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올 해 갈 때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바이파스(By pass) 했던 설악의 진봉군
공룡능선을 무려 25년만에 가 보았다.
금요일 저녁 범어도장에서 막 심야심화행공이 시작될 무렵 출발한 버스를 타고
오색약수터까지 이런 저런 생각과 고민에 시들다가 비몽사몽으로 새벽 두시쯤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달 보름전에 쏟아지는 폭우가 없어서 등산하기는
좋았지만 그 사이에 철제 계단이 많아져서 그 느낌은 한층 힘들게 다가왔다.
새벽 4시 반의 대청봉은 얼음을 얼려낼 정도로 추웠으며 중청대피소에서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가진 후 희운각 대피소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여덟시 경에 무너미고개에서
마등령 방향으로 돌격하였다.
먼 동이 슬그머니 트이려 하는 중청대피소와 군상들..
소청으로 내려가는 길에 태양으로부터 날아 온 레이저 광선을 살짝 피해주는 센스..
울산바위군을 얻어냈다..맨 눈으로 보는 시각적인 웅장함을 디카가 잡아내질 못한다..
오늘 내가 가야할 초거대 트라노켑사우루스 공룡의 등줄기..
첫번째 공룡봉을 가베얍게 넘고..이 때만해도 의기양양..체력 만땅이었으나..
두번째를 넘자 물밀듯이 겸손함이 밀려왔다..중앙부위에 등산객들이 보인다..
그래도 지지 않으려 가슴을 활짝 펴고 폼을 잡아본다..703 부대시절 즐겨하던 폼인데..
영 자세가 나오질 않는다..
내가 이름지어준 상어 대가리 봉..물결치는 파도를 헤치고 불쑥 튀어나온 상어 그모습이다..
지나가는 등산객들에게 그리 설명했더니 나를 산악전문인으로 인정하는 모양새..그러다가
무릎에 찬 보호대를 보더니 사이비 도사 취급을 한다..
그 옛날 누군가는 이름모를 사연을 남겼을만한 낭만봉(자작 이름임)
아직까지는 여유가 넘치는 모습을 애써 강조하는 자세이다..드디어 스틱없이 서 있기
힘들 지경이다..
투박진 거대공룡의 머리모양을 한 대갈봉(이 또한 나의 자작이름)
가야할 마등령이 아스라히 보인다..이 때 쯤 나 혼자의 힘으로 거대공룡을 상대하기 벅차다는
굴욕감이 들기 시작하였다.
숨소리 가다듬고 치켜올린 나한봉과 1275봉..
공룡의 목 뒤 부분에서 꼬리 쪽을 보니 대청봉, 중청을 배경으로 공룡의 몸통이 역동감을 가지고
꿈틀댄다.
바다와 하늘..그리고 설악이 어우러진다..
무릎이 아파와서 한 걸음 떼기가 힘들어질 쯤 드디어 바위에 기대기 시작한다..
너무 힘이 들면 이쯤에서 투신을 하기 때문일까..추락주의 간판이 등장하네..
이제는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아예 바위에 몸을 기댄다..이 곳이 공룡의 정수리쯤 된다..
25년전 공룡능선은 일반인들은 감히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위험,스릴,공포와 비교를 불허하는
천하절경을 간직한 청산사부님의 비경 그 자체였고 중간중간 비박을 하면서 넘어햐 할
정도로 난코스였으나 이제는 무릎이 시원찮은 나 같은 사람조차도 4시간여면 무난히 지날
정도로 부드러워져 있었다.
마등령에서 소주 한잔하고 하산하는 마음에는 어느듯 하늘과 설악..공룡과..동해를 가득
품은 마음 속의 행복감이 다소 얼마간의 힘든 사회생활을 이겨낼 힘과 용기를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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