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내용은 조선닷컴의 김윤덕 기자의 2014년 2월 기사내용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두 사람의 죽음과 남겨진 아이들에게 내려진 무거운
삶의 무게를 가늠하고 우리가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자는 뜻에서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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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조성민을 추억하며…그도 아팠고 힘들었고 무너지는 중이었다
- 김윤덕
- 문화부 차장
- E-mail : sion@chosun.com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여인은 최진실이었다"던 조성민…이어진 자살
남자들도 여자들 못지않게 수다스럽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조선일보 주말섹션 Why? 팀에 있을 때였습니다.
8명 부원 중 저만 빼고 부장 이하 모든 기자들이 남성이었는데,
칙칙하고 퀴퀴하며 지리멸렬하리라 예상했던 부서 환경은
사십 평생을 주로 여자들에게만 둘러싸여 살아온 저를 개안(開眼),
말 그대로 ‘신세계’에 눈뜨게 해 주었습니다.
가장 즐거운 시간은 ‘밥때’였습니다.
가장 즐거운 시간은 ‘밥때’였습니다.
Why?는 매주 수요일, 목요일이 가장 바쁜 요일이라
이틀간은 부원들이 야근을 하느라 저녁을 함께 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30~40대 아저씨 기자들이다 보니 분식이나 파스타집보다는
김치찌개나 곱창, 삼겹살이나 쭈꾸미를 파는 식당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마루에 책상다리 하고 앉아 소줏잔을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꽃피우는 아저씨들 수다가 그렇게 재미날 수 없었습니다.
사회부 경찰기자 시절 한자락씩 간직하고 있는 무용담들을 털어놓는 것으로
사회부 경찰기자 시절 한자락씩 간직하고 있는 무용담들을 털어놓는 것으로
입 주위 근육을 푼 아저씨 기자들은 술기운이 살살 오르기 시작하면
본격적인 입담 대결을 펼칩니다.
얼굴은 예쁘장한데 말할 때마다 어깨며 무르팍을 툭툭 때리는 통에
이별을 통보했다는 기묘한 연애담부터, 도무지 정리라고는 할 줄 모르는
마누라 때문에 난지도가 되어가는 집안을 구제하려
자신이 살림의 달인으로 등극했다는 이야기며,
서울내기 똑순이 아내와 부산토박이 버럭 모친 사이에서
마음고생 자글자글하게 하는 사연에다,
목욕탕에서 늙은 아버지의 등을 밀어드릴 때 가슴이 울렁거렸던
신파까지 사내대장부들 복닥거리며 살아온 이야기가 끝도 없이 펼쳐졌습니다.
맨날 술만 푸는 줄 알았던 아빠 기자들이 자녀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밥상 앞 수다를 통해 알았습니다.
그날도 침튀기는 언쟁이 있었지요.
‘스칸디 대디’ 때문이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북유럽 남자들처럼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버지들을
스칸디 대디라고 하는데, 그들처럼 좋은 아빠가 되어보겠다며
의욕을 보이는 젊은 기자들과 ‘스칸디 대디는 무슨 얼어죽을!
애는 그냥 저 혼자 알아서 크는 거’라며 콧방귀를 뀌는
조금 늙은 아빠기자들이 맞섰습니다.
2라운드는 영어 조기교육으로 이어졌습니다.
2라운드는 영어 조기교육으로 이어졌습니다.
아이들 머리가 굳기 전에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는 아빠와,
한국말부터 완벽히 한 다음 배워도 절대 늦지 않다는 아빠의 설전!
그 불똥이 ‘아륀지(orange)’의 주인공으로 튀어가더니
막판엔 ‘대한민국 여자들’한테로 번졌습니다.
우리 교육이 해법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엉
망진창이 된 건 다 여자들, 대학나온 엄마들의 극성 치맛바람 탓이라나요?
억지부리는 데는 대한민국 남자들 당할 재간이 없습니다.ㅋㅋ
하여간 엄마들 못지않게 아버지들도 자식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고
하여간 엄마들 못지않게 아버지들도 자식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고
또 열정적으로 고민하며 해법을 찾으려는 모습에 가슴이 다 뭉클했습니다.
유머와 재치, 약간의 욕설이 구색을 맞춘 아저씨들의 ‘입말’은
또 어찌나 우습고 쫄깃하던지. 줌마병법에 써먹으려고,
밥상 위로 오가는 대화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받아
적느라 손가락 부러지는 줄 알았습니다.
야구선수 조성민 인터뷰하면서 부성(父性)에 대해 생각
사실 부성(父性)에 대해 골똘이 생각하게 된 계기는 따로 있습니다.
야구선수 조성민 인터뷰하면서 부성(父性)에 대해 생각
사실 부성(父性)에 대해 골똘이 생각하게 된 계기는 따로 있습니다.
2010년 배우 최진실씨의 남편이었던 야구선수 조성민씨를 인터뷰할 때입니다.
느닷없이 조성민씨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인터넷에 떠돌던 사진 한 장 때문이었습니다.
- 2010년 9월 조성민씨가 아들 환희와 함께 서울 잠실야구장을 찾았을 때의 모습.
그가 아들 환희와 함께 잠실야구장을 찾아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이 스포츠신문 카메라에 잡혔고,
인터넷을 서핑하다 그 사진을 본 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죄책감과 안도감이 동시에 일어난 순간이었지요.
안도감은 ‘아, 환희와 준희에게 아빠가 있었지?’ 하는 새삼스런 깨달음 때문이었습니다.
엄마에 이어 외삼촌(최진영)까지 세상을 떠난 뒤 외할머니에게 맡겨진 두 아이에게
사실은 아빠가 있고,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도 있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린 겁니다.
반면 ‘죄책감’은 최진실씨가 자살했던 2008년 10월로 거슬러올라갑니다.
반면 ‘죄책감’은 최진실씨가 자살했던 2008년 10월로 거슬러올라갑니다.
그녀의 재산상속과 친권을 둘러싼 논쟁이 불거졌을 때
여성단체들은 일제히 조성민을 비난하고 나섰지요.
빈소에 나타난 조성민씨를 두고, 평소 아이들을 돌보지도 않다가
재산이 탐나니 친권을 주장하고 나선다며 세간의 비난이 한꺼번에 쏟아졌습니다.
고백하자면 저 또한 조성민씨의 친권을 박탈해야 한다는 쪽이었습니다.
아내와의 파경은 어떻든간에 자식들을 나 몰라라 했던 사람이
이제 와 친권을 운운하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 거지요.
그런데 그 사진 한장이 저에게 혼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그 사진 한장이 저에게 혼란을 일으켰습니다.
사진 속에서 환희와 함께 웃고 있는 조성민씨의 모습은 평범하고도 자상한 아버지였습니다.
아빠 품에서 환희는 더없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요.
세월이 흐르니 저 철없고 삭막한 남자에게도 뒤늦게
부성애가 생겨난 것일까 궁금했습니다.
왠지 ‘나쁜 남자’ 조성민에게도 세상에 대해 할 말이 있을 듯했습니다.
- 2000년 7월 조성민, 최진실씨가 결혼 발표를 할 때의 모습.
우여곡절 끝에 조성민씨와 마주앉은 곳은 그의 사무실이 세들어 있던
서울 압구정동 어느 빌딩의 1층 카페였습니다.
생각보다 키가 커서 놀랐고, 생각보다 예의바르고 웃음이 많은 사람이라 놀랐습니다.
최진실씨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눈자위가 발그레해졌고, 환희 준희 두 아이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햇살처럼 웃었습니다.
환희 갓난아기적 기저귀 갈고 목욕시킬 때 가장 행복했다던 아빠였고,
아이들 성(姓)을 ‘최’씨로 바꾸라는 법원의 판결이 났을 때
빈속에 소주 네 병을 들이붓고 울었다고 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세상이 떠들썩하게 결혼했고, 세상이 떠들썩하게 싸웠으며,
세상이 떠들썩하게 헤어졌지만 조성민은
“세상에 태어나 가장 사랑했던 여인은 최진실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나쁜 남자’ 조성민도 “아들 환희 기저귀 갈 때 가장 행복했다”던 아빠였다
최진실씨가 세상 떠나기 한 달 전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습니다.
‘나쁜 남자’ 조성민도 “아들 환희 기저귀 갈 때 가장 행복했다”던 아빠였다
최진실씨가 세상 떠나기 한 달 전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습니다.
“자정 지난 무렵 자다가 애들 엄마의 전화를 받았어요. 술을 마셨는지,
기분이 안좋은지 굉장히 우울한 것 같아서 무슨 일 있는 거냐고 묻자 아니라고,
다시 전화하겠다고 하면서 끊더라고요.
다음날이라도 연락해 만나보고 힘든 이야기 들어줬으면
그렇게 허망하게 떠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너무나 후회돼요. 그게 지금도 마음에 걸려요.”
그를 비난하는 시선과 스포트라이트가 사방에서 터지는데도
그를 비난하는 시선과 스포트라이트가 사방에서 터지는데도
최진실의 빈소를 끝까지 지켰던 그는, 영정 속 아내를 향해 “바보야,
널 미워하는 사람들보다 널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데
그렇게 가버리면 어떡해” 하며 울었다고 해서
저의 눈시울도 뜨거워졌습니다.
- 2010년 10월 인터뷰할 때의 조성민씨. 그는 최진실을 추억하는 대목에서는 말을 아끼고 조심스러워했다.
조성민씨가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것은 그 이후부터라고 합니다.
일요일마다 최진실씨가 아이들과 함께 다니던 교회를 찾아가
환희 준희와 야구하며 놀아주고 숙제도 봐주고….
일기를 게을리 쓰면 혼내기도 한다고 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영락없는 아빠였지요. 안도가 되었습니다.
저렇게 든든한 아빠가 있으니 환희 준희는 얼마나 다행인가.
결국 이 아이들을 품을 사람은 아버지였지,
2년 전 그의 친권을 박탈해야 한다고 외쳤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미안했습니다.
우리는 왜 인생에서 소중한 걸 뒤늦게 깨닫는가
아직도 조성민씨의 목소리, 저음의 느릿느릿한 그 음성이 귀에 생생합니다.
우리는 왜 인생에서 소중한 걸 뒤늦게 깨닫는가
아직도 조성민씨의 목소리, 저음의 느릿느릿한 그 음성이 귀에 생생합니다.
“인생을 야구라고 한다면, 내 삶은 현재 5회말쯤 와 있는 것 같아요.
아직 역전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는 5회말이요.”
그렇게 말하며 쓸쓸히 웃던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 저는 두 귀를 의심했습니다.
얼마나 삶의 무게가 견디기 어려웠으면 그
런 참담한 결심을 했을까 싶어 가슴이 아렸습니다.
그날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질 때 조성민씨가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날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질 때 조성민씨가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기사는 자유롭게 쓰세요.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사람들은 믿어주지 않으니까요.
험한 악플들을 하도 많이 봐서 이젠 무뎌졌어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런데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팠고 힘들었고 그래서 서서히 무너지는 중이었습니다.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두 아이만 남겨둔 채 떠나는 심정은 오죽했을까요.
아~ 부성에 대한 얘기를 하려다 너무 멀리 나와버렸네요.
아~ 부성에 대한 얘기를 하려다 너무 멀리 나와버렸네요.
아이들에게 아빠는 엄마 이상으로 소중한 존재라는 걸,
모성애 못지않게 부성애 또한 강렬하고 절절하다는 걸,
그래서 줌마병법의 주인공으로 요즘 아저씨들이 지면에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려다 샛길로 빠졌습니다.
용서하십시오.
그저, 모두가 힘들고 고단한 시절이지만 결코 포기해서는 안될
어른들의 의무는 있지 않을까 하여,
우리는 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뒤늦게,
아주 뒤늦게 깨닫는 어리석음을 범하는가 하여
답답한 마음에 끄적여보았습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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