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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 깊어지는 밤

 

 

 

이제 두어 달 지나면 2년 4개월전 시작한

백두대간 종주산행이 마무리 된다..

 

쉽지 않은 대간산행을 결심하면서 스스로

맹세했던 염원 하나..

 

내 오십 인생의 절반이요, 청춘과 중년 삶의

대부분을 함께 했던 이 직장..

 

중간에 나름대로의 이유로 잠시 멈춤의 시간이

있었지만,

 

초등학생 시절,

내 도시락엔 늘 멕스월 하우스

커피병에 담긴 삭아 시어버린 김치와

노란색 알루미늄 도시락에 어쩌다

멸치 볶음이라도 반달 모양의 반찬통에

있는 날이면 의기양양 하게..

 

정말 드물게 계란 후라이라도 있으면

온세상이 내 것 같았던 시절..그 시절..

 

같은 반에는 항상 제일모직에 다니는

아버지나 가족을 둔 동창들의 반찬이나

도시락 모양은 늘 나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멋진 보온 밥통에 김은 모락모락 나고..

물통 따로 반찬통 따로 구성된 그들의

벤또에는 늘 소시지와 계란말이..

김치를 가져와도 아삭아삭한 질감이

살아 넘치는 고급스러운 것들이 가득 찼었다..

 

어린 마음에도 내가 나중에 크면 꼭

저 멋진 직장에 들어가서 내 아들이나 딸은

절대 남부럽지 않게 도시락을 싸 주겠다는

옹골찬 결심을 할 정도로 부러움의 대상이었던게다..

 

 

그런 직장에 88꿈나무처럼 입사해서

지금까지 25년 가까이 보내오면서

나는 늘 이 직장이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라

내 꿈을 실현하고 그다지 화려하지는 않아도

한 획은 그어놓고 물러나고 싶은 갈증이 늘 가득차 있다..

 

하지만 세월의 탓일까..원천적인 사업의 구성의 한계인 것일까..

 

지난 15년간은 항상 구조조정의 연장선상에서 늘

가슴졸이고 아프고 서러움 안으면서 보내 온 것 같다..

 

그 세월이 지나면서 나는 어느덧 내가 속한 사업부의

최고직급의 간부가 되어 있었고..특히 지난 몇 년간의

혹독하다 못해 멘탈붕괴까지 왔던 과정은 남 모르게

가슴과 뒷통수, 등짝에 숱한 생채기와 깊은 상처만

남은 쓰라린 기억밖에는 없다..

 

나의 염원..이 직장이 비록 대형이익은 내지 못하더라도

꾸준한 영속성을 가지고 그룹 모태의 위상에 손상받지 않으며

대다수가 나처럼 가난해서, 많이 배우지 못해서, 고급간부의

길보다는 현장에서 땀 흘리는 사람들의 든든한 생활의 원천이 되고

일하는 즐거움 가득한 직장이 되게끔 역할을 다하는 것..

 

그것이 나의 백두대간 종주의 시작당시의 심정이었다..

 

그 때 스스로 휘갈겨 쓴 기원문이..

 

 

 

백두대간의 모든 산신들이여..

감히 엎드려 진실로 기원하며 바라건대..

 

모직의 모태원류인 직물사업이

현재에 닥친 위기를 극복하고

모든 직원들이 힘을 얻어 화합하여

이 사업이 번영하기를

선도인 청허가 감히 기원하나이다..

 

그렇게 백두대간 출발은 어천리-웅석봉-밤머리재 코스로 시작하였고..

 

 

저 멀리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면서 나의 염원은 갈수록 깊이를 더해 갔는데..

 

중간에 허리 돌기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어 두어 달 진행을 못한 적도 있었고..

 

 

 

두어 달 꼼짝도 못하고 엉거주춤 다니면서도 늘 그 염원만은 잊지 않고자 했으며..

 

어찌 되었건 나는 나의 호흡에 실린 원력과 간절한 염원으로

진정 나의 기원문처럼 모든 이들이 합심하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며

다시는 과거의 그런 아픈 상황이 재현되지 않으면서

알콩 달콩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추호의 변함이 없을지며..

 

그렇게 되기까지 그들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있는양, 없는양

보이지 않는 힘으로 그렇게 되기를 힘써 마지 않을 것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그들은 스스로 무얼 하는지도 모른채

여전히 저주와 시기와 험담으로 아옹다옹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고..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나로서는 나의 대간출정염원이 무색할 정도로

스스로 할 말을 잃어간다..

 

그래도 이제는 어느 정도 하드웨어적 구조는 제법

잘 갖추어져 있고..서로의 화합만 잘 된다면

왠만한 서리바람이 불어도 잘 견뎌낼 것이다..

 

작년 이 맘때 스스로 변화변신의 끈을 놓은채

내가 이루고..남겨주고자 했던 모든 것을

다 이루겠다는 것은 어찌 보면 나의 욕심일 것이다..

 

2천년전 나사렛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면서

남겼다는 말..

" 주여..저들을 용서하소서..저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나이다.."

 

그 때 그 심정이 파동으로 나를 울린다..

 

그래도 나는 그 보다는 행복한 사람이다..

 

조금더 넓은 세상에서 내가 조금은 더 좋아하는 곳에서

선도인으로써..자칭 도인으로써 원래 내가 지향하는

순수함을 더 살려가는 곳으로 단지 이행할 뿐이니..

 

이 더운 여름 밤..지리산의 시원한 계곡이 못내 더 그리워진다..

 

 

 

오고 가는 말들에 깊은 의미야 두겠냐만..

깊은 시름으로 호흡은 거칠어지누나..

 

나를 기억하는 이..기억할 이..모두가

원죄를 모르되, 원망은 말기를..

 

나는 상처 입어도 그 상처를 치유할 원력이 있으나..

그들은 생채기조차에도 뒹굴어 넘어지느니..

 

차라리 내가 모두를 안고 감이 고타마 붓다가..

나사렛 지저스가..노자와 공자..퇴계와 율곡이 경허와 청허당이

그토록 애써 거품물고 얘기하고 전하던

사랑이요..자비요..환허합도의 초입일지라..

 

고맙고 사랑하며 미안하고 애처롭구나..

 

이 밤..사색은 깊어가고 바람조차 불지 않네..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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