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내가 겪었던 이런 저런 운명과 접신과 신 내림에 대한 이야기를 몇 가지 하고자 한다.
97년 2월 호주 주재원 근무를 마치고 귀국을 했고, 당시에 국제경영연구소(국경연이라고 줄여서 말하곤 했다)에
입소하여 무려 4주 동안 그곳 기숙사에서 먹고 자면서 해외주재원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인맥,
그 나라의 문화, 습관, 인종적 특징 등을 상세하게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했는데
나는 이미 귀국 전에 정보를 알고 있었기에 99% 작업을 다해 둔 상태여서
그야말로 꿀단지를 빠는 생활이었다.
아침 기상시간 거의 자유(아침 식사 시간 때문에 일어나야 했다). 점호,
인원확인 이런 거 전혀 없고 자유롭게 공부를 하던 산책을 하던, 정리작 업을 하던 무조건 자유였고,
가끔씩 귀국적응을 도와주는 교육시간이 있어 참석하고 출석만 하면 되는 무릉도원의 세계였고
다시는 오지 않을 꿈같은 휴식시간이었다.
나는 주로 아침은 칼같이 챙겨먹고 국경연 도서실에서 거의 독서 삼매경에 빠져 지냈다.
가끔씩 이런 생활도 힘들다고 주재원 관리팀에서 회식을 시켜 준 일이 있었다.
용인 근처로 나가서 삼박한 쌈밥집에서 하는데 그 날은 술도 무한 공급되었다.
물론 다들 자제력이 있는 분들이라 그렇게 폭음하는 분은 없었지만 일본 오사카에서
귀국한 나이 지긋한 부장님 한 분이 그 날 뭐가 씌었는지 술을 들이키는 폼이 예사롭지 않았다.
내가 대각선 맞은편에 앉아 있었고 과장 3호봉에 나이도 가장 어렸던지라(서른여섯)
가급적 조용하게 먹고 마시고 있는데 이 오사카 부장님이 갑자기 맥주 글라스를
탁~!하고 테이블에 내리치면서 C 팔~! 큰소리를 내질렀다.
워낙에 조용하셨던 분이고 워드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아 내가 가끔씩 도와주곤 했었는데
그 때 마다 고맙다고 이런 저런 선물도 주시던 지성파여서 나도 어~! 어~! 하는 사이,
그 양반의 두 눈이 희끗 희끗 바뀌더니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 주
절주절 알아들을 수 없는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내용이야 기억이 잘 나지를 않는데 말하는 입 모양새며 목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눈빛이 원래 그 양반의 그것이 전혀 아님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참석했던 스무 명 남짓한 사람 모두가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 Multi-personality(다중인격)’을 떠 올렸지만 관리팀에서
그 분을 모시고 먼저 국경연으로 돌아간 뒤, 나름대로 불경 공부를 오래 하신
미국 차장 한분이(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는..) 이야기하기를 접신 초기증상이네,
어쩌고저쩌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다들 잊어 버렸는데 며칠이 지나고 그날은 왠지 잠이 오지 않아서 뒤척거리다가
담배나 피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때 마침 휘영청 국경연 달 밝은 밤에 혼자 똥 폼 잡고
담배 피우고 있는데 에어컨 압축기 뒤편에서 뭔가 인기척이 났다.
당연히 나처럼 잠 못 이루는 사람이겠거니 했는데 아무래도 등골이 뭔가 좀 서늘한지라
그 쪽을 발걸음을 옮겼는데 달빛에 비친 그 사람은 얼마 전 회식자리에서 작은 소동을 피웠던 그 부장님이었다.
벽 모서리에 기대 앉아 있는 폼이 하도 청승맞아서 “ 부장님 여기서 뭐 하십니까?”
라고 물으면서 어찌 된 영문인지 알아보려는데 그 양반 두 눈을 치켜뜨는데
지금 생각해도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귀기 가득한 기운에 달빛마저 공교롭게도
그런 분위기를 한껏 고조하고 있었다.
아마 링이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비치는 우물귀신의 눈과 아주 비슷한 정도.
소름이 쫘악 끼쳤지만 내가 누군가,
은근히 아랫배 단전에 힘을 주면서 능청스럽게
눈을 돌려 그 눈을 피했다.
잠시 그러고 있는데
그 양반 입에서 “ 아이고, 이런 불쌍한 사람. 지금은 몰라도 나중에
오십 언저리가 되면 마음고생이 엄청 심하겠어,
그리고 어깨에 붙어 있는 저 할매 잘 좀 돌봐요. 여자조심은 항상 하고, 안 그러면 오십 못 넘겨!” 하는데
아무리 들어봐도 평소의 그 부장님 목소리가 아닌지라 머리카락이 찌지직 하고 발기하는
느낌을 주체하지 못해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그냥 담배 비벼 끄고 후다닥 내 방으로 돌아온 적이 있었다.
나중에 그 양반이 예정보다 2주 정도 일찍 퇴소하고 주변과 관리팀의 뒷이야기를 들으니
일본에서 근무할 당시
신사를 방문했고 신사 뒤편에 오래된 학살자 위령무덤이 있는데
거기서 뭔가 잘 못 된 것으로 회사에서 판단을 하는데
일본에 있을 때도 정신과 치료를 꽤 오래 받았고
귀빈들 방문이나 일본수출 상담 때에도 수시로 저런 증상이 나와서
조기 귀국조치를 받았는데 그룹의 규정이 그런지라 할 수 없이
의무코스인 국경연 입소를 하기는 했지만 결국 문제가 더 심각하기
전에 퇴소하고 6개월 정도 병가처리를 내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아니 그 잘 못 된 것이 뭐냐? 라고 이리 저리 물어봐도 신이 씌었다는 추측일 뿐,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그 부장님이 그런 증상이 나타나면서부터는
사람만 보면 툭~! 툭~! 이상한 미래예언 같은 것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아니 주재원 정도로 나갈 것 같으면 회사에서도 꽤나 능력을 인정받고 나름 똑똑하고 정신적으로도 매우 강할텐데
무슨 그런 개차반 같은 핑계를..아마 업무에 염증이 생겨서 또는 스트레스가 정신과적 치료를 필요로 하는 병이 생긴 것이지, 무슨 신이 어쩌고저쩌고..하면서, 시답잖게 넘기고 말았던 기억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분도 본인이 원하지 않는 상태에서 혹은 정신적으로 너무 힘든 상태에서
그 쪽 세계의 방화벽이 자신도 모르게 무너졌고, 엄연한 결계가 지어진 이 현상세계를
넘어 들어 온 신에게 주도권을 빼앗겨 가는 접신과정이었던 것으로 판단한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우리가 인지하는 범위내외에서 의외로 많이, 자주,
다양한 형태로 일어나고 있으며 근래 정신과
증상에서는 뚜렷한 원인과 발생 기제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주기적,
또는 비주기적이라도 유사한 패턴의 헛소리, 방언, 행동, 발달 형식을 보이면 병명으로 [빙의]라고 쓴다.
하여튼 그건 그렇고, 그 제비머리 참하게 묶은 도사가 저를 보면서 했던 말은
“ 어서 오십시오, 도사X님, 저는 전생에 사제였던 현X입니다.”
그러고는 그 바위 바닥에 넓적 엎드리면서 큰 절을 올리는데 정확하게 삼배를 했다.
이건 뭔가 싶어서 주춤하던 내가 그래도 이렇게 초면에 뻣뻣하게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같이
맞절을 한 번 하고는 악수를 청했다.
맞절이 끝나고 현X이 권하는 평상자리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자, 잠시 해우소에 다녀오느라 마중을 놓쳤다는 얘기며,
어리둥절하시겠지만 나의 영성이 더 맑아지고 수련단계가 깊어지면 자연적 자기와의 전생의 인연이 보일 것이라는 얘기.
자신이 연정원 단학수련을 하면서 봉우선생(우학도인)을 모시기도 했고, 여러 가지 체술을 비롯한 다양한 산중무술을
접하면서 산X을 알게 된 배경. 그런 과정에 지금 3년 째 하고 있는 토굴에서의 용맹정진 수련을 하면서
몇 달 전 내가 정좌하고 호흡수련 하는 모습을 보게 된 얘기와 이리 저리 알음으로 산X을 통해 연통을 넣은 배경 등을
아주 적확하게 군더더기 없는 표현으로 설명을 했다.
방금 떠 온 석간수가 제법 시원했고, 흘렸던 땀이 어느 정도 마르자 나도 내가 여기 오면서 궁금했던 얘기를 물었다.
도대체 어떤 상으로 보였기에 내가 현X님의 전생 사형인줄 알았으며 그렇다면 본인은 지금 전생을 다 본다는 얘기인가,
그리고 우리가 사형사제지간이었다면 전생에 했던 수련은 어떤 것이었고,
사부는 누구였으며 등등 마치 달라이라마의 환생여부를 확인하는 절차에 준하는 질문을 주로 했고,
지금 기억에는 딱 부러지는 답변보다는 수련해서 직접 알아보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며 이해가 될 것이라는 식의 화답을
했던 것 같다.
천리안 단동 모임이 오후에 해산식을 하니 그 전에 내려가야 할 것 같아서 잠시 대화를 멈추는데
이 현X이 구석에서 갱지로 묶은 연습장과 자그마한 무슨 만세력을 꺼내고 나보고 물었다.
이왕 여기 오셨으니 그래도 가장 정확하게 사람의 운명을 읽어낼 수 있는 사주팔자 풀이를 해 드리겠다는 것이다.
생년월일을 이야기하자 갱지에 이리저리 적고 만세력을 찾아서 한자를 적어 내려가면서 아는 듯,
모르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옆줄에 이런 저런 복잡한 여러 한자를 적어갔다.
한 십여 분 지났을까?, 의미심장한 미소를 가득 담으며 그 현X이라는 도사가 풀이해 준 내 사주는
천성이 착하고 남에게 해코지를 못하는 성격이며, 창의적인 부분에 탁월한 자질이 있으니 발명이나 연구개발,
또는 예술가로 나갔으면 아주 좋았을 것이며,
또한 강력한 스스로의 의지가 있으니 종교, 믿음, 사상 쪽에도 빼어난 자질이 있고,
군인으로 나갔으면 적어도 별은 달았을 것이란 얘기,
특히
조상의 덕으로 나중에 이런 수련에 인연이 닿을 것이니 지금 내려가더라도
항상 마음의 소리를 버리지 말고 살다 보면 다시 자기와 깊은 과거 전생의 인연이 이어져서
과거 삶에서 다 하지 못했던 수련의 완성을 이룰 수 있을 것이란 얘기 정도로 기억한다.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어느 정도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었다.
아니 사실과 조금은 다른 부분이 있었지만 면전에서 대 놓고 그렇다는 얘기는 못하고 속으로 갸우뚱했다.
산X과 현X이 잠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사이 나는 토굴에서 나와서 아침부터 참고 있었던 담배 한가치를 빼어 물었다.
조금 황당하기도 하거니와,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버님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 시작된 이쪽 계통의
수련이력이 벌써 10여 년째, 고등학교 때 죽으라고 했던 합기도 수련까지 포함하면 거의 20여년이 되어가는
이런 나의 행동이나 습관, 추구하고 지향하는 바가 결국 과거 생에 유사한 ‘도’를 찾아가는 갈망에서 뿌리를 둔 것이라는 것인데, 섣불리 그렇다고 믿기도, 아예 아니다 라고 완전하게 부정하기에도 모순이 많았다.
그렇게 잠시간의 만남이 끝나고 나의 개인연락처와 거주지, 직장 등을 간단하게 메모로 전해주고 아침에 생 땀 흘리면서 올라갔던 곳을 거꾸로 내려왔다.
내려와서 다시 집결지에 모이니, 카레 밥으로 점심준비가 한창이었다.
식사를 끝내고 물소리 틀어놓고 마무리 수련을 한 타임하고 다시 대구로 내려오면서 머리가 좀 혼란스러웠다.
내가 지금 하는 이 수련이나 호주에서 귀국 후에 처음 접했던 청산선사의 국선도 수련이나
잠시 외도로 접해봤던 D수련이나 끊임없이 형이상학적 이상을 향해 몸을 던지고 시간을 퍼붓는
나의 이런 행동이 왜 어디서 이토록 강한 것인지,
늘 궁금했는데 사실여부를 떠나서 장군봉 아래의 토굴에서 수련주인 현X의 이야기는
비록 속 시원하지는 않았지만 그 원인의 답으로 그다지 모자람이 없었다.
대구역 뒤의 그 처자보살도 그렇고, 과거의 나의 생이 수신 수심하는 수련자,
수도승의 모습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하는 바 크고, 나 또한 그런 것에 항상 솔깃한 팔랑 귀가 아닌가?
그리고 지금도 산X이 유려하게 펼쳐 보인 지난밤의 기천동작에서 또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것도
역시 나는 평생을 초월하는 존재로의 갈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道 바라기이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사춘기적인 방황이 아니라 정녕 속세를 떠나 산 속에서 아니면 불가에 귀의하여
목탁 두들기면서 다라니경 죽으라고 외면서 정신적 카타르시스를 얻기 위해
가족들을 다 팽개치고 머리 깎아야 한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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