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일어난 처자무당이 다과상을 옆으로 돌면서 미끄러지듯이 내 옆으로 와서는
전래식 큰 절을 올린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나도 앉은 상태에서 맞절을 하고 나니,
이 무당이 이르기를
" 전생에 큰 스님이셨음이 틀림없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데 그렇다고 하는군요.
이 불쌍한 중생들을 위해 힘을 내셔야 하실 분인데, 보아하니 탈속하실 분 같지는 않아
보이시고, 지금 할아버지가 모시는 큰 장군님이 거하실 몸을 찾는다 하니.."
옆에 앉아서 멀뚱멀뚱 이게 웬 작당 시추에이션이나는 표정으로 지켜보던 집사람이 거든다.
" 아니, 보살님. 그러면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겁니까?" 하면서 애써 참아왔던 질문을 하자,
" 저의 신내림 굿을 해 주신 만신어머님이 계신데, 아마도 그 엄마한테 가시면 구체적인
얘기를 해 주실 것 같습니다"
아하, 내 대충 무슨 일인지 알겠다.
집사람이 멀쩡하게 잘 다니던 직장을 뛰쳐 나와서 무슨 인공호흡인지, 단전호흡인지 밥만
처 먹고는 집에서도 골방에서 푸닥거리같은 체조하고 절간에서나 쓰는 거대한 방석위에
폼 잡고 앉아서 마치 대웅전의 아미타불 같은 옅은 미소를 머금고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주구장창 호흡인가, 지랄염병할 명상인가를 하다가 다음 밥 때가 되어서야 부시시 밥상에 앉아서
물도 씹어 먹는양 온갖 개폼을 다 잡는 신랑이 하도 억척이 없고,
벌어오는 돈이라고는 한 푼 없이 매냥 개밥그릇에 세퍼트 입질하듯이
쑥 쑥 비워지는 은행잔고를 보니 애들 걱정, 돈 걱정, 미래걱정이 태산인이 할 수 없이
애 들 학습지 마케팅하는 대형 회사에 이런 저런 판매활동하는 자리가 우연히 나서 평생
남들에게 굽신거려 본 적없는 알량한 얼굴두께로 이 엄마, 저 엄마 찾아다니고 알음알음으로
소개해주는 곳에서 전집이라도 하나 더 팔아보려고 애쓰다 보니 스스로도 기가 막히고 당췌
앞 길이 보이지 않으니 답답한 심정에 신빨 기빨 좋은 갓 무당을 찾아갔는데,
이 무당이 과연 영대가 맑은 것인지, 모시는 할아버지,동자가 영험이 있는지 내 사주를 보기도
전에 썩 괜찮은 무당감이 틀림없는지라 이래저래 집사람을 꼬드긴 것이고, 비용은 차지하고라도
이런 저런 수련으로 단련된 내 몸이 탐났던지, 아니면 정말 신기가 가득한건지 내림 굿을 해주는
만신 무당에게 가서 신내림을 받으라..뭐, 대충 이런 얘기다.
순간 나름 명경지수같은 고요함을 자랑하던 내 마음 속에서 뭔가, 울컥~! 하고 치솟는다.
간신히 석문혈에 정신을 집중하고 한 두 호흡으로 억지로 열을 내리고 내가 물었다.
" 그래, 그러면 그 만신께서 내림굿을 해 주시면 비용은 얼마나 하나요?"
잠시 머뭇하면서 내 눈치를 살피던 무당이
" 원래는 천 오백정도 듭니다만, 처사님은 원채 강기에 수련이 많이 되신 분이라 천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당시 회사 뛰쳐 나올 때 내 연봉이 삼천 언저리였는데 그러면 무려 넉달치 월급을 쏟아붓는 것도
억울한데, 뭐 한다고 이 팔자에 무당이 될 것이며, 무당이 된 들 내 성품에 이리 저리 남들 등쳐
먹는 짓은 죽어도 못할 터, 오히려 인생에 개쪽만 당하는 경우수가 가득한지라.
" 말씀은 잘 알겠지만, 저는 그럴 생각도 그럴 형편도 못됩니다. 뵙고 싶다고 해서 찾아왔는데
상당히 당황스럽네요.." 이렇게 단디 거절의사를 내 뱉고 보니 부글 부글 옹골찬 독심이 올라온다.
그 느낌을 알고 다시 호흡으로 가라앉히기도 전에 먼저 말이 튀어 나온다.
" 보살님, 보아하니 아직 나이도 젊고, 신기도 충만한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정신 가다듬어서 그 할아버진지, 동잔지 내치시고 정상인으로 돌아가세요~!"
아랫배 단전에 약간 힘을 실어서 말을 내 뱉으니 움찔하고는 처자무당의 눈이 헤까닥 뒤로 넘어간다.
약간의 소동이 있고, 방석에 기대어 반 기절상태에 있는 처자무당과 부산을 떠는 공양도우미를 뒤로
하고 집밖으로 나왔다. 어처구니가 없음은 물론이요, 내 살다 살다 나보고 박수무당되라는 얘기는 첨
들어 보니 나도 이게 뭔 짓인가 싶다.
차를 몰고 집에 와서 곰곰히 생각하니, 이 놈의 구도생활이 왜이리 꼬이는 것이냐..쯧쯧..
집사람이 차려주는 무뚝뚝한 점심을 한 그릇 먹고, 도장으로 향했다.
도장에서 화진법 연달아 세번 하고 나니 몸이 완전히 지치고
물소리 틀어놓고 삼매에 접어들려는데 수련하는 폼이 보통 날하고 다른 것을 눈치 챈 지원장이
나를 지원장실로 부른다.
" 선생님, 뭔 일 있었능교? 오늘 행공하는 폼이 꼭 누굴 잡아죽일 듯 해서"
시원하게 내린 냉녹차 한잔을 내 밀면서 말을 꺼낸다.
얘기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지원장이 고개를 거북이 목 내밀듯이 내 얼굴 앞으로
쭉 내면서 나의 인당혈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리고는
" XX님의 소주천이 극강해지니 사방에 빛이 가득하고, 아마 그 신들도 그걸 느낀 모양입니다. 그래도 악한
영가들은 아닌가 봅니다. 악한 놈들은 꼬리가 빠져라 도망칠텐데.."
그동안 이 수련을 하면서(국선도는 아님..많이 돌고 헤매고 전전했을 당시의 수련임) 도담이랍시고 이런 저런
얘기들을 많이 들어서 낮설지는 않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무당이나 이 지원장이나 비스무리 짝짜쿵이다.
나의 첫번 째 무당과의 공식대면은 그렇게 끝이 났고,
수련과정에서 누군가 무슨 일을 당하겠다 싶으면 문자로 전화로 넌지시 알려주곤 했는데
거의 다 맞았다. 예를 들어 누구에게 오늘 저녁에 문자를 보내 내일 아침 차 조심하십시요 라고 보내면
그 다음날 정오가 되기 전에 여축없이 전화가 온다.
" 어이~! 김도사, 어제 저녁 문자 있잖아? 아침에 출근하다가 글쎄 앞차를 추돌했네..다치지는 않았는데,
김도사 도력이 장난 아니네..시간되면 족발에 소주나 한잔 살테니 나오소.."
뭐, 이런 식이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집사람은 학습지 회사에 출근을 하고 애들도 초등학교에 가고 어제 저녁 자시 수련을 한답시고 인시가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는지라 아침에도 몸이 찌뿌둥했다. 단정하고 안방 침구 정리하고 샤워부터 하자 싶어서 샤워를 하고는
거실에서 벌러덩 누워서 큰 대자로 몸을 편하게 만들고 소주천을 돌렸다. 탱탱한 강기가 미려를 통과하고 척중을 거쳐
두정, 인중을 도는데 속도가 제법이다. 사부 이야기로는 이런 식으로 소주천이 극강해지면 구름도 가른다고 하는데,
언제 한번 시도해봐야지..하고는 호흡을 들었다.
잠시 천지가 고요해지고, 거의 삼매지경에 막 들려는데, 귓가에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 그르르륵..그르르륵.."
으잉? 이게 뭔 소리야? 갑자기 정신이 버쩍 든다.
자시수련의 후유증인가 싶기도하고, 분명 이 집안에는 나말고는 아무도 없는데.
그리고 내가 코를 골았을리는 없다.
그 순간, 소주천의 빛을 따라 일부 영가들이 찾아올 수도 있다는 얘기가 얼핏 생각났고,
아마도 그런 현상이 아닌가 싶어 몸을 벌떡 일으키고는 아이들 방부터 열어봤다.
당연히 아무도 없고, 부엌에도 아무도 없음은 당연지사.
조금전 내가 나왔던 안방에는 더욱 더 당근 아무도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안방 문을 열었는데 분명 조금 전에 내가 정리해 둔 침대보 형상이 조금 다르다.
그래서 안경을 찾아 쓰고 다시 보니 이불 옆으로 길다란 머리카락 한다발이 삐죽히 나와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머리칼이 쭈삣 서고 온 몸이 정전기 폭탄을 맞은 것처럼 반응했다.
귀신이 참 대담하구나..감히 청허 도인의 안방에 들어와서 환영인지 모르겠으나 저렇게 대담하게
머리카락 다발로 내놓고 숨죽이고 있다니.
합기도 배울 때 하던 기운짜기형태로 오른 손에 기운을 실었다.
오른 손으로 여차하면 기운을 쏟아낼 요량으로 이불을 확 재끼면서
외쳤다. " 감히, 누구냐?!!!"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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