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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일지

부부지리산종주(선도수련의 의미를 되새기다)

지금 다시 돌이켜 보아도 그 당시의 지리산 종주는

그 어떤 산행보다도 의미있고 느끼는 것이 많았던 산행이었습니다.

 

집사람과 함께 한 첫 지리산 종주이기도 했거니와,

그 이전에 혼자서 마치 뒤에서 말벌이 쫓아오는양 달아빼기 바빴던

무박 무장공비 산악행군식 종주에서

 

조금은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평생을 함께 하는 집사람과 같이

이런 저런 설명도 해주고 밥도 해먹고 고즈넉한 산장에서 잠도 자고

지리산 자락의 아침 햇살을 두 번씩이나 감상하는 특혜 가득한 산행이었기 때문이지요.

 

 

 장거리 산행을 갈 때는 첫째도 준비, 둘째도 준비입니다.

 빼먹은 것이 없나 꼼꼼히 챙겨야 함은 물론이고 저렇게 함으로써

 더욱 가슴 설레이는 벅찬 감정을 마음껏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빠진 것은 라면과 식량정도이고 제 배낭이 약 55리터 20킬로,

 집사람 배낭이 40리터에 10킬로 정도 되었습니다.

 

 집에서 밤 열 두 시에 출발하여 첫 들머리인 성삼재에 도착한 것이 새벽 네 시경..

 추석 바로 다음날이어서 등산객은 거의 없었습니다.

 

 노고단 고개에서 천왕봉까지 도상거리 25.5킬로 실제거리는 오르내리막을 합치면 약 40킬로 100리 길입니다..

 

 저 산아래 구례읍의 야간전경입니다..누군가 곤히 잠들어 있을 때 누군가는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

 

 돼지령 정도 갔을 때 여명이 떠오릅니다..

 감동의 정도는 숫자나 문자로 표현 불가..

 

 밤새 잠들었던 대지와 산야가 서서히 기지개를 폅니다..

 어둠에 가려 있을 뿐 각각의 색상과 성상은 늘 그대로입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느끼지 못한다고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밤과 낮의 변화에서 알고 가슴에 느끼면 그것이 삶의 지혜요..철학이요..구도의 기본이 됩니다..

 

 저 순간만큼은 내 가슴이 붉을 丹으로 가득차는 것이지요.

 입자물리학에서는 지금도 나의 몸을 저 아득한 초신성에서 폭발한

 중성자 뉴트리노 수조개가 지나고 있다고 하지요..그것이 농밀한 밀도로

 압축되고 몸에 쌓일 때 우리는 丹을 이루었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주의할 것은 그 단을 거죽으로 돌리면서 혹자들은 마치 대약,소약,소주천,대주천을 이루었다고

 착각을 하게 되는데 고도의 집중과 무상무념의 호흡이 오랫동안 축적되어야 가능한 것이지

 단지 의념만으로도 느끼는 것을 축적된 丹氣로 오해한다면 이미 실패한 것이고

 의외로 그런 분들이 많다는 사실에 기실 안타까움을 금치 못합니다..

 

 저 바람에 시달려 가지는 휘어질지언정 본류는 꼿꼿한 소나무..저것이 우리 선도수련인들이나

 제반 종교인들이 옹심으로 갖추어야 할 기본적 소양입니다..임걸령의 소나무는 앞으로도 수백,수천년을 저렇게

 휩쓸리게 줄기는 하늘을 향하는 나무 본래의 본성을 간직하며 그것을 보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줄 것입니다..자연에서 배운다는 것..꼭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해가 중천에 떴다고 만물을 골고루 비추는 것은 아니지요.

 음영과 그림자가 분명 존재합니다..햇살은 편재하지만 깨달음은 그렇지 못합니다..

 스스로가 혼자서 고민하는 것 만으로 구도는 가까이 오지 않습니다.

 그늘을 스스로 없앨줄 아는 지혜와 도움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요..

 

 비록 그림자 속이라 하더라도 성상이 가려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어둠 속에도 분명 그 본체를 보고 느끼는 각성이 있어야 하며 수많은 마찰과

 고생,고행 속에서 체득되는 것이 바탕이 되어야 어둠 속, 그림자 속의 진실을

 볼 수 있는 혜안이 쌓이게 됩니다..

 

 나의 의식을 높일수록 그림자는 옅어지고 가려진 그림자조차도 버릴 것이 아니라

 내가 품고 가야 할 한 부분임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선과 악이 다르지 않습니다..인간의 기준에서 나의 손익,이해를 따져서 악이니 선이니 하지만

 원래 자연은 선이 악을 품고 악에서도 얼마든지 선이 태어나고 잉태될 수 있다는 것..

 절대적 기준의 구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잠시 앉아서 먼 곳, 내가 가야 할 곳을 바라보고 추스리는 휴식도 그래서 더욱 가치가 있는 것이고..

 

 뻔히 알고 있더라도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를 알려주고 가는 방향, 걸어 왔던 거리를 아르켜 주는

 저 표지석 처럼 주위..특히 스승이나 도반이 필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혼자 깨닫는 깨달음은 우주의 마음에 그다지 근접하지도 않을 뿐더러..

 요즘 CERN 연구소에서 언급하는 물질과 반물질의 구조원리에도 맞지 않습니다..

 

 멀리 바라볼수록 가슴은 커지고 마음은 깊어지지만 그렇다고 발 앞의 저 예쁜 야생화를 보는

 즐거움을 놓치기는 아까운 것입니다..

 

 산안개..또는 정기라는 것을 이 사진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저 희뿌연 것이 단지 연한 박무薄霧가 아니라

 깊은 산 만이 가지는 특유의 정기입니다..깊은 산 수도는 그런 차원에서 필요할 수 도 있겠지만..

 

 반야봉을 뒤로 하고 삼도봉(경상남도와 전라남북도의 경계)에 서면 절대적 진리를 깨달았다고 해도

 늘 우리는 선과 악 또는 정반합의 선택에서 고민하게 됩니다..어느 선택을 해도 그것은 선택한 자의

 순수한 몫입니다..잘되고 잘 못되고의 구별은 여기서 해당이 안됩니다..

 

 오르막 뒤에는 늘 내리막이 어느 정도 있습니다..그 내리막을 통해 우리는 균형의 Force를 알고

 즐겨야 합니다..그것을 쉽게 이야기 하자면 인생살이의 소소한 재미지요..구도과정이 너무

 힘들거나 따분할 거라는 생각도 어찌보면 개인적인 생각의 차이에 불과할 뿐..

 

 해발 1,500미터가 넘는 이 험준한 산에도 저런 평이한 시골 길 같은 곳이 있습니다.

 나의 의식과 자각의 수준이 아무리 높아져도 그 틈새에 있는 장난기와 순수함, 순진함이

 어디 가지는 않습니다.. 그 속에 다 보담아져 있는 것이지요..

 

 이 소담한 연하천 대피소처럼 누군가 오고 가는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

 구도자라고 너무 치열하게 살다보면 그 구도의 효용이나 목적이 허무할 때가 있지요..

 그래서 일부러는 아니더라도 지나가는 친구,동료들이 잠시 쉴 수 있는 마음의 여유..

 그래서 그 사람들이 나를 보고, 내 속에서 쉬면서 더 큰 뭔가를 얻어 가고 깨닫는 것..진정한 도인의 면모이지요..

 

 내가 걸어 온 길을 뒤 돌아 보는 것..아주 가끔은 그렇게 함으로써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의 도리를 알게 되지요..

 

 이 땅은 하늘과 마주하고 있으며 부지런히 나의 산물을 하늘로 올려 보냅니다..

 나의 상념을 언제나 열고 하늘심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때로는 저 웅장한 형제봉 바위처럼 굳건한 옹심擁心을 가져야 하고..

 

 마주보는 형제라 하더라도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므로 다름을 인정하고 찬양할 줄 아는 아량도 있어야 합니다..

 

 덩치는 작고 비록 연약해도 즐거움 가득하다면 등짐의 부피나 무게는 단지 즐거움을 위한 도구일 뿐..

 

 어기영차..몸도 풀고 잠시 숨도 고르고 내 주위 소중한 것에 대하여 마음표현도 해 보고..

 

 그윽한 시선으로 뒤돌아 보면서 내가 놓친 것이라도 인정하고 포기할 줄도 알면서..

 

 깊고 광활한 산군들의 허리춤에 감탄사를 늘어 놓는 너스레도 어쩌면 인간이기에

 풀어낼 줄 아는 아름다움입니다..

 

 내가 나를 의식한다고 누가 뭐라 할 사람 없으며 단지 그것이 내 모습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 하는 차원이라면

 어쩌다 허풍스러운 포즈도 썩 나쁘지만은 않지요..

 

 땀에 젖은 머리카락에 냄새나고 끈적해도 내가 그만큼 애써 걸어왔던 당연지사 소득물임도 알고..

 

 대피소라고 저런 예쁜 빨간 우체통이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니지요..

 오히려 포인트를 살려내는 감각이 뛰어나니 이 긴 과정에서도 멋은 냅시다..

 

 지쳐 쓰러지고 잠들고 피곤에 괴로워하는 동료, 주위 사람들조차도 이 순간을 구성하는

 도반임을 알고 경배할 줄 아는 배려심과 가끔씩의 측은지심도 있어야 합니다..

 

 어쩌다 우연처럼 한방향으로 길이 보여도 결국 다른 각도나 방향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함을

 잊지 말아야 쓸데없는 오해를 스스로 만들지 않는 것이며..

 

 중간지점이라 알려 주었으니 잠시 숨 들이쉬고 물 한모금에 몸도 달래주면서

 남은 하프에 대한 새로운 경외심을 가지고 추임새도 넣어 보고..

 

 벽소령을 나서면서 스스로 대견함을 자랑삼아 떠들어도 괜찮지요..

 누가 뭐라 할 사람 없습니다..선도수련은 혼자서 하면 재미없어도 같이 하면 꽤나 즐거운 수련이지요..

 

 누군가 앞서 간 사람들의 흔적으로 비교적 쉽게 필요한 산약수를 보충하고..

 

 선비와 양반과 미천함의 차이가 숙임으로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필요하다면 굽혀주고..

 

 죽어서도 천년을 가겠노라고 스스로 벗겨 낸 저 주목처럼 비록 이번 생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얻겠다는 욕심과 개성을 갖추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렇게 가다 보면 너무나 환상적인 경치와 전망으로 심신을 위로 받으면서 스스로를 즐겨하고..

 

 구름에 가려 지긴 했지만 내 가고자 하는 천왕봉 목적지를 애써 놓치지 않겠다는 집념과..

 

 단지 천왕봉만이 아니라 그 가는 과정에 있는 수 많은 절경들도 결국 내가 얻어내는 구름같은 지혜임을 깨닫고..

 

 느긋 오목하게 앉아서 바위와의 일체감도 느껴본다면 결코 지루하지만은 않은 구도의 과정이겠지요..

 

 바위가 부스러져 저 기생나무의 자양이 되듯이 나의 흔적도 누군가의 영양이 되어 힘을 줄 것이고..

 

 먹구름과 지리산과 바람과 석양이 연출해 내는 기막힌 모습에 가슴 아릿한 감동이 서리기도 합니다..

 

 몸 가는 만큼 마음을 내되, 지쳤다고 귀찮다고 수련을 놓치말고 틈틈히 수련을 하다보면

 

 다시 일어서 가는 순간 찡~! 하고 오는 감동과 온몸의 기운 참도 기분 좋은 것이 되고..

 

 김치와 돼지고기 라면과 햇반이 어울려 기가 막힌 잡탕찌개로 지친 영육을 달래 주니..

 선도수련에 금기라는 것은 스스로가 만들어 낸 戒에 불과하다..

 

세석 산장에서 하룻밤을 자고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촛대봉으로 갑니다..

천왕봉의 일출이 가장 뛰어난 지리산의 절경이긴 하나 촛대봉의 그것도 그에 못지 않은 감격을 안겨 줍니다..

 

저 붉은 아침 태양이 지리 최고봉 천왕봉을 비추니 영험가득한 지리의 산신이 점잖게 기침을 하시네요..

 

촛대봉에서 연하봉 가는 길의 새벽은 이전의 길과 사뭇 다릅니다..아기자기한 크고 작은 산들이 서로

신비롭게 엉키고 설키어 동양화의 수묵화처럼 가는 내내 눈을 즐겁게 해 줍니다..

 

저 무거운 배낭에도 아랑곳 없이 지아비와 함께 하는 산행의 즐거움이 얼굴에 은은히 배여 나오는 모습에

흐뭇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렇게 산군들은 다시금 지리산의 주변에서 영겁의 세월동안 계속 아침을 맞이하고..

 

촛대봉은 많은 산꾼들의 편안한 쉼터이자 관망터가 되어 지리의 한 자락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윽고 지리 10대 절경중의 하나인 연하선경으로 접어들기 직전..

 

초가을의 진격에 그 푸르디 푸르렀던 잎사귀가 노릇노릇 변화를 준비합니다..

 

뉘라서 저 길을 이쁘다 하지 않겠습니까..이미 몇 몇 이른 나무는 붉디 붉은 가을 색으로 치장한 채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고

정겹기 그지 없는 산길의 낭만은 굳이 가지 않아도 왜 지리산이 지리산인지를 잘 알려줍니다..

 

멀리 중간에 아담하게 솟은 동산처럼 보이는 반야봉은 이제는 벌써 또 다시 가고 싶은 그리움으로..

 

간식거리 간단하게 먹으면서 지리 연하선경을 놓기 싫어합니다..

 

기어이 그토록 참아왔던 담배 한 모금으로 이 벅찬 감동과 장관을 가슴으로 흡수하고..^^

 

여느 편안한 뒷동산 같은 연하봉에서 당당하게 서서 스스로를 봅니다..

 

들이대는 구도 하나 하나가 바로 멋진 절경이요..감탄사를 얽어내구요..

 

저 쓰러진듯, 기댄듯 바윗돌은 하늘 보고 담배연기 뿜어대는 고집스런 노인네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낱개로 뜯어 보면 별반 이쁘지 않을지 몰라도 전체가 어울리니 너무나 정답고 편안한 선경으로 선화합니다..

 

발걸음조차도 가벼이 이 선경속에서 머물고 싶고 가부좌를 틀고 싶은 마음 가득하고..

 

그 옛날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이 장터를 세웠다는 장터목 대피소에서는 곧 해 먹을 아침밥에 대한 흐뭇한 포만감을

미소에 가득히 담아봅니다..

 

돌아보건대 이미 칠십리 길..반야봉과 명선봉, 토끼봉, 영신봉이 아득한 과거처럼 아련하고..

 

투박한 돌 길이 이토록 정겹고 이뻐도 되는 것인지..

 

결코 화려하지는 않아도 서로의 보색효과처럼 공허한 아픔을 상쇄하는 평전에서는 마음마저 허허로워집니다..

 

벌목의 후유증조차도 지리산은 기어이 자신의 수수한 아름다움으로 키워냅니다..

어머니 지리산..그래서 어머니 산이 분명 맞습니다..자신과 자식의 아픈 구석도 숨기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힘으로 치유해 내는..

 

촛대봉과 영신봉이 대화를 합니다..무슨 대화일까요..

당시의 기운으로는

촛대봉 曰 " 가을기운이 스멀스멀 밀려오는데 영신아..내가 색깔 좀 빌려줄까"

영신봉 曰 " 야 ..촛대야 너나 나나 바위덩어리가 무슨 색상이 필요하냐..그저 주위의 나무잎이나 한겨울의 눈이 알아서 다 우리를

                    계절에 맞게 변색시켜 주니까..그저 숨고르고 있자.."

촛대봉 曰 " 음..생각해 보니 그러네.."

 

나무와 주목과 돌과 하늘..백 년 후에도 천 년 후에도 늘 그리하여 후손들이 지금 내가 느끼는 만큼만 느끼게 해 주었으면..

 

고도가 높아지면서 바람은 세차고 기온은 떨어지기 시작..고어텍스로 일단 간이 보온을 하고..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걸음 마다 저 돌들이 차분히 받아 주고 밀어 줍니다..

 

그리움을 가득안고 사는 듯한 야생풀들..그대들도 소중한 지리의 일원이니..경배하고 찬양하노라..

 

출발한 성삼재에서 반야봉 토끼봉,명선봉, 촛대봉에 이르기까지 모두 조망되는 곳입니다.

인생을 뒤 돌아 볼 때 무엇을 가장 먼저 보게 되나요?..가장 두드러진 것일 겁니다..

그리고 가장 힘들었던 것, 가장 가슴 아팠던 것..그런 것들이지요..

소중한 인생..매순간을 허투루 살 수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어느새 눈 앞에 성큼 다가 온 천왕봉..출발당시 과연 갈 수나 있을까 했던

그 목표가 그저 터벅터벅..털레걸음이라도 꾸준히 오다보니 비록 부침은 있었을지언정

가시권에 들어오게 되고 이제 마지막 힘을 내야 할 때입니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가파른 경사도의 오름길..

사람들이 목표달성을 눈 앞에 두고 좌절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은 것은

그만큼 막바지 과정이 힘들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걸어가면서 목표지점이 어디쯤 되며

그 과정의 난이도는 이럴 것이다라는 사전 Simulation이 없었기 때문에 쉬이 포기하는 것입니다..

틈틈히 중간의 위치, 자신의 체력, 성취정도를 돌아보고 앞서 보면서 가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선경은 사람이 보는 관점일 뿐, 실제로는 그냥 자연입니다..

어느 정도 수련이 되면 남들이 감탄하는 것들에도 무덤덤하게 되는데 이는 자연 그대로의 있는 모습에

수련자가 근접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반응들입니다..

 

벌써 높은 곳에는 울긋불긋 가을의 향취가 풍기고 있습니다..초록과 주황과 빨강의 조화..자연은 생각보다 훨씬 미적 감각이

뛰어납니다..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가는 까닭도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천왕봉 정상을 코 앞에 두고 의기양양한 집사람..작은 덩치에 저 무겁고 큰 배낭을 메고

정말 가슴 찌릿한 감동과 형언하기 힘든 사랑의 감정이 뭉클뭉클 솟아 오릅니다..

 

한 폭의 산수화 그 자체입니다..저 장엄한 경치에 무어라 토를 다는 것 자체가

자연에 대한 실례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차분한..그러면서도 매력적인 지리산입니다..

 

숨이 멎은듯..바위와 저 새는 한 장의 그림으로서 저와 이 사진을 보는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지리산의 정물화로 남을 겁니다..

 

정상 삼십보 직전..마음은 더욱 정결히 단정하게..여태까지의 힘든 여정도..

나를 괴롭혔던 그 어떤 상황들도 지금 정상을 앞에 둔 저의 머리에 떠 오르지 않습니다..

지리산이 나를 품고 내가 지리산에 안겨..함께 하는 것..정복이 아닌 몸을 잠시 위탁하는 것..

숭고한 마음마저 경건하게 듭니다..

 

별스럽지 않은 여느 산 정상과 그다지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이 곳은 남한 내륙 최고봉 1,915미터..천왕봉입니다..

 

부부가 장장 걷는 시간만 15시간이 소요되어 드디어 천왕봉과 함께 했습니다..

집사람은 생애 처음 이 곳을 밟아 보고..천왕봉과 교감하는 시간..지리산과 함께 어울렸던 시간에 너무 좋아했습니다.

저 순간만큼은 벅찬 가슴에 시원한 감로수가 흐르고 머리는 맑고 투명한 대자연의 지기가 가득 채워지는거지요..

 

내가 서 있는 이 곳이 최고봉이라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꼭대기에 잠시 발 디디고 서 있는 거지요.

그래도 기분만큼은 온 세상을 다 가진듯이 기쁘고 즐겁습니다..깨달음과 득도에 기쁨과 희열이 있다면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산들이 오묘하게 겹치고 잔상들과 박무로 인한 환영효과가 겹쳐서 과연 이곳이

물리적 속세가 맞는지 초월적 선계인지 구분하기 힘듭니다..

 

온 사방을 둘러봐도 그러한 감동은 깊이를 더해가고 두정을 타고 온 기경팔맥으로 흐르는 기운이 과연

어머니의 산답게 아낌없이 겸손한 구도자에게 사랑과 넉넉함의 호연지기를 가득 채워준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이로써 장장 도상 30여킬로의 대장정을 마치고 중산리로 내려가는 5.7킬로 하산길에 접어듭니다.

 

백리 길 걸음마다 숨소리 고달파도

등줄기 흐르는 땀에 온갖 고뇌 증발하고

가끔씩 마주보는 지어미의 눈 마침에

여려하던 감성 더욱 애틋하게 진동하니

발아래 구름인들, 하늘 걸친 산자락인들

허허로운 세상사에 신선세계 펼쳐있어

그 곳에 잠시 머물러 지친 심신 달래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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