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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건강

사주명리학 이야기(22편_간절함과 사주의 경우수)






그동안 캐나다, 이집트, 이스탄불 출장준비와 실제 출장을 다녀오고 뒷정리를

하느라 글을 통 쓸 시간이 없었지만, 내내 염두에 두고 이 부분에 대해서 써 봐야겠다고

생각해 본 항목들은 상당히 많았다.


오늘부터 차근차근 이 내용들에 대해서 명리학과 어떻게 연계가 되고

우리 인간들의 보다 높고 안정된 삶을 위해 고려하고 사색해봐야 할 내용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작년 연말쯤으로 기억하는데 교황청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聖女로 불리고 평생을

환자들과 가난에 찌든 사람들을 돌보는데 바친 테레사 수녀(1997년 귀천)

살아생전에 행했던 치유에 대해 기적으로 인정했고,


올해 가을쯤이면 諡聖(시성)으로 추대된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다.


뇌의 여러 곳에 무작위로 암세포가 발생하는 다발성 뇌종양을 앓던

브라질의 한 남성이 테레사 수녀의 치유행위로 인해 완전하게 나은 것과


2002년에 인도의 한 여성의 종양을 모두 사라지게 했던 1차 기적 등 모두

2건의 기적을 인정받음으로서 諡聖이 되신다는 소식이었다.


시성이 되면 앤드류, 베드로 등의 수식어가 앞에 붙고 영어로는

Saint(St로 표기)가 된다.


살아생전 다소간의 비판을 받기도 했고 이 과연 계신 것인가에 대한

고통스러운 독백도 하셨던 그 분이 어쨌든 사후 만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聖人의 품계에 오른다는 사실은 잔잔한 감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불치병, 난치병에 대한 여러 가지 종교, 무속적 치유행위의

성공담을 자주 들어왔을 것이다.


치병 굿을 벌이기도 하고 고가의 첨단의료기기와 뛰어난 명성을 가진

의사들을 찾아서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기도 하고,


아예 공기 좋은 곳으로 거처를 옮겨서 마음 편하게 살다보면 어찌 되겠지

하는 간절한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기도 하고 종편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XX누설과 같은 유사사례를 찾아서 눈이 뚫어져라 헤매기도 하며,


이것도 저것도 안 되고 하니 푸닥거리를 벌이기도 한다.


다 목숨을 연장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기 싫고 두려운 마음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으로 그런 비과학적 방법을 동원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 치유와 관련된 기적의 사례는 수없이 많지만 현대의 과학,

특히 양방의학에서는 공식적으로 그런 치유행위가 실제 기적적으로

효과를 나타냈다고 해도 인정하지 못한다.


아니 인정할 수가 없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기적이라는 것은 분명히 그 어감이나 언어의 해석에 있어서 차이는

있을지언정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라 청허는 굳게 믿는다.


다만 그 기적이 누구에게나 그저 간절히 바라는 마음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을뿐더러 그 희귀한 사례를 보건대 정밀하게 따지고

들어가 보면 분명 그 어떤 작용 기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기적의 작용원리는 아주 작은 곳에서 시작되어 증폭효과

레버리지 효과를 통해 치유의 결과를 나타낸다고 보는 사람인데,

청허가 생각하는 작용기제는 다음과 같다.


아마 간절한 기도를 오래 하거나 진실로 바라는 마음으로 행하다 보면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는 치유를 위한 인체 내의 질병에 대한

면역 활동이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고 비위생적인 돼지우리에서 돼지를 보고

기도한다고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길거리에 한 푼 얻기 위해 초췌한 몰골로 동전 한 닢을 읍소하는

걸인들에게 자신의 병이 아무리 위중하다고 해서 모든 것을 걸고

마음을 내어 찾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 존재하는 막연한 기대감 또는 어떤 숭고한 경외심이

발동되면 뇌에서는 현재 말로서는 표현하기 힘든 그것이

특정 호르몬이 되었던 아니든 어떤 치유물질이 나온다고 믿는다.


다만 그것이 작용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간절해야 하는지,

얼마만큼의 聖人에 대한 믿음의 크기가 필요한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청허와 같이 고명하신 교수님에게서 명리를 공부한 올해 육십 중반이 되는

비구니 스님이 한 분 계신다.


2년 몇 개월을 함께 기초과정, 심화과정, 전문가 과정을 공부한 스님인데

이런 저런 사유로 개별적으로 친하게 지내게 되었고


그 스님이 운영하는 경남지역의 한 포교원을 서너 차례 방문하면서

좋은 법문도 듣고 스님이 15세 소녀나이에 출가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법랍의 여정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청허가 알고 있는 우주관이나 철학에

대해서도 과분할 정도로 높게 평가해주시는 분인데,


이분이 그야말로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치유경험을

수차례 경험한 과거사를 들려주는데 참으로 신기하기도 하거니와


그 치유과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하게 듣다 보니 위에서 언급한

어떤 작용기제가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이 스님은 본인의 질병을 기적적으로 치유한 사례가 한 번 있고,

남을 치유한 사례가 두 번 정도 있는데 이번에는 본인의 치유경험을 적어보고자 한다.


스님이 출가 후 힘든 과정을 거쳐 어느 정도 참선과 독경의 경지에 이르러

중생계도의 길을 걷게 된 삼십 초반에 뒷머리에 혹이 하나 생기더니


어느덧 주먹만 하게 커지고 병원에서 치료를 했지만 당시 의료기술의 한계였던지

불가에 귀의한 몸으로 치료의 한계가 있었는지


이 종양은 일 년이 채 되지 않아서 모자를 쓸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극심한 두통과 구토, 온 몸에 두드러기가 너무나 심해 긁고 긁다가

밤을 지새울 정도로 고통스러움의 극치를 달리고 있을 때

문득 스님에게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래, 이제 이 몸을 버릴 때가 되었나 보다.

괜히 남아있는 스님들이나 절에 신세를 지고

불편하게 만드느니 산에 들어가서

이 한 몸 짐승들에게 보시나 하고 죽자라는 생각으로

오대산 자락에 들었단다.


80년대 중반이면 지금의 국립공원에 해당하는

전국의 명산에는 자유자재로 캠핑과 적당한 곳에서 텐트를 치고

잠을 자도 단속이 없던 시절이라, 찐 살 한말과 물통 하나,

된장 두어 되를 짊어지고 오대산(아마도 동대산 자락으로 추측되는)으로


무작정 들어가서 조그만 토굴을 하나 파고 들어앉아서 허기를 면할

정도로만 곡기를 취하고 산신기도를 올렸단다.


산신기도를 할 때는 목탁 두드리고 불경을 외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명경지수 같은 상태가 되면 그 때 속마음으로 이렇게 오대산 산신에게 청원을 했다고 한다.


 ‘ 오대산 산신이시여, 여기 천한 몸 하나가 병이 들어 이제 편히

뉘일 곳을 찾으려 하는데 산신께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산신의 허락이 있으면 이곳에서 제 몸 하나 이곳을 지나는 산짐승들에게 보시 하려고 합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고 한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그 어떤 영감이나 현몽, 또는 산신으로 추측되는

움직임이나 현상이 일어나지 않아서


아예 곡기를 완전하게 끊고 가장 깊숙하다고 생각되는

골짜기로 거처를 옮기고 아예 눕지도 않고 쉬지도 않은 채

염원의 강도를 서서히 높여갔다고 한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머리는 산발이 되고

 자그마한 체구의 비구니 하나가 거의 해골바가지가 되었을 즈음,


그 날도 자시가 넘어서까지 강한 신념하나로 기도를 올리고 있는데

주변에서 거대한 장수들이 둘러싸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느낌상으로도 나를 해치려는 것은 아니지만 엄청난 위압감과

그동안 귓가를 맴돌던 잡신들의 유혹어린 간드러진 목소리도

말끔하게 사라지고 한 밤중이고 그 깊은 산중이라도

어떤 무서움도 느끼지 않던 스님이었지만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못할 정도의 강한 압박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도 무시하고 오로지 불경만 외고 산신에게 간절한 마음을

한껏 담아 청원을 드리기를 몇 시간, 눈을 감은 스님 앞에 한복을

깔끔하게 차려 입은 아름답지만 고고한 기운을 풍기는 여인네 하나가

그다지 위협적인 모습은 아니고 약간의 미소와 따뜻함을 담은 목소리로 묻더란다.


 ‘ 스님은 이미 목숨을 던지고 이곳에 오셔서 저를 보고자 하셨으니

스님이 원하시는 소원이 무엇이든 내 들어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저는 이 몸이 도저히 속계에서는 고칠 수 없는 병이 너무도 깊이 들어

이제 마음은 부처님께 귀의하지만 산신께서 저의 별 볼일 없는

이 몸체라도 받아주신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라고 진심을 담아 읍소하자,


 ‘ 저 아래 고개를 돌아가면 조그만 산채가 하나 있을 것입니다.

그 곳에서 저에게 약간의 정성만 보여주시면 스님의 몸 하나 받아들이는

것이야 뭐 그리 어렵겠습니까?’ 하더란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주위를 호위하던

장수(아마 도교에서 이야기 하는 神將(신장)이었을 것이다)들과

오대산 산신중의 하나로

추측되는(오대산은 다섯 개의 산이 연이어 함께 있어서 오대산이라 한다)

여인네가 바람에 안개 빠지듯이 사라지고 먼동이 튼다.


어찌 어찌 굳어버린 몸을 움직여서 산신이 이야기한 것처럼

골짜기의 고개를 돌아서니 과연 사람 둘이 사는 조그만 산채가 있어

몸을 의탁하고 산채에 있는


여러 가지 음식으로 매일 제를 드리면서

그 오대산 자락에서 무려 6년 이상을 살았는데


약초꾼들이 임시로 거처하는 곳이라 약초꾼들에 부탁해서

부식거리는 조달받고(그 약초꾼들에게 산신이야기를 했더니 약초꾼들이 그냥 납득을 했단다)


또 그들의 도움을 받으며 매일을 정성으로 기도와 불경을 외고

참선을 하는 본의 아닌 입산수도생활을 했단다

(스님은 67개월 며칠이라고 얘기를 하셨는데 정확한 일자는 기억이 안남)


머리는 길고 길어서 발아래까지 닿고 피부는 소나무 껍질처럼 변해갔지만

어느 날인가 그렇게 스님을 괴롭히던 두통, 구토가 사라져서


머리를 만져보니 조금씩 머리만 했던 그 종양덩어리가 작아지더니

산 생활을 마치고 다시 속세로 내려올 즈음에는 아무런 덩어리도 만져지지 않더란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이미 죽은 줄 알았고

스님이 속해 있던 절에서는 산짐승의 밥이 되었나 보다 하면서

회향식도 이미 치르고 난 뒤였단다.


적어도 죽을 각오를 할 만큼 간절함이 통하고 욕심을 내려놓은 상태가 되니

암세포도 자신의 삶의 의욕을 내려놓았을 수도 있고


그 좋은 오대산 자락의 공기와 물,

그리고 스님의 청정한 생활이 절로 암세포를 물리쳤을 수도 있으며


오대산의 여산신이 굽어 살피어 그런 기적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님이 오대산에 들어가는 순간,

암세포와 자신을 괴롭히던 두통이나 구토에 대한 원망보다는


그저 죽더라도 산짐승들의 밥이라도 되어 보시를 하겠다는

마음이 자신을 증오의 대상으로,


죽여 없애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는 숙주의 위대한 마음에

암세포도 Trouble maker로서의 고집이나 임무를 잊은 채

스님의 몸으로 녹아 들어갔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치병이나 난치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이 스님처럼 초연하게 죽음을 맞기 위해 산에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실제 그렇게 하시는 분들도 잘 없다.


그러나 테레사 수녀님께 어떤 절대적 갈망과 희망을

가지고 정신적인 감응을 받는다면 그 효과는

이 스님이 산신을 친견한 그 이상의 효과를 내지

못한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유사한 사례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많은 분들이

한번은 들어보셨을 내용일 것이고,


누구나 어떤 특이점을 넘어서는 간절함과 그에 맞는

노력과 행동을 한다면 매번은 아니더라도 생각보다는

기적이라는 현상이 자주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그 현상이 현대 과학적 관점에서 인정을 받던 그렇지 못하던 상관없이 말이다.


또 덧붙여 당부하여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질병은

우선 양방이 되었던 한방이 되었던 정확한 병명과 원인을 알고

의료기술에 의한 치료를 가장 우선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무리 첨단 의료기술에 의해 치료를 받아도 전혀

효과가 없거나 더 증상이 악화된다면 마지막 수단으로서 위에서

언급한 방법을 사용해 보시길 권한다.


15년 조금 더 되었다. 청허가 살고 있는 아파트 옆 동에 같이

호흡 수련을 하던 교수 부부가 있었다.


그 부인이 나와 동갑내기였고 평소 몸이 좋지 않아서

호흡 수련을 했고 제법 효과를 보는가 싶더니

몇 년 가지 않아서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1기에서 2기 상태로 전이중이었고 담당의사는

간단한 적출수술로 완치가 가능하니 수술을 받자고

했으나 뭐가 쓰였는지


이 부부는 병원치료나 수술을 마다하고

이 호흡 수련을 더 열심히 하면 암을 물리칠 수 있다는

주변의(당시 이 호흡 수련은 하늘을 관통하는 엄청난 수련이라고 자찬하던 단체였다)


권유와 자신들의 믿음으로 주구장창 도장에서 수련만 해대었다.


나도 당시에 백수상태로 거의 도장에 살다시피 했던 몸이라

그 사정을 잘 알고 있었는데,


몇 개월 지나지 않아 그 부인의 유방암은

급속도로 진행되어 병원에서도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고 말았고


그 단체의 각종 하늘(?)에서 내린 비법과 도장의 책임자, 사범들이

연신 기 치료를 한답시고 꽤나 노력을 기울였지만 헛되이 유명을 달리 하고 말았다.


당시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생각하기에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호흡 수련을 병행했으면

거의 100% 완치를 했을 것이라고 청허는 믿는다.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 버렸는데

그래서 정통한 역술가들은 다음과 같은 원칙을 지켜야 한다.


<一 針, 二 灸, 三 藥, 四 術, 푸닥거리>


1,2,3번이야 순서가 바뀌어도 상관없지만

현대과학의 정수인 현대 의학적 치료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이다.


기적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엉뚱하게 여기까지 흘

러와 버리다니 조금 머쓱하긴 하지만 언젠가는

한번 언급하고 싶었던 얘기이기도 하다


 같이 공부를 하시는 분들 중에는

다양한 계층의 직업을 가진 분들이 많은데

그 중 한 분이 자리가 꽤 높은 공무원이다.


털털한 인간미와 오랜 공무원 생활로 다져진

늘 푼수가 아주 좋으신 분인데 한번은 수업도중에

이런 질문을 했다.


지금 자기는 이 명리공부가 너무도 좋고 정확성도

꽤나 높으며 어떤 면에서는 뛰어난 학문이자

실전에 적용할 수 있는 미래예측 기술도 갖추고 있는데


주변에 자기가 명리, 역술 공부를 한다고 하면 전부

이상한 눈초리나 안 되었다는 표정으로 보고


대표적인 엉터리, 허위, 미신, 사기성 높은 그런

기술을 배워서 뭐 어쩌겠다는 거냐? , 이런 식으로 본단다.


자기야 그렇지 않다는 것을 설명하려고 해도


워낙 기초지식이 약해서 어렵다는 하소연을 겸한 질문이었는데


교수님의 설명이 있고 난 뒤에 청허가 첨언해서 이런 말을 했었다.


지금 우리 한국의 교육수준이 옛날과는 판이하게 높아져 있고


첨단 과학기술들의 총아들을 마음껏 사용하고 있는 상태에서

아직도 우리 명리나 역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나

역술로 먹고 사는 분들의 기본,

마음가짐, 태도,

찾아오시는 분들을 대하는 목적자체가


 너무 금전적인 이유에 맞춰져 있는 탓이기도 하고

또 제대로 원리적으로 정통한 명리학문의 범주를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난 과잉 또는 부풀린 공갈행위가 그런 불신을 낳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실제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의 대부분이 점집이나 철학관,

역술인들이나 무당을 한번쯤은 만나보고 인생 상담을 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청허가 운영하는 작은 블로그에 댓글에 보면 많은 분들이

의외로 심각할 정도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안 믿자니

그렇고 믿자니 찝찝한 이야기들을 정통하다고,

용하다고 소문난 역술인들이 하더라는 얘기,


그래서 청허의 명리 이야기를 우연히 접하고 이런 저런 질문을 해오시고는 한다.


내년에 마가 끼었는데 부적이나 처방을 하지 않으면 남편이 죽는다는 둥,

자식이 백호대살이 끼어 있으므로 교통사고로 크게 당한다는 둥,

조상 중에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이 어깨에 내려앉아 있으니 굿을 해야 한다는

등등의 얘기도 다양하고


그 심각성은 그야말로 칼 안든 강도에 다름 아니다.


부디 그분이 기본원리와 응용에 능통하게 되어 누가 묻더라도

자신 있게 명리학문의 장점과 한계를 조리 있게 설명해서


보다 많은 분들이 이 소중한 학문에 대한 인식을 조금이라도

달리 하셨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럼 이 명리학문의 기초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각설하고 핵심만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우리 지구를 돌고 있는

태양과, , 그리고 공전과 자전으로 발생하는

, 여름, 가을, 겨울, 밤과 낮에다가


지구외의 내행성인 목성, 화성, 토성, 금성, 수성 등

다섯 개의 행성,


그리고 태양을 기준으로 기본이 구성되고


천간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운행의 기운인데

이것이 목화토금수의 배열에 맞게

음과 양 각각 두 개로 구성되어 총 열 개로 구성되니


이것이 甲乙() 丙丁() 戊己() 庚辛() 壬癸()가 되며


땅의 기운을 반영하는 地支는 땅의 기운을 대변하는

辰戌丑未 네 개와 木火金水 네 개의 오행에 배속되는

각 두 개씩의 지지로 구성된다.


寅卯() 巳午() 申酉() 亥子()로 되며

각각의 오행에 토의 기운을 가진 진술축미가 순서대로 사이에 배속된다.


그래서 寅卯辰() 巳午未() 申酉戌()亥子丑()의 순서로


,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해당된다.


그리고 이 天干 열 개와 地支 열 두 개가 조합되어

 六十 干支를 형성하게 된다.


숫자에 조금만 관심 있는 분이면 10×12120개가 되어야 하는데

60개만 나올까? 하는 지극히 당연한 질문을 가지게 마련인데


이 육십 간지의 구성 원리는 양의 천간은 양의 지지만

서로 합해져서 구성되기 때문이다.


천간에서

甲 丙 戊 庚 壬(+)이 되고

 乙 丁 己 辛 癸(-) 가 되며


다소 학설과 스승, 그리고 적용하는 기법에 따라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육


십 간지의 구성으로 지지의 음양을 해석하는 것이 가장 원리에 맞으므로

지지는 寅 午 辰 戌 申 子 는 역시 (+)地支가 되고

卯 巳 丑 未 酉 亥 (-)의 지지가 된다.


그래서 六十 干支

甲子 乙丑 丙寅 丁卯 戊辰 己巳 庚午 辛未 壬申 癸酉부터 시작해서 癸亥로 끝난다.


이 육십 개의 간지가 출생년도와 월, , 시로 각각 배정되니

이론적으로 60 × 60 × 60 × 60 = 12,960,000 개의

서로 다른 사주팔자가 구성되고


남자와 여자의 적용원리가 다르므로

다시 2를 곱해야 하며


여기에 생일의 초기, 중기, 정기의 3구분을 하게 되면

최대 77,760,000개의 공식적인 서로 다른 사주팔자가 있게 되는 셈이다.


여기에

타고난 지역,

국가의 수준과

태어난 환경적인 요소 등을 감안하면


수십억 개는 족히 되고도 남는 해석의 방식이 나오는데


대다수의 역술인들이나 철학관을 운영하시는 분들은

그냥 생년만 보고 소중한 남의 인생을 간명하거나


정확성을 거듭해도 모자란 판에 대충 휘 보고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은 참으로 개탄스럽다 못해 아찔한 천인단애의 끝에 선 기분이 된다.


정통하다는 한국이나 중국, 일본의 명리학계에서조차

가능한 조합의 수를 60 × 12개월 × 60 × 12시간 구분으로 나누어

남녀 합계 1,036,800개 정도로 보고 있는데


생월의 지지는 한번 세팅되면 변화가 없지만

생월의 천간도 함께 변화하며 생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므로


이는 통변성의 원리나 정확하게 분류가 가능한 경우수를 대충 얼버무리는 것으로

이렇게 보려면 四柱 六子밖에는 되지 않는다.


러면서도 사주팔자를 언급한다면 이는 학문의 잣대가 아니라

경험치의 잣대로도 모자란 기준으로 폄하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양의 최고 심리학에서 언급하는 인생의 경우수가

3천 가지 정도로 된다고 하는데


정확한 해석능력만 뒷받침 된다면 모든 경우수를

다 감안한 정통 명리학문의 위대한 힘을 새삼 느낄 수 있다.


이 갖가지 변화의 수를 다 읽어내고 간명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연습과 뛰어난 상황배치에 맞는 응용과 변화의 정도,

상호작용을 면밀하게 따질 수 있어야 한다.


사주만 보고 남편 성이 없다고 시집을 갈 수 없다고 못 박는 행위나

결혼하면 남편이 죽는다는 식의 단편적인 해석은


정확성은 물론이고 자칫 소중한 타인의 인생을 송두리째 구렁텅이로

안내하는 무지몽매한 사기행각이요, 범법행위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

청허의 생각이다.


물론 100여만 가지의 사주팔자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귀한 타인의 인생을 간명함에 있어


그 기초구성의 경우수를 두리뭉실하게 엮을 수는 없는 것이다.

다음 편에는 2월초 천문학계를 뒤 흔든 중력파의 검출소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 계속 )


 https://www.youtube.com/watch?v=d0ZljYnObOI


Dusty Springfield 의 명곡이다.


가사에 참으로 음미할 내용이 많다.


더스티의 감미로운 음색과 빼어난 가창력은 그 맛을 더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