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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소설/SF·신비·구도

아들과의 대화

 

 

< 개인적인 의견과 해석 >

 

 다중우주, 평행우주등은 양자역학의 구성원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이다.

 왜냐하면 양자역학을 가장 함축적인 말로 풀이하면

 

 " 모든 현상의 실재는 확률 " 이기 때문이다.

 

 나는 비록 지금 내가 보고 겪고 체험하고 있는 모든 것이 결정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의 극초미시세계에서는 양자역학의 저 확률적 발생분포 논리로만 가장 정확한 해석이 가능하다.

 

 생활의 예를 들어보면,

 

 내가 아침에 늦잠을 자서..

 - 자가용을 몰고 출근하게 되었는데 차량이 많이 밀리고 시간이 늦어져서 이를 회복하기 위해

   비 오는 길을 고속으로 역주행하다가 큰 교통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누워 있다.

 

- 하지만 이왕 늦은 것 싶어서 그래도 안전한 대중교통을 선택했더니 비록 지각은 했지만

  그런대로 아무 탈없이 근무 잘 하고 있다.

 

위의 두 경우는 사실 언제고 일어날 수 있는 확율의 세계를 설명하고 있지만

두 세계를 결정짓는 것은 집 밖을 나서면서 자가용을 모느냐, 대중교통을 이용하느냐 하는

선택-결심의 바로 그 순간이다.

 

하지만 내가 선택하지 않았다 해서 내가 겪지 않는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다만 A를 선택한 내가 또 다른 선택으로 일어날 수 있는 B의 세계에 가 보지 못할 뿐이다.

 

태초의 우주가 창조될 때 이러한 무작위적 선택적 요소에 따라 얼마든지 조금씩 다르거나 아주 판이하게

다른 여러형태의 우주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양자역학은 웅변으로 설명하고 있다.

 

굉장히 받아들이기 힘든 마술적 세계와 같아서 희대의 석학 아인슈타인 조차도 

"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 " 라면서 양자역학에 대해 매우 불편해 했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말년에는 양자역학의 우수성, 정확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은

 

받아 들이기 껄끄럽고 어렵고 사기스럽더라도 우리의 우주는 실제 우리의 상상보다 더 허구적인

SF적 요소를 많이 띄고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블랙홀이 그렇고 SuperNova, HyperSuperNova등의 현상도 실제 이론적으로 먼저 예측된 사실들이고

나중에 광학 및 광학정보분석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지금은 당당한 우주적 현상으로 인정되고 있다.

 

코페르니쿠스적 사고의 전환..

 

우리의 삶에 있어서 스스로를 이런 사고의 대전환의 바다에 푹 빠져서 상상의 나래를 펴는

그런 신선한 자유..인간이기에 가능한 대단한 지적 향유요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어딘가 다른 우주세계와 나와 유사하거나 내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되는 또 다른 내가 있다는 것..

비록 지금은 만날 수 없지만..가슴 설레이는 사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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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의 댓글 >

 

  • 김도규니
  • 2011.09.29 04:10
  •  

    밤에 잠 못 이루는 아들이 잠시 들렀습니다. 현재 제 삶은 젊은 시절의 게으른 데카르트와 다를 바가 없군요.부끄럽습니다.
    다중우주. 얼마전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양자역학에 대해 쉽게 써놓은 4편의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
    물론 과학적인 수식과 개념 용어들이 난무하는 그 영상에서 제 이목을 집중시켰던 부분은,
    양자역학의 최극단에서 나타나는 '관찰자의 지각적 확률에 대한 사물의 인식', 그리고 거기에서 발단된 철학과의 연계성입니다.
    관찰자가 사물을 관찰할때에만 그 사물은 그곳에 존재하며, 관찰하지 않을 때에는 양자역학의 법칙에 따라 모든 곳에 동시에 있으면서도 없는 그런
    끊어지지 않는 물엿같은 성질을 띈다는 것. 그렇게 되면 사물이 존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이 되는 것일까요? 관찰자의 존재유무일까요, 사물의
    물리적인 존재유무일까요. 관찰자가 없다면 관찰자가 보지 않는 현실은 존재하는 것일까요.
    제가 보지 않을 때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세상은 현실에 존재하는가요 아니면 이데아에서만 존재하는 것일까요.

    제가 댓글 첫줄에 데카르트를 말했습니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전문을 학교 도서관에서 구해서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물론 다는 읽지 못했지 말입니다)
    게으른 데카르트씨(데카르트는 인생의 90퍼센트를 하루에 12시간 수면하면서 지냈다더군요)에 따르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입니다.
    즉, 한 개인이 자신의 사고방식에 대한 확신을 가진 그 순간부터 그사람은 존재하는 것이 되겠지요.

    저는 이런 결론을 감히 내리고 믿어보렵니다. '만인을 위한 정답은 아니겠지만'이라는 변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fact에 대한 가능성이 여러가지인만큼 그 가능성들을 각각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믿음에서 오는 자신만의 정답이 있는 것이 당연지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한가지 fact에 대해 각 개인이 인식하는 각 현실(우주)이 달라지겠지요. 바로 거기서 양자역학과 평행우주의 연계가 이루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오히려 이 문제를 다가가는 저의 철학적(나아가 윤리적) 관점입니다.
    바로 사람하나 하나가 보는 우주가 달라진다면, 그 각각의 개인은 타인으로부터 하나의 우주에 걸맞는 존중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다양성에 대한 포용력이랄까요. 너무 멀리까지 가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각 개인은 자신이 관찰하고 인지하는 현실(우주)의 창조주인 셈입니다. 이렇게 관찰되는 현실을
    저희는 한 개인의 인생철학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아버지께서 두고두고 말하신 동학의 '인내천'사상이 그래서 새삼 위대하다고 느낍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해석한 이 모든 '인내천'을 품고 제 자신의 우주를 키워보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앞으로 이렇게 살아야 되겠다는 지표이며, 남들에게 인정과 확신, 믿음을 얻기 전에 누구보다도 제가 이것을 믿고 실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앞으로 조우하는 어떤 사람은 인도적인 우주를 가졌을 것이며,
    어떤 사람은 비관적인 우주를 가졌을 것이며, 어떤 사람은 자신의 우주의 기본적인 틀조차도 튼튼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수많은 경우의 수조차도
    자연의 순리라 믿으며 충돌해야할 때에는 충돌하며, 포용해야할 때에는 포용하며, 제 우주의 골격을 깎아야할 만큼의 위대한 우주를 만났을 때에는
    여지없이 깎겠습니다.
    제가 지금 제자신에게 하는 다짐인 동시에 제가 저렇게 살면 적어도 다른 이에게 일련의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입니다.

    가을 탓인가요. 사색이 너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아는 '척' 밖에 못하는 짓궂은 아들을 용서하십시오.

     

    ===================================================================================================== 

     

    ㅎㅎㅎ..아들,

     

     

    새벽까지 잠 못들고..사색이 지나쳐서 지적인 향유를 누리고 있구먼..
    그래 맞다..아들이 양자역학의 철학적 개요와 그 연계성에 대해 이토록 심오하게 깨치고 있을줄은 아빠도 잘 몰랐었구나..
    내가 만들어 가는 세상과 우주..따라서 내가 만드는 우주의 창조주..정말 멋진 말이자..명쾌한 논리..깔끔한 정리다..감탄한다..
    그 옛날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와 나눈 유명한 대화..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는..헐~!!

    데카르트는 게을렀지만 머리와 생각은 늘 진리..즉..보편적 진실에 대한 구성원리에 대해 늘 궁금해하고 갈등하고 이리저리
    생각하고 굴려보면서 나름대로의 철학적 논리를 세워갔을거야..잠을 몇시간 자고 이런 것은 외관적으로 보이는 현상에 불과할 뿐..

    아들이 가지고 있는..어찌 보면 완전히 여물지는 않은듯한 자신만의 주관과 세상에서의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설정과
    사고..행동양식의 전개는 단순하게 맞다 맞지 않다는 흑백논리로 평가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왜냐하면 극단적으로 말하면
    도균이의 세상은 도균이가 바로 하늘이요..모든 현상에 대한 평가..감정..이해..애증..사랑..행복 등의 느낌에 대한 최초이자 궁극적
    결론을 내리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지..아버지라고 아들이 맞느니 틀리니 할 문제는 아니라고 보여지네..

    내가 이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과연 언제 어떻게 생긴 것일까?
    늘 남에게 웃고 여유있게 산다고 해서 과연 나의 속마음까지 늘상 그런식으로 사는 것일까..최소한 내가 보기에는 그런 외형적
    행동을 행하기 이전..중간..이후에서조차도 나는 끊임없이 갈등하고 후회하고 흐뭇해하고 하는 생각.감정들을 쏟아내고 있단다..
    내가 미소짓는 바로 그순간에서조차 그런 동시다발적인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이지..

    결국 양자역학의 원리에서 보면 발생한 결과가 나타나기 위해 존재하는 여러 가지 다른 확률들은 곧 나의 감정의 동요와 다를바
    없다는 것이고..가장 높은 확률로 내가 행동하게끔 만드는 어떤 힘..그것이 우스개 소리로 수련이 되었니..내공이 높느니 하는
    그런 것들이 나를 그렇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들..글로써 어찌 속마음을 다 털어놓고 얘기를 하겠는가만..

    이 세상..내가 그려내는 세상임은 틀림없지만 보편적 타당성과 기준으로 이런 지적 향유를 누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이런 향유와 즐거움을 누리기 위한 백그라운드..즉..사회적 여유..경제적 여유..인간적 여유..그것이 어쨌던 요구된다는 것 또한
    우리가 선택한 이 우주의 편재하는 논리라네..그래서 하나라도 더 배우고 잘하고 적응력을 높이고 하는 애면글면함이 요구되는
    것이라네..

    그래서 나의 미래..내가 고를 수 있는 수많은 경우수의 우주에서 내가 선택해서 내가 아름답게 창조적으로 살 수 있는
    우주로 가기 위해 지금의 고통..서러움..갈등과 고민들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는 진리..

    그럴 수 있다면 내가 아들에게 지금 상황에서 가장 골라주고 싶은 미래..우주..물론 아들이 선택해서 걸어가야 할 우주겠지만..
    그것은 아들이 나중에 가장 후회하는 경우수가 낮고 발생확률도 낮은 그런 우주가 아니겠나..

    가을의 길목에서 깊어지는 사색..아들의 영혼이 성숙하는 과정..이런 글로 주고 받을 수 있는(비록 제한적이긴 하지만) 이 현재의
    우주가 나는 너무 아름답네..조용할 때 저녁에 술 한잔 나누면서 그 옛날 고승대덕..성현들이 주고 받았던 고담준론을 한번
    펼쳐보자..일찍 일찍 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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