한 거대한 바위군이 물흐름에 쓸리고 깍여서 지친 사람들이

어떤 자세로도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배려를 해 놓았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큰 바위 뒷 쪽에서 그야말로 오랜만에 알탕을 즐겼다..

물도 그다지 차지 않아서 아주 억수로 시원했다. 누가 아는가..이 알탕의 맛을..

 

오늘 매고 온 작은 배낭도 이쁘장하다..

 

저 바위가 약해서 홀씨 날린 나무에게 뿌리를 내어 준 것은 아닐게다..

딱딱하고 무뚝뚝하지만 능히 품어내는 여유로다..

지족선사의 황진이와의 러브 스토리..흔히들 얘기하는 십년공부 도로아미타불이 아니라 믿는다..

 

여름 산행 초입에 적당한 오르내림과 계곡이 함께 하니,

오늘 비록 습도 높고 바람 한 줌 없었지만 마음만은 쾌청하니

상쾌지수를 높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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