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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주명리학 이야기(8편)

요 며칠 동안 여단대원님들 몇 분이서 개인적인 역학 사주상담을 해 오셨다.

 

백화점 일을 도와주는 틈틈이 짬을 내고 모자란 부분은 밤을 새우면서

그 분들의 답답함이나 애로사항에 대한 분석과 역학적 기준에 입각한 원리,

그리고 약간의 사회생활 경험을 곁들여 정성껏 작성해서 보내 드렸다.

 

나 또한 아직 배울 것이 많고 일천한 지식이라 그 분들의 답답한 속내를 얼마나

시원하게 풀어드렸는지는 혜량할 수 없으나 꼼꼼하게 놓치는 부분 없이

종합적이고 중장기적 차원에서 간명을 해드렸음은

스스로도 당당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흔히 잘 못 알고 있는 몇 몇 역학 사주에 대한

상식부분을 언급하고 다음글로 넘어가고자 한다.

 

아시다시피 하루의 24시간은 12지지地支,

子 丑 寅 卯 辰 巳 午 未 申 酉 戌 亥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역학자들이나 역술인들, 심지어 꽤 고명하신 분들조차

이 각각의 지지들이 품고 있는 시간대에 대해 잘 못 인지하고들 계신다.

 

,

자시는 밤 11~다음날 새벽 1,

축시는 새벽 1시부터 3,

리고 술시는 저녁 7시부터 9,

해시는 저녁 9시부터 11시까지 이런 식이다.

 

어찌 보면 완전하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아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 대부분도 이렇게들 알고 계실 것이다.

 

방금 언급한 시간은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동경(일본의 동경)의 경도를 기준으로 한 시간이다.

 

동경의 경도는 135도이며 서울은 12730분이 된다.

 

135 127.5 = 730분의 의미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시계기준으로 30분 정도의 차이가 난다.

 

슬프게도 일본강점기의 잔재가 아직도

우리가 매일 적용하고 있는 시간에 그대로 남아있는 셈인데,

 

여기서 주체적인 우리 민족의 고유함을 들먹거릴 생각은 없다.

 

이것을 다시 경도 12730분으로 수정한다고 얻을 수 있는

장점과 시간의 수정으로 인한 혼란 등의 비교를 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너무나 소중한 우리 개개인의 운명을 감정하는데

30분의 시간차이는 실로 엄청나게 작용하게 된다.

 

예를 들면 서울에서 태어났는데 지금 사용하고 있는 시간으로

저녁 아홉시 15분에 태어났다고 치자.

 

그러면 지금 사용하고 있는 동경기준의 시간으로는 분명히 시가 된다.

 

하지만 정확한 경도를 따져서 그만큼의 차이를 보정해서 보면

저녁 915분은 서울기준으로 시로 바뀌게 된다.

 

물론 년, , 일이 같이 되니까 뭐 중요 하냐 라고

가볍게 볼 수도 있겠지만

 

, , , 시의 네 기둥(四柱)의 하나가 틀리게 세워진다면

 

안 그래도 정말 정밀하게 봐도 100정확성을 보장하기 어려운 판에

4분지 1의 기둥이 잘 못 세워진 상태에서의

사주간명이 주는 정확성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할 바가 못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경우수가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30분의 차이로 바뀌는 접시에 태어난 분들에게 적용되기

때문에 각 지지의 중심시간

 

, 122, 46..이런 시간에 태어나신 분들은

이래나 저래나 같은 사주팔자가 형성되는 것이어서 차이가 없다.

 

그리고 또 중요한 사실 하나는 자정을 기준으로

12(00)에 태어난 분들은 태어난 출생지에 따라

일주 日柱가 바뀌게 되는데

 

이는 시간이 바뀌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매우 중요한 변화가 있게 된다.

 

사주팔자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치는 것이 바로 태어난

일자의 간지 干支인데 그

 

런 경우는 드물긴 하지만 이것이 바뀐다는 것은

잘못된 간명으로 전혀 엉뚱한 감정이 되고 말며,

 

이런 미세한 부분을 놓치고 대충 신살 이나

몇 개 언급하고 태어난 년도만 가지고

 

개띠는 이렇고

돼지띠는 저러니,

범띠는 이런 문제가,

말띠 여자는 거칠다는

 

확률 상으로 25%도 되지 않는 정확성을 가지고 떠들어 대고

대충 찾아 온 피상담자와의 대화 속에서 눈치로 때려잡고,

얼버무리고

부적이나 쓰고

이름만 개명하면 죽을 사람이 살아난다는 식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통 명리학계에서는 그 사람의 인생을 약 80% 이상 맞춘다면

원리적으로 거의 완벽에 가까운 도인이라고 칭한다.

 

정말 정확한 이론적 배경과 풍부한 임상경험을 통한

자신만의 Know How가 쌓인 상태에서 맑은 정신으로 임하면

70%의 정확성이 한계라고들 이야기를 하는데

 

족집게 도사니

문지방만 넘어서도 그 사람이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를 맞춘다는

서글픈 광고로 사람들을 돈벌이로 끌어들이는 것이 작금의 형태인 것이다.

 

육임을 조금만 공부한 사람은 저런 현혹성 문구를 보면 코웃음을 친다.

 

남들 모르는 단어 하나 더 외워서 영어의 신이 되기는

불가능한 것처럼 그런 현란한 문구를 남발하는 역술인일수록

실제 간명실력은 허상이요, 눈치 반, 관상 반이라고 보시면 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실력자분들도 계실 것이다.

 

이야기가 잠시 딴 쪽으로 흘렀지만

 

그래서 나는 간명을 요청하시는 분들에게

출생 년 월 일 시와 출생지를 반드시 확인하고 감정을 하는 것이다.

 

이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끊임없이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성명학의 운세에 대한 영향력을 잠깐만 언급하고자 한다.

 

결론만 이야기 하자면 아무리 잘 지어진 이름도

그 사람의 타고난 운세를 바꾸지 못한다.

 

다만 사주구성이 너무 나쁠 경우

 

역학적 처방 차원에서

부족한 오행과 기운을 보완하는 수준으로의

개명이나 작명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100리터 물탱크에

20리터만 차 있는 사주구성을 가진 분이

개명을 통해서 개선될 수 있는 운의 절대 %를 계산할 수는 없겠지만

 

정말 후하게 봐서 5리터 정도로 보자.

 

100리터 탱크의 5리터는 절대기준으로 약 5%이니 별 것 아니지만

사주구성이 20%밖에 차 있지 않은 좋지 않은 구성을 가진 사람에게는

25%의 효과를 낸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나 전 세계 인구의 대부분은

거개가 다 70~80% 정도의 사주구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이 최대 5리터의 보완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질까?

 

물론 예외적으로 여단 카페에도 올라 온 적이 있지만

남들의 놀림감이 되고

혐오의 대상이 되는 연상을 일으키는 이름은

 

마땅히 부르기 좋고 이왕이면 사주구성에 도움이 되는

이름으로 바꾸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리고 부를 때의 느낌차이는 꽤나 다양하겠지만

이름자체에 좋은 이름 나쁜 이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성은 아버지의 것을 물려받으니 손 댈 수 없는 것이고

 

나머지 한자나,

두 자,

길면 석 자의 이름은

사주 명리로 우선 풀어보고

 

약하거나 보완할 필요가 있는 이름으로 바꿔주는 것이

 가장 좋은 성명학의 원리인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면

 

사주 구성이 목과 화로만 구성된 사람이 있다 치자.

즉 목 3, 3, 2, 0, 0이라서

 

균형이 매우 심하게 깨어져 있고 치우침이 심한 사람인데

 

이름조차도 김 구격이라면

이는 이름 상에도 온통 목이 가득하니

이런 경우는 금과 토를 보완하는 이름인

김 종신 정도의 이름이면 약한 금, 수를 보완하는 형태가 되는 것이다.

(실제가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라 예를 든 것이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묘 자리와

관상,

부적의 실체에 대해서 비교적 자세하게 언급을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타고난 사주는 運命운명이다라는 것.

 

,

태어나고 죽는 것인 숙명 宿命이 아니라

얼마든지 상당한 부분 바꿀 수 있는 것이며

 

사주 명리는 이런 개운 開運/改運을 위한

이론적 실증적 節氣相學에 근간을 둔

數理 分析學文 이라는 것이

청허의 짧은 생각일지 몰라도 지금까지 느낀 결론이다.

 

 

 

신 내림의 역학적 해석

 

경희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우리나라에 전해져 오는 무속문화와 무녀들의 애환, 설움,

그리고 그 뒷이야기와 현대적 심리학적 해석을 오랫동안

해 오셨던 고 서정범 교수님의 책과 동서양을 아우르는

각종 영혼 관련 이야기,

 즉 티베트 사자의 서,

이집트 사자의 서,

꿈의 해석,

칼 구스타프 융의 저서,

각종 Paranormal activity에 대한 심리, 정신학자들의 풀이,

티베트 밀교의 경전에서 언급되는 사후 세계의 이야기,

Near Death Experience 경험담에 대한 얘기,

최면을 통한 전생퇴행 연구,

선도수련, 단학수련에서 보는 영과 혼, 그리고 백의 이야기 등을

이리 저리 종합해서

 

우리가 의외로 주변에서

 자주, 많이 알고, 듣고 또 카더라통신을 통해서 접하는 신 내림,

접신, 빙의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보고자 한다.

 

단 분명하게 전제하는 것은

언젠가 고도로 과학기술이 더 발전하고 측정, 종합분석 기술이 한층 더 진보한다면

지금 우리가 다소 애매모호하게 얘기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이야기들이 좀 더 구체적이고

명쾌한 알고리즘을 가지고 설명이 될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이고

 

내가 풀어가는 이야기 속에는 현대 첨단 물리학에서

언급하는 이론들도 조금씩 포함된다는 것이며,

 

저의 개인적인 판단일 뿐 현재 가지고 있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합리적인 검증이나 해석을 할 수 있는 논제가 아님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우리가 조금 헷갈려 하는 내용 중의 하나가

, , , , 귀신, 혼령, 영가, , 중음신, 산신, 산신령, 지박령, 수호신,

등등을 명쾌하게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동양 전통적인 도교사상에서 구분하는 방법은

사람은 죽으면 하나의 령과 세 개의 혼과 일곱 개의 백,

즉 줄여서 얘기하면 일령삼혼칠백이라고 표현을 한다.

 

선도수련의 단계는 참으로 다양하지만

대략적으로 퉁 쳐서 이야기 하자면

 

練精和氣연정화기

練氣化神연기화신

練神環虛연신환허

환허합도環虛合道라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 과정을 일령삼혼칠백을 대비하면

칠 백(일곱 개의 )은 우리 몸에 있는

단전 또는 인도 요가 용어로 챠크라라고 하는

기운의 응집소가 있고

 

여기에 뭉쳐진 기운을 으로 보고

 

삼혼(세 개의 )은 그 중에서 가장

氣化기화된 백들이

하단전,

중단전,

상단전 위치에 응결되어

 

혼으로 존재하며

 

이 혼과 백들을 주관하고 부리며 우리가 죽어서도

저승세계나 지옥, 천국, 불국토,

극락에서 다시금 영생을 이어가는 것이

바로 일령(하나의 )이 된다는 것이다.

 

바꾸어 이야기 하면 의 단계에 있는 것이 이요,

의 단계에 있는 것이 이요,

의 단계에 있는 것이 바로 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좀 더 쉽게 이야기 하자면

정은 고체요,

기는 액체,

신은 기화된 기체의 형태로도 대비가 될 수 있다.

 

아무튼 이러한 표현하기 힘든 과정이 있지만

 

우선 쉽게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든 것이며

다수의 다른 이론들과 설명을 하는

, 사상가, 무녀, 자칭 도사, 도인들이 많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어쨌든 우리는 이러한 구분보다는

그냥 상황에 맞게 여러 가지 다양한 표현들을 쓰고 있고,

틀렸다고 대 놓고 이야기 할 수도 없는 부분이 있다.

 

영어로도 사실 명쾌한 구분이지지 않는다.

 

, Spirit, Soul, ghost, phantom 등등을 쓰는데

실제 뉘앙스적인 차이는 분명하게 있지만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조차도 명쾌한 구분을 하기란 쉽지 않다.

 

나도 그렇지만 우리가 매일 듣고 보고 있는

수많은 죽음을 겪으면서도

 

막상 내가 죽는다는 생각, 상상을 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형이상학적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분명 나는 언젠가는 죽는다.

 

하지만 죽는다는 생각자체를 할 수는 있어도

그것에 담겨져 있는 진실한 의미의 죽음에 대해서는

상상이나 생각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아무리 감정이입을 해봐도

내가 죽는다는 것에 대한 현실적 구체적 상황을 그려내지는 못한다.

 

그런데 참으로 단순한 것으로

아주 유사한 경험을 할 수 있는데

전신마취를 많이들 경험해 보셨으리라.

 

아무리 정신을 차리고 내가 기억을 하려고 해도,

마취 주사액이 혈관을 타고 들어오는 순간과

내가 정신을 잃고 있구나 라고 생생하게 기억하고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눈을 떠 보면, 아니 희미하게 마취상태에서도

어떤 꿈을 꿀 수는 있어도

 

마취상태에서 사람들의 대화나

실제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것을 다 아는 사람은 없다.

 

일부 영화의 소재로도 쓰이는 절대 각성상태는 마취가

약했을 경우에나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이지

일상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여기서 나는 몇 번의 체험을 통해

내가 죽게 되는 순간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바로 마취가 되면서 의식을 잃는 그 순간과 혹여

마취주사액이 치명적이라서 내가 말 한마디 못하고

그냥 죽게 되는 순간과의 구별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것,

 

따라서

죽음에 가장 유사한 경험이 바로 마취의 그 순간이라는 생각이다.

 

좀 더 직설적으로 얘기해서 뇌파는 살아있고

마취상태에 있는 육체에서 내가 기억하고 보고 인지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여기서 뇌파가 죽어 아무 반응이 없고 육체가 아무 것도 인지,

감응하지 못하는 상태에서의 정신적 인지능력은

아마도 거의 차이가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아니야~!, 나는 마취상태에서도 또렷하게 돌아가는

모든 것을 인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뭐 할 말이 없다.

 

생리학적 생물학적 자극과 반응의 알고리즘이

잠시 멈춘 상태와 영원히 멈춘 상태의 차이는 시간적 차이일 것이다.

 

하지만 같이 멈추어진 그 상태에서의 생체반응과

정신적 혹은 영혼의 반응은 어떨까?

 

나는 동일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잠정결론은

 

이번에 내가 언급하는 신 내림 현상에 대한 나름대로의

부정적 견해를 세우는데 상당한 역할을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되지 못한다.

 

왜냐 하면 내가 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니 백분 양보하더라도

 

내가 전생의 기억을(만약에 윤회사상이 맞는다면)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 계 속 -

 

출처 : 잇빨중사카페 ★ 잇빨기행여단
글쓴이 : 청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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